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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5.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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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건설업계, 하도급 직불제 두고 '신경전'

"정부의 온라인 대금 지금 시스템을 이용하면 자금 유동성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대한건설협회 관계자)

"정부가 하도급 직불제 도입을 위해 하도급 대금지급보증도 면제도 확대키로 하면서 하청업체들의 불안감이 더 커지고 있습니다."(대한전문건설협회 관계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올해부터 16조원 규모의 공공발주 공사에 적용하려는 '하도급대금 직접지급 제도'(하도급 직불제)를 두고 건설업계의 반대가 격렬하다.

원청업체인 종합건설업계뿐 아니라 실질적인 수혜자이자 당사자인 전문건설업계마저 찬성에서 반대로 입장을 선회하면서 공정위의 입장이 더욱 난처해졌다.

하지만 공정위도 하도급 직불제가 정부와 새누리당이 당정협의회를 열고 도입한 정책인 만큼 끝까지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양측의 대립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8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4월 7일 광역지자체 17곳과 공공기관 20곳이 합동으로 공공 발주 공사에 대한 '하도급대금 직불제 추진 방안'을 발표했다.

이 제도는 LH, 수자원공사, 도로공사와 지방자치단체 등 공사를 발주한 공공기관이 공사, 장비, 임금, 자재 등의 공사대금을 원사업자를 거치지 않고 하도급업체에 직접 지급하는 것이다. 원사업자의 상습적이고 고의적인 임금 체불을 막기 위해서다.

발표 당시 전문건설업계는 열악한 환경에 처한 하도급업체를 돕는 희소식이라며 찬성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불과 한 달도 안 돼 반대 입장으로 돌아섰다.

근로자, 자재업자, 기계대여업자 등 2차 협력자에게 지불하는 대금까지 '공사대금 지급 시스템' 이용을 확대하는 방안이 담겨있는 것을 뒤늦게 확인했기 때문이다.

◇건설업계, 자금 운용 막혀 유동성 경색 '우려'

종합건설업계와 전문건설업계가 하도급 직불제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공사대금 지급 시스템' 때문이다.

정부는 '하도급지킴이'(조달청), '상생결제시스템'(산업통상자원부), '대금e바로'(서울시) 등을 운영 중이며, 이 시스템을 통해 온라인으로 하도급 대금 지급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통제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시스템이 적용되면 건설사들이나 하도급 업체들의 자금 유동성이 급격히 경색된다는 점이다.

통상 건설업체들은 1개 현장만 공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공사 현장을 동시에 진행한다. 그 과정에서 급하게 자재를 구입하게 돼 자금이 필요할 경우 다른 공사 현장에서 남은 돈을 투입한다거나, 미리 공사하기 전에 받은 대금을 투입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자금을 융통하면서 각각의 건설 현장에서 급하게 자금이 필요할 경우를 대비한다.

하지만 이 시스템을 사용하게 되면 해당 사업장에 지급된 공사비는 그 현장에서만 사용할 수밖에 없고, 다른 현장에 지급될 수 없다. 중간에 자금을 인출해서 사용할 수도 없게 된다.

발주자가 아예 계약체결 단계부터 원도급, 하도급, 노무·자재·장비 업체에게 각자 대금을 입금 받을 계좌를 개설토록 하기 때문이다.

각각에게 지급할 대금액, 지급 시기 등에 관한 계약 내용이 시스템에 등록되고 원도급업체가 발주자에게 원도급·하도급업체 등이 지급받아야 할 대금을 청구하면 발주자가 은행을 통해 대금을 각각의 계좌에 입금한다.

전문건설협회 관계자는 "자금 여력이 없는 하도급 업체들이 이 시스템을 쓰게 되면 돈이 필요할 때 자금을 구할 데가 없어 흑자 도산할 가능성도 있다"면서 "굳이 이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더라도 기존 제도를 잘 활용하면 체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전했다.

◇공정위, 하도급대금지급 보증 면제 '카드'로 건설사 달래

건설업계의 반발이 심하자 공정위도 하도급대금 직불제를 관철시키기 위해 하도급 대금지급보증 면제란 당근을 꺼내들었다. 직불제를 도입하는 건설사에게 보증 수수료의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것이다.

하도급대금지급보증제란 원사업자가 사업이 어려워져 부도나 가압류 등이 발생할 때 건설사 대신 공제조합에서 하도급 업체에 공사비 등을 지급해주는 보험 성격의 제도다.

공정위는 '하도급법 시행령 개정안'에 원청업체가 공사대금 지급 시스템을 사용하면 하도급대금지급보증을 면제하는 조항을 담았다. 보증이 면제되면 원청업체는 그만큼 수수료 등의 부담이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하도급대금지급보증을 면제 받은 기업이 부도나면 이 회사와 일하는 수백개의 협력업체들은 공사비를 한푼도 받을 수 없게 된다.

전문건설협회 관계자는 "하도급 직불제랑 하도급대금지급보증은 별개의 사안임에도 원 사업자에게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로 공정위가 두 제도를 엮었다"면서 "정부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장의 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정책이다"고 지적했다.

건설협회 관계자도 "전문건설협회마저 반대의 뜻을 내비쳤는데 공정위가 직불제를 관철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면서 "당정협의를 하기 전에 국토교통부 등 관련 부처와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다양하게 들었어야 했는데 충분한 논의 없이 성급히 도입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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