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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국세

[발언대]간편납세제도 도입 철회돼야 한다(下)

박상근 세무사 (명지전문대 교수)


 

현재 영세사업자의 소득세 신고납세제도는 기장을 하고자 하는 사업자는 '간편장부'로 간편하게 장부를 작성해 소득세를 계산할 수 있고, 장부를 기장하지 않은 사업자는 경비율에 의해 소득금액을 계산해 간편하게 세금을 낼 수 있는 제도가 이미 마련돼 있다. 경비율에 의해 소득금액을 추계하는 제도는 2002년부터 도입돼 이제 4년째로 접어들고 있으며, 과거 표준소득률에 의해 소득금액을 추계하는 경우보다 거래의 투명성을 높여 기장인원을 증가시킬 수 있는 발전된 제도다. 기준경비율제도 도입이후 기장신고 인원이 꾸준히 늘고 있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우리나라는 이제 겨우 기장신고 인원이 50%로서 OECD 평균인 80%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아직도 우리나라 소득세제는 거래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근거과세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기장인원을 대폭 늘려야 할 처지다. 또 우리나라는 사업자의 소득금액이 건겅보험료와 국민연금을 매기는 기준이 되기 때문에 사업자의 소득금액을 꾸준히 현실화해 나가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그리고 국회 예산정책처의 '2004년 세입-세출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봉급생활자들이 내는 근로소득세가 당초 예산(8조2천567억원)보다 18.9%(1조5천619억원) 더 걷힌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전체 소득세의 초과 징수율(5.6%)의 2.9배에 달하는 것이다. 게다가 개인사업자 등이 부담하는 종합소득세는 당초 예산(5조656억원)의 12.1%(6천127억원)가 덜 걷힌 것으로 드러나 정부가 사업자의 소득금액 현실화는 덮어두고 세원파악이 쉬운 직장인들의 '유리지갑'만을 털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앞으로 유리지갑만을 터는 이런 풍토가 개선되지 않으면 조세형평 시비가 끊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는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낳는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이런 시점에서 정부 스스로가 사업관련 거래의 투명성을 후퇴시켜 사업자에 대한 근거과세를 허물고 나아가 사업자와 근로자간의 소득세 부담의 불공평을 더욱 확대시킬 소지가 있는 간편납세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수십년간 꾸준히 추진해 온 정부의 기장확대정책에 정면으로 배치되며, 세제의 백년대계를 망치는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정부가 제도를 개선한답시고 세제의 기본을 허무는 등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엉뚱한 과오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소득금액계산방법은 단기적으로 현행 간편장부와 기준경비율제도의 미비점을 검토해 연차적으로 기장인원을 확대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비율로 소득금액을 계산하는 제도 역시 과도기적으로 도입한 과세특례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모든 사업자의 소득세를 장부와 증빙자료에 의해 계산하는 원칙적인 과세방법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가 영세사업자의 진정한 애로사항인 과표 노출과 증빙수취의 어려움에 따른 세부담 증가를 해결해 주려면 수입금액증가 세액공제의 확대, 기준경비율제도의 개선, 세금계산서 등 증빙자료 발행과 수취를 촉진하는 제도 마련 등 근거과세를 허물지 않는 범위내에서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가 소득금액추계방법을 표준소득률에서 기준경비율로 전환할 당시 장기적으로는 기준경비율제도도 폐지하고 장부와 증빙에 의해 소득세를 계산하는 원칙적인 방법으로 전환할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고 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세제 개편도 기본과 원칙에 충실해야 성공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정부는 세제를 개편함에 있어 당장의 '간편'에 치중한 나머지 기본과 원칙에 맞지 않는 간편납제제도를 도입하는 식의 고식지계(姑息之計)로 흐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모든 사업자의 소득세를 장부와 증빙자료에 의해 계산하는 원칙적인 과세방법으로 전환할 경우 원칙적인 과세방법이 정착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겠지만 꾸준히 밀고 나간다면, 결국에는 소득세 계산과정에 광범위하게 예외를 인정하는 경우보다 더욱 빨리 원칙적인 과세방법이 정착될 것이다.

여기서 일본의 경우를 보자. 일본 납세자는 어떤 형태로든 사업에 관한 기록과 증거를 남기려는 의식을 갖고 있다. 판매자와 소비자간에 영수증을 주고받는 것이 일상화돼 있고, 대부분 조세는 신고납부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며, 모든 세무신고는 세리사(우리나라의 세무사)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납세환경 하에 있는 일본은 소득세 신고를 납세자가 작성한 장부와 증빙에 의해 소득세를 자진신고·납부하는 원칙적인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동일 업종에 속한 사업자의 소득률이나 경비율을 적용해 소득금액을 추계하는 특례제도는 없다. 그리고 세계 어느 나라가 정부가 도입하고자 하는 형태의 간편납세제도를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우리나라의 납세환경은 일부 납세자가 과세근거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영수증 발행과 수취를 기피하는 것이 현실이다. 또 우리나라 현행 세제는 기본에서 벗어난 과세특례제도를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거래가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이에 따라 과세근거가 제대로 노출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세제가 효율적이고 공평한 선진세제로 가려면 사실과 다른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과세특례제도를 없애 나가야 한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영세사업자의 납세편의를 앞세워 정부가 앞장서서 소득세제에 또 하나의 과세특례인 간편납세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구체적 사례로 2000년 상반기까지 시행됐던 부가가치세 과세특례를 보면, 이 제도는 매출액의 2%를 매출세액으로 하고 매입세액의 20%를 차감해 부가가치세를 내는 제도이다. 매출액의 10%를 부가가치세로 징수해 납부하는 일반과세제도에 비해 간편납세제도에 속한다. 부가가치세 과세유형은 일반과세가 원칙이고 과세특례는 예외인 것이다.

하지만 이 예외 제도인 과세특례를 적용받을 수 있는 사업자의 범위가 계속 확대돼 왔다. 과세특례를 적용받을 수 있는 매출액의 범위가 '77년 7월 부가가치세 도입 당시에는 연간 매출액 기준으로 1천200만원이었다. 이 과세특례기준금액을 정부가 영세사업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79년 2월 2천400만원으로, '88년 6월 3천600만원으로, '95년 12월 4천800만원으로 각각 확대했다. 여기에다 '95년 12월에는 매출액 4천800만 원 초과 1억5천만원에 미달하는 사업자를 대상으로 또 하나의 부가가치세 과세특례인 간이과세제도를 도입했다.

정부가 부가가치세 과세특례 적용대상을 계속 확대함에 따라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 비율('99년 제2기 기준)은 정상 과세자인 일반과세자가 120만명(41%), 비정상 과세자인 과세특례자와 간이과세자가 173만명(59%)에 달하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비정상 상태는 '99년 12월 간이과세 범위를 연간 매출액 4천800만원에 미달하는 사업자로 축소하고 과세특례제도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세법을 개정해 2000년 7월부터 시행함으로서 어느 정도 정상을 되찾았다. 현재 부가가치세 과세유형별 납세의무자 비율은 일반과세자가 51%, 간이과세자가 49%로서 간이과세범위를 축소하고 과세특례제도를 폐지한 이후 상당히 개선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직도 부가가치세 간이과세제도는 해당 사업자의 세금계산서 수수 기피로 근거과세에 많은 지장을 주고 있으며, 간이과세 규모가 아닌 일반과세 대상자가 매출을 누락해 일반과세자로 전환하지 않음에 따라 자영업자의 탈세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실정에 있다. 그러므로 학계와 조세전문가로부터 현행 부가가치세 간이과세제도는 근거과세를 이룩하고 조세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하기 위해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다음으로 양도세 과세기준을 기준시가 원칙으로 운영하고 있는 현행 양도소득세제의 문제점이다. 양도세 과세기준을 실거래가 원칙이 아닌 기준시가 원칙으로 운영하는 것은 근거과세와 공평과세에 어긋난다. 그런데도 정부는 양도세 과세기준을 '83년부터 22년동안 잘못된 과세원칙인 기준시가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04년 부동산 거래로 양도세를 낸 사람 중에서 72%가 실거래가를 제쳐두고 잘못된 과세기준인 기준시가로 세금을 냈다.

양도세 과세기준을 기준시가 원칙으로 운영하고 있는 데는 실거래가를 감추려는 납세자의 책임도 있지만 그동안 실거래가 파악을 위한 시스템 구축에 노력하지 않고 행정편의주의로 세제를 운영해 온 정부의 책임이 더 크다. 정부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2007년부터 양도세 과세기준을 근거과세와 공평과세를 실현할 수 있는 실거래가 원칙으로 바꾸기 위해 세법과 관련법 개정을 추진 중에 있다.

현재 사회 각 분야에서 투명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에 따라 투명성이 제고되는 방향으로 법과 제도가 개선되고 있는 것이 시대의 흐름이다. 이 흐름에서 세제만이 예외일 순 없다. A. Smith와 A. Wagner가 조세원칙으로서 '세제의 간편성'을 주장했지만 근거과세와 공평과세가 먼저고 간편성은 후순위다. 그러므로 근거과세와 공평과세에 어긋나고 투명성을 후퇴시킬 우려가 큰 간편납세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조세원칙에 배치되고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다.

정부는 영세납세자의 소득세 납세의 애로를 해결한답시고 조세의 기본원칙을 허무는 간편납세제도를 도입하는 등 세금문제를 정치논리로 해결하려 해선 안 된다. 원칙과 기본에 맞지 않는 세제는 의도하는 효과를 얻지 못하면서 사실왜곡에 따른 새로운 부작용만 양산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이제 와서 또다시 부가가치세제에 있어 과세특례를 확대하려는 것과 같고, 양도소득세제에 기준시가 적용대상을 늘리려는 발상과 다름없다. 잘못 도입된 제도의 해악이 얼마나 크며, 이를 바로잡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하는지를 '부가가치세 특례과세제도'와 '양도세 기준시가 과세원칙'이 잘 보여 주고 있지 않는가.

현재 간편납세제도 도입을 둘러싸고 정부와 세무·회계사업계간에 시각차가 너무나 크다. 이에 따라 쓸데없는 오해를 불러오고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는 영세사업자의 간편 납세라는 미명하에 세제의 기본원칙인 근거과세를 허물고 거래의 투명성을 후퇴시키는 간편납세제도를 일방적으로 추진해서는 안된다.

이제 정부는 세무·회계사업계 등 관련 단체를 상대로 간편납세제도의 도입목적, 적용대상 등을 구체적으로 밝혀 쓸데없는 오해와 불신을 불식시키고 상호 협조체제를 구축하기 바란다. 물론 앞으로 공청회 등 여론 수렴절차를 거치겠지만 제도 도입 검토단계와 입법안 마련과정에서부터 관련단체의 의견을 들어보고 바람직한 개선방안을 함께 마련한다 해서 손해볼 일이 있겠는가. 간편납세제도 추진 당국의 열린 행정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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