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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7.04. (금)

어느 튀니지 교수의 질문과 그 이후

- 세금 개념이 있는 정부 vs 세금 개념조차 없는 정부 -

 데모하는 대학교를 폐교 안하는 이유

 

 1. 2006년 안식년 기회를 얻어서 아프리카 튀니지 대학에 잠시 머무른 적이 있다. 마침 그곳의 교수 중 한 분이 한국경제와 관련된 주제로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며 나를 반갑게 맞아줬다. 논문을 쓰면서 가장 궁금했던 점 중 하나가 "한국 대학에서 그렇게 데모가 심한 데도 박정희 대통령은 왜 대학교를 폐쇄하지 않았는가"이였다. 내 대답이다. 아니 어떻게 학교를 폐쇄해요? 그런데 자기 나라 같았으면 벌써 없애 버렸다는 것이다. 정치권력 유지를 위해서는 미래의 희망까지도 저버리는 자기나라 정치체제에 절망을 느낀다고 했다.

 

 2. 사실 튀니지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이다. 한니발 장군(General Hannibal)과 성자 어거스틴(Saint Augustine)을 배출한 나라이기도 하고 로마제국 시절에는 로마의 식량조달 창고 역할을 했을 정도로 땅이 비옥한 나라이다. 그런데 이들 이후, 근 이천년 동안 세계역사에서 튀니지나 아프리카인들의 역할이 거의 없었고 지금 매우 가난한 나라로 머물러 있다. 나는 그 이유가 궁금해서 튀니지에 갔었다. 그리고 그 교수에게 "이 나라의 교육열이 높아서 언젠가는 민주화가 올 것"이라고 했던 적이 있다. 그 후 5년이 흐른 지금, 어느 한 청년의 분신자살을 도화선으로 독재자는 다른 나라로 도주했고 민주화가 오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열풍은 지중해 연안국가인 모로코부터 이집트까지 번져 나갈 기세이다.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100배 이상의 결실을 맺는 모습을 우리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민주화를 이루기 위한 진통이 있겠지만, 아프리카 선두주자답게 잘 극복하리라 믿는다.

 

 세금개념이 없는 정부

 

 3. 작년 말부터 연구자료 수집차 프랑스 체류 중에 튀니지 사태를 맞이하고 있다. 튀니지가 한때 자국의 식민지였고 아직도 많은 프랑스인이 그곳에 거주하고 있어서인지, 프랑스 방송은 튀니지와 관련된 많은 뉴스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웃지도 못 할 소식도 있다. 데모를 무력으로 진압해도 끊이질 않자, 대통령은 직접 세금인하 타협안을 제안했다. 아니, 튀니지 국민의 현재와 장래를 위한 곡식을 정권유지와 맞바꾼다?

 

 4. 상식을 무시한 이와 같은 제안은 성난 군중에 의해 거부됐고, 대통령과 식솔들은 허겁지겁 야반도주하듯이 국외로 도망갔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현실이 이러하니, 아프리카 최고의 곡창지대이고 196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잘 살았던 튀니지가 이 꼴이 된 것 아닌가 한다. 김일성도 세금을 없앤다고 하면서 민중을 유혹해서 정권을 잡았지만, 현재 북한 또한 딱하기는 별반 다를게 없다. 세금개념이 없는 정권의 말로는 비슷하다. 왜냐하면 현재 정권이 자기들 잘 살겠다고 미래에 대한 투자를 훔쳐 먹고 있기 때문이다. 세금은 누구나 내기 싫어한다. 그래서 더욱 그 개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세금 개념이 있는 정부

 

 5. 우리나라 박정희 대통령은, 독재정권이라는 평가가 있긴 하지만, 세금에 관한 한 명확한 개념이 있는 정부이었다. 유신조치 이후 날마다 대학에서 거리에서 데모의 물결이 휘몰아칠 때도, 나라의 '산업화를 위한 자본 마련'을 위해 과감하게 종합소득세와 부가가치세를 신설했다. 이른바 증세정책을 취한 것이다. 그분인들 세금을 깎아 주면서 민중의 인심을 얻고 정권을 계속 유지하고픈 맘이 없었을까. 그러나 정권 유지보다는 민족의 장래를 보고 결단을 했을 것이다. 그 결과 국가 재정건전성이 유지됐고, 전대미문의 IMF 사태도 극복할 수 있었다.

 

 6. 현 정부는, 세금 정책은 별론으로 하고, 아마도 후대에 '고소영'에다가 '강부자''부자감세'라는 그리 반갑지 않은 꼬리표가 따라다닐 것 같다. 노벨인사상감이라는 비아냥거림이 가장 보수적이라는 신문에서부터 나오는 것을 보니, 여론평가와는 달리, 어딘가 잘못되는 구석이 있는가 보다. 세금을 깎아준다고 하니 누군들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먼 장래를 보면 그리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바로 우리들 자식세대에 부채를 넘기는 것과 같다. 잘못되면 자식의 미래와 부모의 현재 안위를 맞바꾸는 꼴이 된다. 그래서 감세정책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감세와 복지국가 지향은 불가능

 

 7. 재미있는 것은, 차기 집권을 위한 모든 후보들이, 여당이든 야당이든, 복지국가를 지향한다고 한다. 좋은 말이다. 그런데 무슨 재원으로 하는가? 오죽했으면 어느 장관이 '저수지에 가둬둔 물을 맘대로 자기 논에 대고자 한다'고 힐난했을까. 보수 측에서 증세를 말하자니 현 정부의 감세정책에 대놓고 반발하는 것 같기도 할 것이고, 진보 측에서 증세를 말하자니 표가 도망갈까 두렵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라. 연평도 사건 이후 전력 증강에 드는 비용 마련이나 4대강 사업비 및 친서민정책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라도 감세는 안되는 것 아닌가? 빚을 내서 하는 것은 누군들 못하겠는가. 빚은 미래를 옥죄고 갉아먹는 암과 같은 존재 아닌가.

 

 8. 다시 파리 북역(Gare du Nord) 플랫홈에 서서, 우리는 언제 한국의 반절이라도 따라갈 수 있겠냐는 튀니지 대학교수의 질문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사실 박정희 대통령과 튀니지 대통령은 비교대상 꺼리도 아니지만, 세금의 잣대로 보면 한편에서는 국가의 장래를 위한 결정을 했고 다른 편에서는 정권 유지에 세금을 이용했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사후에 한 분은, 독재자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사에 산업화의 영웅으로 남아 있다. 우리나라 미래를 위해서라도 차기 정권을 담당하고자 하는 집단은 세금개념이 분명했으면 좋겠다. 강학상 '개념'을 지탱하는 토양을 이름해 '철학'이라고 한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욕심이겠지만, 다음 대통령은 세금철학이 뚜렷했으면 한다.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 말이다.

 

 ※ 본면의 외부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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