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검색

구독하기 2025.07.05. (토)

정치인의 신의에 관하여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말을 할 때 입술을 움직이면 거짓말이고 그렇지 않으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건 좀 모욕적인 농담인 것 같지만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정치인들에게 신의가 중요하다고 한다. 옳은 말이다. 아침에 한 말을 저녁에 뒤집고 금방 이야기해 놓고는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잡아떼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정치한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허다한 세상에서 신의를 강조하는 정치인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신선하고 흐뭇하기까지 한 일이다.

 

그러나 사정이 바뀌었을 때 신의를 내세우면서 입장을 바꾸기를 거부하는 것이 늘 잘하는 일인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자기 혼자만의 일인 것 같으면 신의를 위해서 개인이 희생할 수도 있고 그것은 아름다운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리더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상황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신의를 지키기 위해서 국민이 손해를 보는 정책을 고집한다면 그것은 이기적인 것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더구나 내가 과거에 취했던 입장이 그 상황에서 정치적 이유 등으로 어쩔 수 없이 택한 것이었는데 그것이 국민의 관점에서 보면 최선의 것이 아니었다면, 신의를 내세우며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 이기적인 것에서 더 나아가서 위선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과거에 그러한 입장을 택할 때는 그것이 최선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그것이 최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면, 그리고 그것을 고수하는 것이 국민 전체에게 상당히 큰 피해를 주는 것이 확인됐다면, 그 때는 입장을 바꾸는 것이 신의를 저버리는 것이 될지 모르지만 리더로서 마땅히 해야 할 바라고 생각된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입장을 바꾸는 리더에게 실망하고 정치인들은 못 믿을 사람들이라고 푸념을 할 지 모른다. 모두에서 언급한 우스갯소리도 이러한 상황을 자주 당하게 되는 정치인들의 사정 때문에 생긴 것인지 모른다. 그래도 그러한 정치인들은 결국 존경을 받는다.

 

얼마전 경춘고속도로를 지나갈 기회가 있었다. 예전에 누구에게선가 들었던 일화가 생각이 났다. 우리나라의 전직 대통령 한분이 야당후보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던 상황에서 너무 급하니까 자신이 당선되면 경춘고속도로를 뚫어 주겠다는 공약을 했단다. 당시의 재정상황이나 토목기술 수준으로 그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분이 그것 때문에 당선이 됐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당선이 됐는데 그 뒤로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경춘고속도로 기공식이라도 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는 듣지를 못했다. 그래도 그분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신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치 리더는 정말로 귀하다. 배신과 변절이 난무해온 우리나라의 정치판에서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신의를 지키려고 애쓰는 정치지도자가 있다는 것은 정말 고맙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런 리더가 있기 때문에 국회에서 난투극이 상습적으로 벌어져도 우리나라 정치에 대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걸음 더 나아가서 국민을 위해서라면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단체의 신의에 대한 평판에 위험을 감수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정치인이나 정책당국자의 판단은 항상 현재의 상황에서 어떤 선택이 국민에게 최선인가가 기준이 돼야 한다. 과거에 내가 어떤 말을 했던가가 국민의 이익보다 더 중요한 변수가 될 수는 없다.

 

지금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정말로 현재와 미래의 우리 국민을 위해 최선인가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외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 좋은 대안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들어보고 그것에 대해서 가부간에 공방을 하는 것이 마땅한 자세가 아니겠는가?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