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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68.2세 노장들의 연극 '햄릿'… '살릴까 죽일까' 7월 개막

"연극 자체가 배우의 예술이지만 우리가 만드는 '햄릿'은 배우의 연기 그 자체, 존재감으로 승부하는 연극으로 만들고자 한다."

손진책 연출(69·국립극단 전 예술감독·극단 미추 대표) 말 그대로였다. 7일 오후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2층 로비로 들어서는 배우들은 무대 위 못지 않은 무게감을 자랑했다.

국립극장(극장장 안호상)과 공연제작사 신시컴퍼니(예술감독 박명성)가 7월12일부터 8월7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펼치는 연극 '햄릿'에 출연하는 9명의 배우 평균나이는 68.2세.

셰익스피어(1564~1616) 서거 400주년과 한국 연극사에 획을 그은 배우 출신 연출가 이해랑(1916∼1989)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이해랑연극상을 받은 한국 연극의 거목들이 뭉쳤다. 권성덕(12회), 전무송(15회), 박정자(6회), 손숙(7회), 정동환(19회), 김성녀(20회), 유인촌(10회), 윤석화(8회), 손봉숙(18회) 등이다.

햄릿 역의 유인촌이 65세, 오필리어 역의 윤석화가 60세다. 남녀 주인공인 두 사람이 각자 성별에서 막내다. 최고령자는 전무송·권성덕으로 75세다. 이들은 모두 27회 공연을 원캐스트로서 감당한다.

햄릿의 어머니인 왕비 '거트루드' 역의 손숙은 나이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자, "그건 고정관념"이라고 선을 그었다. "외국 작품을 봐도 배불뚝이 오셀로가 있고, 머리가 벗겨진 햄릿이 있다. 연습하고 있는 유인촌 햄릿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 젊은 배우가 저렇게 연기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든다"고 했다. 박명성 신시컴퍼니 예술감독이 거듭 '어르신'이라고 지목하자 "귀에 거슬린다. 난 영원한 배우"라고 웃었다.

'햄릿'에는 여성 캐릭터가 적다. 여성 배우들이 남성을 연기해야 한다. 박정자가 오필리어의 아버지 플로니어스, 김성녀가 햄릿의 친구인 호레이쇼, 손봉숙은 햄릿의 또 다른 친구인 로젠크란츠를 연기한다.

김성녀는 "역할이 어떤가를 봐야지, 성별이나 나이를 떠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녀가 맡은 호레이쇼는 극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해야하는 이성적인 캐릭터다. 하지만 "연습장에서 늘 감성에 젖어 있다"고 털어놓았다.

"동료들이, 선배들이 리딩을 할 때 열정과 연극을 사랑하는 모습에서 감성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마음이다. "전우애, 동료애가 느껴진다. 이런 장소가 귀하다. 배우로서 성장할 수 있다는 기대감 등 묘한 감정이 교차한다"고 했다

'햄릿'은 6·25 동란 중이던 1951년 이해랑에 의해 국내 첫 전막 공연이 펼쳐졌다. 고인은 1989년 4월 이 작품의 호암아트홀 공연을 앞두고 연습 도중 과로로 세상을 떠났다.

유인촌이 당시 햄릿을 연기했다. "개막 일주일 전에 돌아가셨다"며 "많은 부담이 있는데 그걸 떨치고 이런 훌륭하신 선배님들과 작품을 잘 만들어나가고 싶다"고 했다.

16년 만에 다시 햄릿을 연기한다. 이 역이 벌써 여섯번째다. "몇 차례 했다는 것이 더 큰 부담이다. 지금 나이에 이런 역을 해도 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하고. 처음 이 작품을 하는 기분으로 연습을 하고 있다"고 의지를 다졌다.

예순이 넘은 남자 막내 유인촌도 나이는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선배님들이 고통스러워하고 걱정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일단 다 잊고 하기로 했다. 관객들에게 남기는 몫이다. 경험이 극중 나이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하겠다."

덕분에 연습 분위기는 어떤 연극보다 진지하고, 열정적이다. 종종 화기애애함을 이끌어내는 '분위기 메이커'는 역시 예순이 된 막내 윤석화가 담당하고 있다. 오필리어 역 만큼은 맞지 않기를 바랐다가 이 역을 맡아 다시 데뷔하는 느낌이라는 윤석화는 "이렇게까지 힘들어하고 울면서 고민해본 적은 없다"고 했다.

연출에게 지적을 받고 선배들에게도 잘 해야 하니 신경을 쓸 곳도 많아졌다. 연습마저 잘 안 돼 기도 죽었다. 하지만 "어느날 밤 눈물 흘리다가 스스로 재미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이후 분위기 메이커가 됐다. "쉬는 시간에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재롱도 떤다. 조금이나마 이 작품에 도움이 될까 고민하고 있다"고 웃엇다.

손 연출을 비롯해 박동우 무대미술가, 박명성 예술감독 등 스태프들 역시 이해랑연극상 수상자들이다. 총 12명의 '드림팀'이 함께 만드는 공연이다.

손 연출은 "후배들 또는 연극학교 출신들과 같이 하다가 선생 역으로 연출을 했는데 이번에 든든한 배우들을 만났다. 스스로에 대한 다짐도 많이 한다. 이런 좋은 기회가 쉽지 않아서 욕심도 내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해랑 선생님이 '열심히 한다고 다 좋은 연극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 없이는 좋은 연극이 나올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을 되새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동우 무대미술가는 이번 무대의 콘셉트는 연기라고 귀띔했다. 해오름극장 무대 위에 600석 가량의 객석이 연기 공간을 3면으로 둘러싸게 된다는 그는 "뛰어난 배우들이라, 연기가 돋보이는 방법을 찾았다. 이분들의 입체화된 연기가 잘 보이게 하는 것이 이번 공연의 중요한 콘셉트"라고 전했다.

박명성 감독은 "연극계를 이끌어오신 어르신들을 모시고 프로듀서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뜻깊고 가슴이 설레고 큰 기대가 된다"며 "연습장에서 행복하게 연습하시는 것을 보고 앞으로도 이런 자리를 자주 만들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해랑은 국립극장의 역사와 같이 해온 인물이다. 1950년 국립극장 개관 당시 전속극단이던 신협의 단원이었다. 안호상 국립극장 극장장은 "이해랑 선생님을 비롯해 우리 연극 역사를 책임져온 분들을 '햄릿'을 통해 국립극장에 모신 게 감사하다. 이 분들이 모인 것만으로도 한국연극 역사에 획을 긋는 사건"이라고 전했다. 3만~7만원.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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