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 와보니 또 기가 막힌다.
고장난 TV는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방치돼 있고, 소파라고는 부서져 도저히 앉을 수가 없었다.
새까맣게 때가 낀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아마 5, 6년전에 먹다 남은 김치찌개 찌꺼기가 응고돼 썩고 있었다.
'이런 자식들!' 욕이 저절로 나왔다.
이걸 기숙사라고 들어와서 청소 한번 하지 않고 잠만 자다가 이튿날 몸만 쏘옥 빠져나가는 직원들이나 그걸 관리하는 간부들이나 모두 똑같이 한심하단 생각이 들었다.
서장 관사.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여기도 마찬가지다.
지난 서장들은 여기서 살지 않고 잠도 여기서 자지 않은 것 같았다.
벽지는 떨어져 너덜거리고 있고 이방 저 방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어 당장 오늘밤이 걱정된다.
6급인 총무과장과 행정계장이 이번 인사에 전출대상이라 했다.
그래서 이렇게 방치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된다.
참으로 한심한 직원들이다.
이렇게 해놓고도 한번도 와 보지도 않은 모양이다.
이럴 땐 집에서라도 와서 정리라도 좀 해주면 좋으련만….
그날 밤 나는 소파에 쪼그리고 앉아 뜬눈으로 날밤을 지새웠다.
이빨을 빡빡 갈아대면서….
해가 뜨자마자 관사를 나왔다.
세무서 부근에 있는 해장국집으로 차를 몰고 가서 아침을 해결하고 난 후 여기까지 온 김에 세무서 청사를 한번 가보기로 했다.
일곱시가 넘어 여덟시가 다 돼 가는 데도 정문의 철대문은 아직도 굳게 닫혀져 있고 지붕위의 국기 게양대에는 아직까지도 국기를 게양하지 않아 깃대와 깃봉만 앙상하게 서 있었다.
'이런 망할 녀석들이 다 있나.'
벨을 아무리 눌려보아도 도통 인기척이 없다.
다른 세무서 같으면 이 시각이면 벌써 출근하는 직원도 있을법 한데….
나는 차를 후진시켜 대문 앞에 바짝 붙이고는 뒷 트렁크를 딛고 올라 대문을 훌쩍 뛰어넘었다.
직원 놈은 숙직실 방에서 팬티만 입고 웃통은 벗은 채 골아떨어져 있고, 수위놈은 민원실 책상을 모아놓고는 그 위에서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고 있었다.
선풍기 석대를 총 동원해 자기 몸쪽을 향하게 틀어놓고….
나는 기가 막혀 큰소리로 그들을 깨웠다.
"야! 이놈들! 뭣들 하고 있는 거야!"
직원과 수위 녀석이 눈을 비비며 황급히 내 앞에 와서 부동자세로 섰다. 웃통을 벗은 채로.
"너 어느 과 누구냐?"
"예 부가가치세과 7급 '이○○'입니다."
"그리고 민원실에서 나온 너는?"
"지는 수위입니다."
"이름은?"
"예 이○○이래유."
"너희 두놈, 즉시 국기 게양하고 이리와!"
나는 두 녀석을 혼을 내주려다 참았다.
왜냐하면 이 두 녀석뿐만 아니라 전체가 모두 똑같을 건데 이들만 혼을 내서는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직원조회 시간에 얘기를 하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참았다.
"앞으로 좀 잘하시오"
"이씨, 저 차들은 다 뭡니까?"
직원들이 아직 아무도 출근하지 않았는데 벌써 주차장이 꽉 차있다.
이럴 땐 집에서라도 와서 정리라도 좀 해주면 좋으련만….
그날 밤 나는 소파에 쪼그리고 앉아 뜬눈으로 날밤을 지새웠다.
이빨을 빡빡 갈아대면서….
동네 사람들이 세워 놓고 아침에 가져가는 사람도 있지만 그냥 놓아두고 자기집 주차장처럼 쓰는 사람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그것 참!
"이씨! 저 정문 앞에 있는 작은 건물은 뭐요?"
원래는 수위실로 지었는데 지금은 못 쓰는 비품을 넣어두는 창고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이씨! 저 마당에 있는 고목은 왜 저렇게 됐소? 왜 치우지 않고 있소?"
초봄에 쌓인 눈을 치우려고 제설재를 많이 뿌렸더니 죽었다고 하면서 목재소 보고 가져가라 해도 안 가져간단다.
이 친구 좀 모자라는 친구아닌가?
잘한 것처럼 아주 당연한 것처럼 말하고 있다.
아침 티타임시간. 그날 나는 각 과장을 호되게 나무랐다.
특히 총무과장과 행정계장에게는 따끔하게 얘기를 해줬다.
"당신 둘은 이번 인사에서 딴 데로 간다고 이렇게 하는거요?"
"청장님께 말씀드려서 당신들은 공무 부적격자로 반드시 하향전보를 시키도록 하겠소."
본청 인사계장 출신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효과가 나는 듯했다.
"총무과장, 그리고 행정계장!"
"두분은 가기 전에 지금 내가 지시하는 몇가지를 끝내놓고 가시오. 알겠어요?"
"예 뭣입니까?"
"받아 적으시오."
"첫째는, 기숙사를 쓰고 있는 직원과 수위아저씨 둘을 데리고 기숙사에 가서 방과 거실, 그리고 정원의 잡초와 빈병을 치우고 깨끗이 청소를 하고 오시오."
"그리고 관사에 도배를 시키고 청소 깨끗이 해놓으시오."
"이 일은 오늘 중으로 끝내시오."
"오늘 저녁에 내가 직접 점검을 할 겁니다. 알겠어요?"
"예."
"둘째는, 저기 정문 옆에 수위실 안에 있는 못 쓰는 책상과 의자를 오늘 중으로 갖다 버리고 말끔하게 정리하시오."
"앞으로 수위실로 쓰면서 주차정비를 할 테니까요. 알겠어요?"
"예"
"셋째는, 저기 정원에 있는 말라죽은 나무 보이지요?"
"저거 오늘 중으로 치우시오 알았어요?"
"예"
"넷째는, 3층 강당에 있는 찍찍거려 못 쓰는 마이크가 있지요?"
"오늘 당장 고쳐 놓으시오, 알았어요? 행정계장!"
"예"
"오늘은 네가지만 우선 정리하시오."
"퇴근할 때 내가 확인해 보겠소. 알았어요?"
"예, 예."
어째 대답이 좀 시원찮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