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는 보도가 있다. 현행 시·도-시·군·구-읍·면·동 체제에서 16개 시·도를 없애고 240여개에 달하는 기초자치단체인 시·군·구를 몇 개씩 묶어서 70개 내외의 자치단체로 광역화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고 이미 상당한 정도의 의견 접근이 이뤄진 것으로 보이지만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논의만 하다가 포기했던 적이 여러차례 있다. 이번에도 쉽게 국민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여야 국회의원들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하니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방재정의 관점에서도 행정체제의 개편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부 자치단체는 재정이 지나치게 열악해 자주재원인 지방세 수입을 확충할 방법을 찾기 어려운데, 이런 지방을 독립적인 자치구역으로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므로 행정체계 개편시 염두에 둬야 할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재정자립도의 개선 가능성이다. 지방자치제의 장점은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주민의 선호를 고려해 자율적으로 공공정책을 수행하고 그에 대해 지역 주민 앞에서 책임을 지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재정의 대부분을 국가의 보조금에 의존한다면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자체사업을 추진하기 어렵고 주민에 대한 책임성도 약화된다. 우리나라는 지방자치단체가 기본적으로 담당해야 할 공공업무를 수행하는데 소요되는 비용 중 어느 만큼을 자체수입으로 충당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재정력 지수가 100% 이상인 자치단체도 있는 반면 많은 자치단체가 30%에 못 미치며, 10% 미만인 경우도 있다.
행정체제 개편시 염두에 둬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행·재정체제의 유연성이다. 우리나라 지방자치제의 중요한 특징은 통일성이다. 지방자치단체를 광역과 기초의 두 단계로 구분하고 동급의 지방자치단체는 같은 종류의 세금을 부과하고 공공재를 공급하도록 되어 있다. 이런 체제를 개편되는 행정구역에 적용하면 국가와 지방 두 단계의 정부가 모든 공공재를 양분해 공급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개별 공공재와 개별 세목의 특성을 살펴보면 좁은 범위를 관할하는 지방자치단체에 적절한 것도 있고 넓은 범위를 포괄하는 단체에 적절한 것도 있다. 그러므로 광역과 기초로 양분된 지방행정체제가 한 단계로 개편되면 과거와는 달리 행정체제에 유연성을 부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지방공공재를 공급하는 최후의 보루가 카운티이고, 동일한 카운티 내에서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시를 설립해 자치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시가 설립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카운티 정부가 시의 역할과 카운티의 역할을 모두 수행한다. 영국에서는 각 지방정부가 재정 평가를 통해, 또는 지역 주민의 원에 의해 자치권을 더 부여받거나 덜 부여받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영국과 미국에서는 일반 지방행정기구 외에 경찰 등 특수 기능을 수행하는 다양한 성격의 지방정부가 존재한다.
또한 자치단체간 협력을 원활히 할 수 있는 메카니즘이 필요하다. 공공사업 중에서는 포괄범위가 상당히 넓은 사업이 있다. 경제개발, 사회 인프라 구축 등이 그러하여 현정부에서도 지역균형 개발을 위해 16개 시도를 '5+2 광역경제권'으로 구분해 개발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밝힌 바 있다. 이는 기존의 광역자치단체보다 넓은 범위를 하나의 지역으로 보아 개발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많은 국가들이 넓은 범위를 관할하는 주 또는 도를 두고 그 밑에 좁은 범위를 관할하는 시·군 등의 지방정부를 두고 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광역과 기초를 구분하지 않고 지방자치단체를 한단계로 통일한다면, 광범위한 지역의 협조가 필요한 공공정책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정식 자치단체는 아니더라도 행정구역간의 느슨한 연합체 등을 통해서라도 광대역 범위의 사업을 공동으로 수행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