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중국 사신 영접·전송연을 벌인 곳이 모화관(慕華館)이다. 1897년 5월 서재필·윤치호 등이 결성한 최초의 근대적 사회정치모임인 독립협회는 모화관을 수리해 사무실 겸 집회소로 썼다. 그리고 그해 5월23일, 황태자 순종이 한글로 ‘독립관’이라고 써준 현판을 걸었다. 애국계몽운동의 전초기지, 자주독립의 상징적 건물이었다.
이상, 학계의 정설이다.
서울 통일로 251 서대문독립공원 안에 있는 현 독립관은 제자리에서 북서쪽으로 350m 옮겨와 1996년 복원한 것이다. 현판은 역시 ‘독립관’이라는 한글로 돼있다.
그런데, 순종의 글씨를 새긴 현판은 ‘독립관’이 아니라 ‘獨立館’이었다. 한글 대신 한자로 썼다. ‘獨立館 建陽元年 十一月 二十一日’(독립관 건양원년 11월21일)이라고 명기한 사진이 증거다.
협동측량조합소의 기념사진이다. 1908년 황성신문이 “산재된 측량조합 10여개를 연합으로 묶어 설립한다”고 보도한 단체다. 한자로 된 독립관 현판 아래서 찍은 사진은 협동측량조합소의 제2회 졸업을 기념한 것이다. 촬영시기는 1909년 혹은 1910년이다.
뿐만 아니다. 1935년 경성실업전수학교(현 한성고) 제7회 졸업앨범에 실린 흐릿한 사진에도 ‘獨立館’이라고 적혀 있다. 이 학교는 1928년 독립관에서 개교했다.
사진들을 확보한 코베이 권용우 경매부장은 “순종이 세자 시절 하사한 현판 글씨는 한글이 아니라 한자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남아있는 모화관 사진과 비교하면 사진 속 건물과 정확히 일치한다. 따라서 ‘독립관’을 ‘獨立館’으로 수정해 다시 복원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