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국의 규제 문제 등을 강한 톤으로 지적하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완전 이행을 촉구하고 나섰다.
특히 제이콥 루 미국 재무장관의 방한을 이틀 앞두고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가 공개석상에서 관련 발언들을 쏟아내며 한미 FTA 이슈룰 크게 부각시켰다.
일각에서는 대선 국면에 접어든 미국이 내부 정치용으로 한국에 대한 통상 압박 카드를 지속적으로 꺼내들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리퍼트 대사는 1일 서울 중구 조선호텔에서 세계경제연구원 주최로 열린 '한미 경제·무역 관계와 향후 협력 및 발전 방안' 조찬 강연에 참석해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기업규제들은 모두가 추구하는 자유무역환경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한·미 동맹과 경제 협력은 최고 수준"이라며 "양국이 지속적인 공동 번영을 보장하려면 상호 협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리퍼트 대사는 구체적인 사례를 언급해가며 한국의 기업규제 완화와 법률시장 개방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자동차 좌석 넓이 등 한국에만 존재하는 규제들이 있다보니 한국과 무역을 하려는 글로벌 기업들에 비용과 비효율성 문제가 발생한다"며 "이로 인해 한국은 전세계 여러 국가들과 FTA를 맺었음에도 해외 기업이 진출을 꺼려하는 나라가 되고, 나아가 파트너십을 뺏기는 상황까지 맞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리퍼트 대사는 "법률서비스 개방 등 한미 FTA의 남은 과제도 해결해야 한다"며 "법률시장이 개방되면 법률서비스 수준이 높아질뿐만 아니라 한국 변호사의 일자리와 소비자의 선택기회도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등장한 이후 미국 내에서는 자국민의 이익을 강조하는 정책들이 큰 지지를 얻고 있다.
통상정책에도 이같은 기조가 반영되며 한미 FTA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과 불만이 동시에 커지고 있다.
미국 관료와 정치인들은 현 한미FTA 체제에 대한 반대 여론을 등에 업고 최근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리퍼트 대사는 법무부가 추진 중인 '외국법자문사법' 개정안에 외국 로펌을 차별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며 올해 초 국회를 두 차례나 방문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합작 법인 설립에 참여하는 외국 로펌의 지분율과 의결권은 49%로 제한된다.
지난 3월에는 오린 해치 미국 상원 재무위원장이 한국의 FTA 이행 수준을 지적하며 이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 문제와 연계시킬 것이라고 압박했다.
당시 그는 안호영 주미대사에게 서한을 보내 "의약품 가격 결정, 법률서비스 시장 개방 등 5개 항목에서 FTA 이행이 미흡하다"고 항의했다.
우리 정부는 리퍼트 대사의 발언을 비롯한 최근 미국의 행동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이날 강연에 참석한 천준호 외교부 양자경제외교국장은 "오늘 리퍼드 대사의 발언에 특별하거나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며 "이미 다 알려져 있는 양국 간 이슈를 미국측 시각에서 정리한 것 정도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그는 "규제와 관련된 부분은 어느나라와 거래를 하더라도 이견이 생기기 마련"이라며 "미국이 한국을 향해 압박을 가하고 있다기 보단 산적해 있는 이슈들을 함께 잘 이행해나가자는 미래 지향적인 메시지를 던진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고 답했다.
반면 내부 정치를 위해 미국이 지속적으로 한국에 압박을 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은 "리퍼트 대사가 지적했던 자동차 좌석 규제 등의 사례는 조만간 개정이 될 예정이라 사실상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현재 양국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부문은 법률과 의약품 시장 쪽"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이 미국과의 FTA 규정을 위반한 것은 아니지만 미국은 FTA 합의 취지에 비해 우리의 이행 정도가 미흡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며 "이는 양국의 시스템 차이에서 오는 문제인데 이해와 설득의 과정이 필요한 일인 만큼 미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단기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장 연구실장은 "트럼프뿐만 아니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FTA에 대한 내부 불만 여론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미국의 이의 제기는 계속될 것"이라며 "우리는 일관되고 투명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미국의 합리적인 요구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동시에 시장 개방 논의를 장기적으로 끌고 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