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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5.19.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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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법인세 1% 정치자금화, 급하지 않다


정치권의 온갖 '검은돈' 비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와중에 이른바 '법인세 1% 정치 자금화'를 위한 작업이 정치권 내부에서 한창이다. 기업들이 내는 법인세 중에서 매년 1%씩을 정치후원금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제도화하자는 것인데, 여·야 할 것 없이 이 부분에서만큼은 공감을 넓히고 있다.

정치권이 추진하는 이것이 제도화된다면 정치권은 매년 가만히 앉아서 1천억원에 가까운 돈을 챙길 수 있게 된다. 기업들이 1년에 내는 법인세는 대략 17조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외국법인과 법인세액 3억원이하 법인 등은 정치자금 갹출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여·야가 의견을 모으고 있다. 그렇게 될 경우 아무리 짜게 잡아도 해마다 기업이 낸 혈세 950억원 가량이 정치자금으로 '입고'되게 되는 것이다.

정당정치의 활성화와 부패없는 정치문화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세금을 공적 정치자금으로 활용하겠다는 취지는 이해 못하는 바 아니다. 그러나 이 문제가 불거져 나온 시기와 저간의 정치 정황 등을 종합해 볼때 그 순수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왜 하필 불법 대선자금 문제로 온 정치권이 만신창이가 되고 있고, 국민들의 정치 혐오감이 극에 달한 이때 이 문제가 싹을 틔우고 있는가. 한마디로 우리나라 정치권의 '후한무치'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있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도둑은 난장판을 좋아한다더니 혼란을 틈타 날치기로 챙길 것 다 챙기겠다는 심사인가. '이제 밑천 다 드러나고  망가질 만큼 망가졌으니 더 잃을 것도 없다'는 심사가 아니고서야 이런 '배짱'이 나올 수 없다.

정치권은 '세금 거둬서 우리 도와주시오' 하기 이전에 국민 앞에 '석고대죄'이상의 자기반성이 있어야 한다. 정치권이 그동안 기업들로부터 '수탈'한 그 무시무시한 돈뭉치들은 따지고 보면 모두가 국민 부담으로 연결된다. 기업들은 검은 돈을 만들기 위해 온갖 회계부정을 저질렀고 그 돈은 고스란히 국민이 나눠서 부담한 것이다. 이런 마당에 이제는 아예 나라에서 정치자금을 거둬 달라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방식의 정치자금 국고지원은 동의할 수 없다. 최소한 국민이 조금이라도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정치권의 진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정치행위에 소요되는 비용의 과학적인 입증도 병행돼야 한다. 여야가 이미 합의한 지구당 폐지와 같은 것은 정치자금의 수요를 줄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새 '절약형'을 가지고 공적지원 규모를 정해야 한다. 아이들 땅따먹기 하듯 몇%를 뚝 떼서 정치자금으로 쓰겠다는 것은 발상 자체가 잘못됐다. 법인세수가 매년 늘어나는데 정률방식으로 규모를 정한다는 것은 이치에도 안 맞는다.

세금으로 정치자금 조달하는 문제를 정치권이 그들 편의대로, 또 졸속으로 처리해서는 안된다.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부터 먼저 해야 한다.  규모와 징수방법은 그 뒤에 논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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