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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7.06. (일)

"박 계장, 빽 한번 써봐" (74)

창간 41주년 기념 기획연재 박찬훈(朴贊勳) 전 삼성세무서장

다른 곳에 한눈 팔 수 있는 시간이 정말로 없었다.

 

비록 바쁘고 힘이 들었지만 어릴 때부터 미술 등 예능분야에 주특기가 있었던 나를 그 자리에 앉혀 제2개청의 마무리 작업을 시킨 청장님의 절묘한 인사 배치에 나 자신도 감탄을 했다.

 

누구나 하기 싫은 이러한 업무였으나 나는 내가 아니면 국세청에서는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심경으로 헤쳐나갔다.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나는 9월 1일을 차질없이 치러야 하는 것이 우리 과의 당면한 최대 과제임을 강조하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지구는 돌아 날이 바뀌고 드디어 9월1일이 왔다. 그리고 지나갔다.

 

누가 뭐래도 안 청장님은 국세청 개혁작업에 큰일을 해내셨다.

 

정말 나는 본청에 들어와 두달 열흘동안 안팎으로 시달리며 골병이 들었다.

 

그야말로 정도세정이 사람 잡아놓았다.

 

그때 밤낮없이 같이 고생한 우리 직원들에게 아무런 보답도 못해 드린 채 나 혼자 훌훌 털고 나와 버려 지금까지도 죄송한 마음뿐이다.

 

80. 위로출장

 

성공적으로 출발한 개혁작업이 차츰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제2개청에 정말로 고생을 한 사람을 꼽으라 하면 지금 본청에 있는 O, H, 그리고 나, 세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청장님은 세사람을 해외로 위로출장을 보내주셨다.

 

나는 일선 세무서 납세자 보호담당직원 일곱명과 함께 호주와 뉴질랜드에 가는 걸로 돼 있었다.

 

이번 일에 나와 함께 고생한 우리 과의 '송 사무관'을 두고 가려니 미안했다. 청장님에게 부탁드려 한사람 더 데려가도록 허락받았다.

 

호주의 '골드코스트'는 케나다의 '밴쿠버'와 함께 정말로 살고 싶은 곳이었다. 세계 부호들의 별장이 많이 있었다.

 

뉴질랜드는 자연 그대로 인간의 때가 묻지 않았다.

 

자연도 그랬지만 사람들도 순수한 것 같았다.

 

그곳에는 신문이 필요없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뉴스꺼리가 될 만한 사건이 전혀 발생하지 않으니 말이다. 기껏 해봐야 야생동물 보호를 위해 야간운전에 특히 조심하라, 나무사태가 발생이 예상되니 조심하라는 뉴스가 대부분이다.

 

심심할 정도로 조용하다.

 

우리같이 남과 북, 동과 서, 좌익과 우익, 진보와 보수, 강남과 비강남, 사기꾼과 도둑놈, 죽일 놈과 살릴 놈 등등의 갈등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열흘만에 다시 복잡한 서울로 들어가려 하니 겁도 나고 아쉽기도 했다. 처음 외국에 나온 일행들과 상의해 귀국길에 태국을 경유하기로 했다.

 

나는 스튜어디스에게 종이 한 장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사표를 썼다.
자유로운 나의 인생을 위하여.

 

일행들은 방콕 시내관광을 나가고 나는 S기업의 현지법인장에게 부탁해 골프장 부킹을 했다. 온 김에 그동안 골병든 심신(心身)을 달래고 실컷 놀아보자는 속셈이다.

 

그리고는 국내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고교동창 K와 S, 그리고 K선배님을 방콕으로 초청했다. 방콕으로 즉시 날아온 그들과 나는 3일을 같이 라운딩했다.

 

귀국길이다.

 

친구들은 여기에 온 김에 더 놀다간다고 한다.

 

우리 일행과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파란 창공에 마치 솜처럼 떠있는 흰구름을 바라보며 나는 상념에 잠겨있었다.

 

태국으로 날아온 저 친구들은 무슨 팔자가 좋아 자기의 뜻대로 오가며 자유로이 날아다니나? 그들의 인생이 부럽기 짝이 없었다.

 

나는 도대체 이게 무어냐?

 

학교 다닐 때 내가 저들보다 공부를 못 했나, 저들보다 집안이 어려웠나? 몇년있으면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직장에 목이 매여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고 이렇게 구속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것에 나 자신이 한없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국행 비행기를 타야만 하나?

 

직장이 뭐고 승진은 또 무어냐?

 

모두가 부질없는 것.

 

지난달 딸아이 시집을 보내고 난 이후에 돈에 눈이 멀어버린 처가사람들을 생각하니 더더욱 울화가 치민다.

 

나는 지금까지 한마디 해명도 변명도 하지 않은 채 그들의 본성(本性)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래! 귀국하면 그만두자! 사표를 내자.'

 

공무원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가보고 싶은 것, 모든 것을 억제하며 살아온 지금까지의 나의 삶을 더 늦기 전에 되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컸다.

 

나는 스튜어디스에게 종이 한 장을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사표를 썼다.

 

자유로운 나의 인생을 위하여.

 

청장님에게 귀국인사를 드리는 자리에서 제출하기로 작정을 하고 고이 접어 안주머니에 넣었다.

 

창밖에는 그동안 국세청에 들어와서 지나온 고락의 나날들이 구름에 묻혀 지나가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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