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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7.06. (일)

"박 계장, 빽 한번 써봐" (75)

창간 41주년 기념 기획연재 박찬훈(朴贊勳) 전 삼성세무서장

 

 

81. 귀국인사와 사표

 

귀국하니 마침 청장님이 상(喪)을 당하셔서 ○○병원에 계셨다.

 

귀국인사 겸 문상을 했다. 거기서 어떻게 사표를 내겠는가?

 

며칠후 출근하신 청장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난 후, 나는 사표를 드렸다.

 

"이게 뭐야?!"

 

"사푭니다."

 

"좀 기다려! 승진시켜 줄게!"

 

내가 총무과장으로 보내주지 않아서 반발하는 것으로 착각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외국에 보내주신 것에 감사를 드린 다음 귀국길에 방콕을 경유하고 거기서 친구들과 만나 골프를 친 사실, 그리고 그들의 자유로운 행동, 여유롭게 인생을 사는 모습과 내가 받은 충격, 비행기 안에서 쓴 사표, 능력이 없는 놈이 승진했을 때의 두려움 등등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집안 사정에 관해서도 말씀드리려고 몇번이고 "저, 저"하면서 망설이기만 했을 뿐 차마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

 

"박 과장! 당신은 돈키호테 같구먼!"

 

"누구나 할 것 없이 수단·방법을 안 가리며 승진시켜 달라고 하는데 도대체 당신은 뭐요?"하시면서 책상위에 놓여 있는 사표를 구겨 휴지통에 넣었다.

 

"특승 출신 중에서는 O와 당신밖에 없어. 조금만 기다려."

 

"이번 12월이 아니면 내년 6월이야!"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나가시오!"

 

청장님의 기세에 눌려 나는 꾸벅 절을 하고 휴지통에 있는 구겨진 사표를 찾아들고 일단 청장실을 나왔다.

 

"내가 당신 승진 하나 못 시키는 허약한 청장이 아니야"

 

"내년 6월까지 기다려봐! 잡념 버리고!"

 

또 쫓겨나왔다.

 

보름후, 12월말경이다.

 

청장님이 또 찾으셨다.

 

"이제 마음을 잡았느냐?"하시면서 조금만 더 기다리라신다.

 

나는 또다시 이렇게 말씀을 드렸다.

 

"청장님! 아파트 10층에서 떨어지는 것보다 1층에서 떨어지는 것이 데미지가 훨씬 덜합니다."

 

"10층 높은데서 떨어지면 즉사하지만 1층 낮은데서 떨어지면 다리 하나 부러져 한달 정도 고생하면 낫습니다."

 

"경북의성 촌놈이 청장님 덕분에 시내 서장도 하고 본청 과장도 했으면 1층 정도는 올라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됐지 더이상 저는 올라가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내려올 때 힘이 드니까요."

 

"청장님도 내려오실 때를 생각하셔서 너무 높이 올라가지 마십시오."

 

"그리고 이 나이에 도둑골프를 치면서 눈치보며 살고 싶지 않습니다. 승진에 대한 미련으로 더 근무하다 퇴직을 하고 나면 늙고 힘이 빠져 드라이버를 잡아도 100야드도 날라가지 않아 재미없습니다."

 

"이제는 제 자신을 찾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를 승진시켜 주신다면 최소한 ○○청장은 해야 되지 않습니까? 저는 그럴 배경도 능력도 없습니다. 자신도 없고요."

 

"그리고 승진하지 않으려는 큰 이유 하나가 있습니다만은 차마 말씀을 못 드리겠습니다. 만약 저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지금 말씀 못 드리는 그것이었구나 하고 생각해 주십시오."

 

"말 못하는 그게 뭔데?"라고 청장님이 그 자리에서 물으셨더라면 내가 지금 처해있는 전후 사정을 말씀을 드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알려고 하시지도 않고, 계속 달래기만 하신다.

 

"박 과장, 경력도 그만하면 됐고 능력도 없다고 자책하지마!"

 

"내가 당신 승진 하나 못 시키는 허약한 청장이 아니야"

 

"내년 6월까지 기다려봐! 잡념 버리고!"

 

또 쫓겨나왔다.

 

누가 뭐래도 나에게는 고마우신 청장님이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건강이 어떠신지….

 

청장님도 지금쯤 내가 드린 말씀을 절실히 생각하고 계시리라.

 

나의 말을 듣고 10층까지 너무 높이 올라가지 말고 6, 7층에서 그만 내려오셨더라면 하는 아쉬움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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