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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7.05. (토)

무상급식에 대한 소고

김유찬 홍익대 교수

 경기도에서 시작하고 서울시에서 계속되는 무상급식에 대한 논란이 생각보다 오래 계속되고 있다. 이 문제에서 우리가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지 못한다면 앞으로 우리나라와 사회에 닥치게 될 더 심각하고 산적한 문제들을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우려가 된다.

 

 우선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양당의 전통적인 입장을 서로 바꾸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중산층 이상의 감세를 위해 애쓰던 한나라당이 이번에는 빈곤층 자녀에게만 무상급식의 수혜를 국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정적자에 대한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고 중고소득층을 제외하는 입장을 택하는 것이 논리와 국민정서적으로 이기는 싸움으로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민주당은 보편적 복지라는, 국민정서에 어떻게 수용될지 불확실한 구호를 제창하면서 재정적자 문제에 대한 불성실한 자세를 지적당할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 경기도 교육감선거에서는 이 이슈로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국민들이 계속 지지를 해줄지는 불투명해 보인다.

 

 무상급식으로 인한 정당간의 정치적 득실이 어떻게 전개되든지 간에 재정과 조세를 전공하는 연구자들의 의견은 그다지 활발하게 개진된 적이 없는 것으로 보여서 아쉬운 점이 있다.

 

 무상급식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가 관건이다. 무상급식의 수혜자를 전체 학생으로 하면 재정비용이 높아져 정부의 적자가 늘어난다는 것이고 저소득층 아동으로 수혜자를 제한하는 경우 수혜대상자 아동을 가려내는 과정에서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사회적 비용이란 수혜자를 가리는 과정에서의 행정비용 뿐이 아니라 이 과정에서 저소득층으로 분류되는 아동들이 경험하게 될 심리적 부담의 비용도 포함된다.

 

 한나라당은 재정적자의 문제에 무게를 두고 민주당은 이 사회적 비용의 문제에 눈높이를 두고 있다.

 

 재정적자의 문제가 심각한 사안이라는 것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그럼 행정비용의 문제는 어떤가? 수혜자를 저소득층 아동으로 제한하는 경우 학교나 교사가 학생이 저소득층에 속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업무를 필연적으로 맡아야 한다. 국세청이나 의료보험공단에서 학생들이 속한 개별 가계의 경제적 능력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면 수혜자 선정과정에 객관성이 담보되기 어렵다. 업무 부담의 문제와 형평성의 문제가 같이 발생한다. 정부가 부담하는 비용이 아니라고 무시해서는 곤란하다.

 

 혹 학교 현장에서 수혜자를 정하는 과정이 학부모와 학생들의 양보심으로 인해 매우 원만하게 진행된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행정비용은 낮을 수 있으나 양보의 이면에는 무상급식의 수혜자, 즉 저소득층으로 인정받기 싫은 심리적 부담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두 가지 문제의 심각성에서 경중을 따지기는 어렵다. 보는 입장에 따라 다를 것이다.

 

 두 가지 중에 하나의 문제는 무시하는 길 이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손에 쥔 정책수단이 여러 가지이므로 이를 잘 활용하면 재정적자도 늘지 않고 아이들에게 상처도 주지 않을 수 있다.

 

 무상급식을 전 학생에게 시행하고 제한적으로 시행하는 경우와 비교해 늘어나는 재정비용을 계산한 다음 이 비용을 충당할 만큼만 소득세율을 인상시키는 것이다.

 

 저소득층의 가계는 어차피 소득세 면세점 이하의 소득일 가능성이 많으므로 소득세율 인상에 의해 부담이 늘어나지 않는다. 중고소득층의 가계만이 소득세를 부담한다. 하지만 이들 역시 세금을 조금 더 내는 대신에 아동들의 급식비용을 지출하지 않게 된다. 이 계층의 가계전체로 보면 정부에 대한 비용편익계산에서 중립적인 입장이 된다.

 

 세금부담이 사회의 어떤 계층에 최종적으로 전가되느냐의 측면을 분석하는 조세의 귀착이론(Tax Incidence Theory)에서 볼 때 이 세금을 거둬 마련한 재원으로 정부가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 혜택이 누구에게 귀속되느냐를 함께 고려한 개념이 예산귀착(Budget Incidence)이다. 이 예산귀착의 측면에서 보면 무상급식을 전체 학생들에게 적용해 주기 위해 소득세를 인상하는 경우 중고소득층이 부담하게 되는 증가하는 소득세액의 예산귀착은 제로가 되는 셈이다.

 

 이 계층 가계의 입장에서 볼 때 아동들의 급식비로 학교에 연 100만원을 더 내는 것(유상급식)과 소득세로 연 100만원을 더 부담하는 것(무상급식)은 경제적으로 동질적이라는 것이다.

 

 소득세율을 소폭 인상하는 것의 행정비용은 제로이다. 재정적자는 발생하지 않고 통계수치로서 조세부담율은 소폭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예산귀착의 개념에서 본 바와 같이 중고소득층의 경제적 위치는 이 무상급식의 실시로 더 나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저소득층 아동에 대한 무상급식은 이미 사회적 합의가 된 사안이다.

 

 그렇다면 소득세율의 소폭인상을 통해 조달한 재원으로 실시하는 무상급식은 적어도 사회적 비용을 발생하지 않으므로 더 나은 대안이 아닌가? 무상급식을 저소득층 자녀에 제한적으로만 적용하려는 시도는 게다가 지금까지의 문제해결방식과 비교해 일관성이 없다. 현재 중등학교까지 시행되고 있는 무상교육은 저소득층 자녀에게만 제공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무상급식보다 무상교육의 재정비용이 수십배 이상 소요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더욱이 무상급식은 무상교육과 같은 현장에서 제공되며 크게 보아 그 일부이다. 두 가지를 재정적으로 따로 취급해야 할 명분은 부족하다.

 

 ※본면의 외부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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