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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7.05. (토)

은행세 및 토빈세 도입 논의와 우리나라의 역할

안 창 남 강남대 교수

 최근 경제의 부침을 보면 '은행'이 그 흐름을 쥐락펴락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 좋은 예로 우리나라의 '97년 IMF 구제금융 사태는 물론이거니와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사태로 인한 전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세금과 관련해 논의 중인 은행의 역할은 주로 조세피난처 은행의 정보 제공과 관련이 있다. 종전에는 마약거래, 조직범죄, 테러리즘에 대항하고자 하여 자금세탁 방지에 중점을 뒀고, 이를 위해서 미국의 '금융범죄 단속 네트워크(FinCEN)', 프랑스의 '비자금 경로 감시국(TracFin)' 등이 은행과 정보를 교환하고 있었으나, 최근 해당 은행의 전산직원이 탈세 혐의가 있는 고객리스트를 미국이나 프랑스 정부에 넘겨주고 그 대가를 요구하는 등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다. 이를 계기로 은행의 고객정보 공개요구가 세금분야까지 확대되고 있다.
 현재 금융이나 조세정책의 입장에서 볼 때, 은행이 좋은 의미이든 나쁜 의미이든 논의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프랑스 르몽드 디플로마틱크(Le Monde diplomatique)는 2010년 3월호 중 '은행에 굴종하는 정부'라는 글에서 "구제금융을 통해서 겨우 파산을 면했던 은행들이 위기감에서 벗어나자마자 다시금 공공재정 적자와 부채를 초래하는 등 국가 해체를 기획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구제금융을 받은 처지임에도 은행종사자들은 막대한 연봉을 받는 등 '수치심'이 없는 집단이라고 힐난하고 있다.
 한편, 국제통화기금 (IMF)은 G20 국가에 대해 은행개혁방안의 일환으로 '금융안정 분담금(Financial Stability Contribution)'과 '금융활동 세금(Financial Activities Tax)'의 도입을 제안했다. 전자는 혹시 발생할지 모를 구제금융의 재원 마련을 위한 성격이 있고, 후자는 금융기관 이윤 및 종사자들의 막대한 급여에 대해 부과하는 부가세적인 성격이 있다. 이를 토대로 하여 각 국이 이른바 '은행세(bank levy)'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이나 유럽은 IMF의 의도와는 달리 이 문제에 접근하는 입장이 각기 다르다. 미국은 금융안정 분담금의 성격이 더 강한 반면 유럽은 국제투기자본의 이동을 세제로서 억제하는 이른바 '토빈세(Tobin tax)'의 도입에 적극적인 것으로 보인다.(이미 프랑스는 2001년 토빈세를 포함한 재정법이 국민의회(하원)에서 가결됐고, 벨기에는 2004년 7월에 토빈세법이 가결됐다.)
 은행세는 앞으로 논의 과정을 더 지켜봐야겠지만, 그 대상은 은행뿐만 아니라 헤지펀드는 물론 보험까지 포함되는 금융기관으로 확대되고, 과세방법은 비예금성 부채에 일정률을 곱하는 것으로 하자는 오바마 대통령의 제안 채택이 유력해 보인다. 이를 통해서 무분별한 국제투기적인 거래를 제한하며 이 세금을 통해서 구제금융자금의 회수 및 정부 부채의 감소를 도모할 것이다.
 한편, 은행세와는 달리 토빈세에 대해서는 그 연구가 많이 진행됐고, 이를 주창한 예일대학의 제임스 토빈은 '81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토빈세의 단점은 은행의 수많은 거래 중 단기투기성 거래를 찾아낸다는 것이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미국의 제안처럼 비예금성 부채에다가 일정률을 곱하는 것이 간편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지만, 이 제안 역시 은행의 업무에 대해 정부가 과다하게 개입하는 등 '시장경제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그러나 은행세이든 토빈세이든 이 제도는 세계 각 국에서 동시에 실시돼야만 효과가 있는 것이다. 만일 미국이 은행세를 실시하지만, 독일은 실시하지 않는다면, 미국계 은행은 독일에 본사를 옮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제가 기업의 활동을 조정하는 '국제적인 조세중립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어도 G20 국가에서 동시에 같은 유형으로 실시돼야만(왜냐하면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은행 대부분은 이들 나라에 있기 때문임) 효과가 있어서, 우리나라에서 개최될 예정인 G20회의의 주된 의제 중의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할 일은 무엇인가? 사실 할 일이 별로 없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은행이 정부 간섭을 많이 받아서인지 모르겠지만 IB(Investment Bank)분야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관계로, 은행세 부과대상인 비예금성 부채나 핫머니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G20에 겨우(?) 가입이 허용된 현실을 감안해 볼 때, 그저 미국이나 EU가 제안을 하면 못 이긴 척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게 솔직한 우리네 현실 아니겠는가.
 반면, 그렇게 거둬들인 세금의 사용처에 대해서는 우리나라가 발언을 할 기회가 많을 것이다. 사실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국가는 개발도상국가이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국가가 이를 혹독하게 경험한 바 있다.
 실제로 은행세 또는 토빈세는 '국제연대세'적인 성격이 있다. 과세물건 자체가 국제적 거래를 그 속성으로 하고 있으며, 그 여파가 국제적인 성격, 구체적으로는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악영향을 미치는 성격이 짙다. 그러므로 은행세로 징수되는 세액은 '국제적'으로 사용하자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례는 이미 있다. 2005년 5월 프랑스가 아프리카 에이즈 퇴치기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 비교적 돈이 있는 사람이 이용하는 비행기의 항공권에 대한 연대세 도입을 제안했고, 상당수의 국가가 이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낸 세금이 왜 다른 나라를 도와주는데 쓰여?'라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아프리카 국가가 잘 살고 잘 돼야 우리나라가 그들 국가에 대해 원자력발전소도 팔고 자동차도 팔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의 마련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의 구현에는 그 시답지 않은 '좌파'나 '우파'의 구별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나라는 이미 그런 낮은 논의를 해야 될 정도의 수준은 벗어났다고 본다.
 생각해 보라. 외국의 원조와 지원이 없었다면, 과연 우리나라가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 올라올 수 있었겠는가. 결국 은행세 부과분야보다는 이를 사용하는 분야에서나 우리나라가 할 일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은행세 부과보다 더 중요한 일일지 모른다. 우리나라의 멋진 역할을 기대한다.  
 ※본면의 외부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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