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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7.06. (일)

"박 계장, 빽 한번 써봐" (72)

창간 41주년 기념 기획연재 박찬훈(朴贊勳) 전 삼성세무서장

그날 우리는 서로의 지나온 과거에 대한 이야기로 밤이 새는 줄도 몰랐다. '시아'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경북 ○○에서 갑부의 딸로 자란 그는 남동생과 둘이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머슴과 하인도 여럿이며 뒷산에 만들어 놓은 석빙고(石氷庫)에서 얼음을 꺼내 여름에 먹을 정도로 일반인들과는 다른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런 생활도 대규모 양조장을 경영하던 아버지의 외도(外道)로 인해 어머니가 화병으로 돌아가시고부터 어린 '시아'와 그의 동생의 시련이 시작됐다.

 

동생과 함께 외가집에서 학교를 다녔다. 외가집이 그 지역에서 제일 큰 부자였으며 아버지가 경영하는 양조장도 사실은 외가 집에서 준 것이었다.

 

외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 당시 천주교에 귀의해 소위 개화(開化)된 사고를 일찍부터 갖고 있었다.

 

모든 재산을 성당에 기부하고 외손자녀를 사랑으로 돌보며 헌신하셨다. 그리고 사위이자 '시아'의 아버지를 원수처럼 생각하게 됐으며 가족으로서의 연(緣)을 끊어버렸다.

 

그러나 '시아'는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서 첩실과 함께 피신해 살고 있는 경남 ○○으로 여름방학 기간에 아버지를 찾아갔다.

 

이런 사실을 외할머니가 알고는 무척 화를 내면서 꾸중을 하고 혼을 낸 모양이다.

 

"그렇게 보고 싶으면 나가서 그놈하고 살아라!" 하시면서.

 

어린 마음이지만 내 아버지 보는데 뭐가 잘못됐냐 하고 대들었다.

 

그길로 병원을 하던 친구 아버지에게 부탁해 대구의 우리집 부근 작은 병원에 와서 근무하게 됐고 나를 만나게 됐다고 했다.

 

방학이 끝나면 외할머니에게 돌아간다고 하고 있었는데 나를 만나게 됐다. 외가 집에서는 '시아'를 찾는다고 난리가 난 모양이었다.

 

결국 '시아'는 나를 만남으로 인해 학교도 계속하지 못했다.

 

'69년 서울로 간 이후 소식이 없었던 것은 서울 언니집에 가있는 동안 몸이 아파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는데 잘못돼 의식이 불명인채 4∼5년을 요양원에서 생활을 하게 됐다.

 

그러니 연락이 되지 않을 수밖에.

 

그후 건강을 회복해 수도 없이 편지를 나에게 보냈으나 답장이 없었다. 내가 그를 찾아 서울로 간 줄도 모른채 반대로 나를 만나려고 대구의 우리 집을 찾아와 먼발치에서 대문만 지켜보며 기다렸다.

 

이러하기를 수차례. 한번은 용기를 내 누나를 만났는데 누나는 내가 벌써 결혼을 했다며 연락처도 가르쳐 주지 못한다고 한 모양이다.

 

지금에 와서 안 사실이지만 수없이 보낸 편지는 누나가 나에게 전하지 않고 모두 태워 버렸다고 했다.

 

세무서에 다닌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왜 찾지를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옛날에 내가 '시아'를 만날 때마다 대학을 졸업하면 사표 내고 다른 것을 하겠다고 입버릇처럼 한 말을 그대로 믿었기 때문에 국세청에 계속 다니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단다.

 

'시아'는 양조장을 하던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가?

 

세무서에 다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다른 학생들은 주간에 공부에만 전념하고 있는데 학비 벌려고 주간에는 세무서에 야간에는 학교에 다니고 있는 것이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둔다는 말을 자주한 것 같다.

 

그후, 그는 서울에서 간호원 생활을 하게 됐고 입원환자를 정성으로 돌보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한 꿈도 희망도 접었다고 했다.

 

그러던 중 자기가 간호하던 한 노인의 처지를 이해하게 되고 계속 간호가 필요했던 그 환자를 설득한 끝에 결국 그의 호적상 처(妻)로 입적을 하게 되었다.

 

 

 

현관에 도열하고 있던 각 과장님과 악수를 하고 나서 서장실로 안내를 했다. 수행 온 직원들을 내보내고 청장님과 둘만이 남았다.

 

"아우님! 나 이제 국세청장 했어."

 

 

 

현관에 도열하고 있던 각 과장님과 악수를 하고 나서 서장실로 안내를 했다. 수행 온 직원들을 내보내고 청장님과 둘만이 남았다.

 

"아우님! 나 이제 국세청장 했어."

 

 

 

78. 청장님의 초도순시

 

'99년5월16일 차장으로 있던 '안○○'님이 청장으로 취임을 했다. 본청에서 거행된 취임식에 참석하고 돌아오려는데 '기획 관리관실'에서 나를 찾았다.

 

청장님 취임후 첫 순시를 내일 오후 세시에 서초로 가게 됐으니 빨리 가서 준비를 하란다. 그러면서 "왜 서초를 제일 먼저 가시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나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77년 내가 6급으로 재무부에서 을지로서에 나올 당시 과장님으로 모시게 된 이후 부부동반 등산도 가고 과장님 자택에서 냄새나는 홍어회도 많이 얻어먹었다.

 

그때 주로 차석들의 모임인 을우회(乙友會)의 회장님이셨던 청장님은 이제 그 당시 회원들은 모두 국세청을 퇴직하고 오직 나 혼자 남아있었기 때문에 나를 만나러 오신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였다.

 

본청에서 오자마자 나는 사무실을 깨끗하게 대청소를 하고 보고드릴 현안사안인 종합소득세 신고 관련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튿날 오후 세시에 청장님이 도착하셨다.

 

현관에 도열하고 있던 각 과장님과 악수를 하고 나서 서장실로 안내를 했다. 수행 온 직원들을 내보내고 청장님과 둘만이 남았다.

 

"아우님! 나 이제 국세청장 됐어."

 

나의 손을 잡으면서 비장하게 말씀하신다.

 

"아우님 이제 잘 좀 도와줘."

 

"축하드립니다. 이제 그동안 품으셨던 포부를 실천하십시오"

 

"응 그래, 그래서 이번에 청장이 된 첫 작품으로 서기관 이상은 희망지를 받아 대대적으로 고충해소 인사를 하려고 해"라고 하신다.

 

"청장님 그런 건 하지 마십시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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