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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5.05. (일)

내국세

[발언대]간편납세제도 도입 철회돼야 한다(上)

박상근 세무사 (명지전문대 교수)


 

정부는 세제간소화의 일환으로 영세 자영업자, 중소기업이 간편하게 소득세를 신고·납부할 수 있는 '간편납세제도' 도입을 추진 중에 있다. 정부가 영세 사업자의 소득세 신고를 돕기 위해 간편납세제도를 도입한다고 하지만 진정한 도입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불분명하다.

정부가 입법예고한 내용에 따르면 간편납세제도는 증빙을 성실히 갖춘 영세 사업자가 국세청이 제공하는 전자장부를 이용해 소득세를 간편하게 신고·납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로 보인다. 이러한 간편납세제도라면 현행 소득세법에 규정하고 있는 '간편장부'로도 그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현행 간편장부제도는 영세사업자가 매출과 매입사항을 단순히 기록한 가계부 수준의 장부를 근거로 간편하게 소득세를 계산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제도이다.

현재 직접 간편장부를 작성하거나 전자신고를 하는 사업자가 소수에 불과한데 국세청이 제공하는 전자장부를 이용해 세금을 신고할 사업자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아무리 간편한 신고제도를 만든다 하더라도 납세자에겐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정부는 기존 간편납세제도에 더해 또 새로운 간편납세제도를 도입한다면 납세자의 혼란만 가중시킬 우려가 크다.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현재 시행되고 있는 간편장부에 의한 소득세신고 인원이 1999년 17만5천명에서 2003년 42만명으로 4년동안 무려 1.4배 늘어났다. 동 기간동안 복식부기의무자를 포함한 전체 기장 신고인원은 0.8배 늘어나는데 그쳤다. 이를 보면 세무사가 세무를 대행하는 영세사업자를 중심으로 간편장부 이용이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부는 영세사업자가 소득세 납세의무를 이행함에 있어 애로사항을 장부작성의 어려움과 세무사 비용 등 납세협력비용이 과중함에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영세사업자의 근본적인 애로사항을 잘못 파악한 것이다. 소득세와 관련된 영세사업자의 진정한 애로사항은 매출이 갑자기 늘어나는데 따른 세부담의 급격한 증가와 매입증빙을 제대로 갖출 수 없어 세부담이 늘어나는데 있다. 이것이 어찌 장부기장과 납세협력비용에 관련된 애로사항인가.

매입증빙을 갖추지 못해 세부담이 늘어나는 영세사업자의 애로사항도 현행 기준경비율제도와 단순경비율제도가 어느 정도 해소하고 있다. 기준경비율과 단순경비율은 장부와 증빙자료에 의해 소득금액을 계산할 수 없는 사업자의 소득금액 계산에 적용되는 경비율이다. 즉 경비율에 의한 소득금액 계산은 장부를 작성하지 않은 사업자에 대해 정부가 정한 일정율을 적용해 증빙이 없는 경비의 일부를 매출액에서 차감해 소득금액을 계산하는 제도이다.

장부와 증빙자료가 없어 정부가 정한 경비율을 적용해 소득세를 계산한 사업자는 101만3천명(2003년 귀속 기준)으로서 총 사업자의 50%에 달한다. 절반에 해당하는 사업자가 실지 벌어들인 소득금액으로 세금을 내지 않고, 동일업종에 속한 기장이 성실한 사업자의 경비율에 의해 계산한 소득금액을 기준으로 소득세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소득 과세에 있어 조세의 기본원칙인 근거과세와 공평과세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추계과세(특례과세) 비중이 너무 크다.

장부와 증빙자료가 없는 사업자에 적용되는 소득세 추계과세제도(특례과세제도)는 2001년까지 표준소득률을 적용했으나, 2002년부터 경비율을 적용해 소득세를 계산하는 방법으로 바뀌었다. 소득금액 추계방법을 소득률에서 경비율로 바꾼 것은 소득금액 계산에 있어 거래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 개선인 것이다. 예를 들어 A사업자의 매출액이 3억원이고 표준소득률이 15%인 경우 추계소득금액은 4천500만원이다. 아무런 지출증빙이 없어도 정부가 인정하는 경비는 2억5천500만원이 된다.

그러나 A사업자의 소득금액을 기준경비율에 의해 추계하는 경우에는 주요경비(재료비, 노무비, 임차료)는 세금계산서, 신용카드전표 등 정부가 인정하는 지출증빙이 있어야 비용으로 인정받을 수 있으며, 주요 경비 외의 소소한 경비에 한해 정부가 정한 경비율에 의해 계산한 일정금액을 비용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돼 있다. 위 사례의 경우 정부가 인정하는 증빙을 갖춘 재료비가 1억원, 노무비가 5천만원, 임차료가 3천만원이고, 기준경비율이 18%인 경우에 추계 소득금액은 6천600만원{3억원-(1억원+5천만 원+3천만원)-(3억원 18%)}이 된다.

표준소득률에 의해 소득금액을 추계할 경우에는 A사업자에게 재화와 용역을 제공한 사업자의 과세자료 1억8천만원이 현실화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기준경비율에 의해 소득금액을 추계할 경우 A사업자가 주요경비에 해당하는 1억8천만원을 비용으로 인정받으려면 거래 상대방으로부터 매입에 관한 세금계산서 등 증빙서류를 수취해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 A사업자와 상대 거래처의 주요 거래내용이 투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기준경비율에 의해 소득금액을 추계하는 경우가 표준소득률에 의해 소득금액을 추계하는 경우보다 거래의 투명성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준경비율제도는 근거과세와 공평과세 측면에서 과거 표준소득률제도보다 진일보한 제도라 하겠다.

또 하나의 사례로 양도세가 과세되는 주택을 양도한 B의 경우 현행 세법상 양도세는 원칙적으로 실지 양도가액, 실지 취득가액, 실지 지출비용과 관계없이 정부가 정한 기준시가로 과세된다. 이 경우 그동안 양도자 B가 인테리어업자 C에게 주택 인테리어공사를 의뢰하고 지출한 금액 5천만원이 있을 경우 기준시가로 양도세가 과세된다면 이 인테리어 비용은 양도세 계산시 공제되지 않는다. 따라서 양도자 B는 인테리어 비용 5천만 원을 양도세 신고시 정부에 보고하지 않게 되고, 인테리어업자 C도 5천만원의 공수입금액을 부가가치세와 소득세 신고시 세금계산에서 누락시킬 가능성이 크다.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게 세제를 운영해야 할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양도세가 기준시가로 과세됨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주택 인테리어 용역 등 주택 보수(補修)관련 업자의 부가가치세와 소득세 누락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문제점은 정부가 양도세 과세기준을 실거래가로 정상화시킴으로서 해소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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