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신임 경찰청장에 이철성 경찰청 차장이 내정된 가운데 강신명 청장도 주목받고 있다. 바로 '경찰청장 2년 임기제'를 달성한 두번째 인물이 됐기 때문이다.
임기제는 2003년에 도입됐다. 국민이 느끼는 가장 가까운 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경찰이 그동안 정치 풍향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해 오면서 경찰청장 자리는 쉽게 보전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권력에 대한 국민 불만이 커지면 제일 먼저 교체 대상으로 떠오르는 자리로 과거부터 치안본부장이나 경찰청장이 자주 포함됐다.
그래서 도입된 것이 바로 '임기제'였다. 임기를 보장해주면서 권력으로부터 독립하고 경찰의 중립성을 강화해 경찰청장에게 힘을 실어주자는 논리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임기제는 경찰청장의 '흑역사' 중에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임기제가 도입된 후 거쳐 간 경찰청장은 모두 9명(강신명 청장 포함)이다.
이 가운데 2년 임기제를 채운 경찰청장은 이택순 청장과 강신명 청장 단 두 사람 뿐이다.
임기제는 시행 첫해부터 무용론이 거세게 일었다. 최기문 청장은 당시 경찰 고위직 인사와 관련해 청와대와 갈등을 빚으며 2004년말 임기만료 3개월을 앞두고 사의를 표명했다. 첫 임기제 청장의 불명예 퇴진으로 경찰 안팎에서는 임기제 무용론이 상당했다.
이같은 불신은 경찰청장이 교체될 때마다 반복됐다. 그만큼 임기를 채운 경찰청장을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었다는 걸 증명한다.
역대 임기를 채우지 못한 청장들의 공통점은 주로 집회시위 과잉대응 등의 이유로 자리를 보존하지 못했거나 정권의 국면전환용 희생양이 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기문 청장 후임인 허준영 청장도 2년의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자리에서 물러났다. 농민 전용철씨가 시위 도중 숨지는 사건이 발생, 과잉진압 논란으로 퇴진압력을 받았다. 허 청장은 취임 1년여만에 스스로 물러나게 됐다.
미국산 쇠고기 촛불집회 과잉 대응과 불교계와의 마찰로 인해 퇴진압력에 시달렸던 어청수 청장도 2009년 1월17일 사의를 표명하고 중도하차했다.
어 청장은 임기제와 관련해 "부당한 외압에 의한 사퇴를 예방하는데 제도 취지가 있다"며 "스스로 조직 발전을 위해 용퇴하는 것까지 제한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희락 청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2010년 8월5일 스스로 경찰청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강 청장은 용산참사로 수뇌부 공백기를 맞은 2009년 3월 경찰청장에 부임했지만 다른 청장들과 마찬가지로 임기를 마치지 못했다.
경기 수원 여성 살인사건(일명 오원춘 사건)으로 2012년 5월 경찰청장에 오른 김기용 청장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경찰 내·외부를 추스르는데 기여를 했지만 새 정부 출범에 따라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후임자에게 자리를 넘겨줬다.
이성한 청장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에 대한 부실수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임기 1년4개월 만에 사퇴했다.
강신명 청장이 임기제를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재임기간 특별한 실책이 없을 정도로 '무난하게' 경찰총수직을 수행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부산 학교전담 경찰관의 여고생 성관계 파문이 있었지만 강 청장 임기 말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임기제를 흔들만한 뇌관이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임기제가 앞으로도 지켜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임기제 취지는 정치적 중립 보장이지만 현실에서는 사실상 구두선에 가깝다.
경찰청장의 능력이나 비리 여부에 상관 없이 언제든지 청와대 등 정치권의 반전카드로 활용될 가능성이 상존한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청장의 역량 부족까지 감싸주라는 것이 아니다. 정치 논리나 정치권 호불호에 따라 청장의 위치가 좌지우지 되지 않는 게 중요하다"며 "경찰청장 스스로도 임기제의 정신을 수호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