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눈뜨고 코베인 격이었다.
A(50)씨는 잠깐 빌려 쓴 돈 때문에 생판 모르는 남이 야금야금 회사를 차지하는 걸 마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작정하고 회사를 뺏으려고 덤벼든 기업사냥꾼 때문에 그는 하루아침에 '사장님'에서 '노숙자'로 전락했다.
"악랄해도 그렇게 악랄할 수가 없어요. 지금 생각해도 그놈들이 사람인가 싶어요."
A씨의 억울하고도 기막힌 사연은 이렇다.
지난 2009년 경기도 부천에 전세버스회사를 세운 A씨는 외국 관광객을 상대로 투어버스를 운영했다. 한달 매출 2억5000만원에 순수익만 3000만원을 벌 정도로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그러던 어느날 제주도에 사는 친구로부터 사업 확장 제의를 받았고, A씨는 고심끝에 그러자고 결심했다. 제주도에 영업소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최소 차량 10대가 더 필요한 상황. 당장 급전이 필요했던 A씨는 이리저리 돈을 구하러 다니다 2010년 8월 지인의 소개로 이모(63)씨를 소개받았다.
이씨가 2개월간 1억원을 빌려주면서 내건 요구조건은 회사 명의이전이었다. A씨는 명의를 빌려주는게 내심 켕기긴했지만, 사업이 순항상태에 있던 터라 금방 갚을 요량으로 돈을 빌렸다.
이씨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들리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얼마지나지 않아서였다.
"돈 빌려주고 회사 뺏는 사기꾼이라던데?."
아뿔싸. A씨는 불안한 마음에 부랴부랴 1억원을 마련해서 이씨를 찾아갔다. 그러나 이씨는 '회사가 다른 곳에 빚진 돈을 자기가 갚았다'며 금액을 높여 불렀다. A씨가 다시 이리저리 돈을 마련해 찾아가면 그때마다 빚은 수천만원씩 불어나있었다. 그러면서 오히려 '자기를 사기꾼으로 매도하고 다녔다'면서 5억원 가량의 버스 4대로 보상하라고 했다.
말도 안되는 요구였지만 이미 명의가 이씨 앞으로 돼 있던 터라 A씨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화도 내보고, 울어도 보고, 무릎꿇고 애원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A씨는 돈을 빌린 지 2개월만에 25억원 규모의 버스 23대와 회사를 모두 날리고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됐다. 빈 건물을 전전하며 잠을 청하고, 5일 내내 굶다가 겨우 한끼를 챙겨먹었다. 차비가 없는 탓에 도와준다는 사람이 있으면 서울 화곡동에서 경기도 구리까지 밤을 새워 걸어갔다. 영양실조로 쓰러지기도 했다. 아내에게는 자연스레 이혼을 당했다.
물론 소송도 제기했다. 그러나 노숙자가 된 탓에 번번이 재판 출석일을 통고받지 못했고, 관련 서류가 담긴 가방마저 들고다니다 잃어버렸다. 자포자기 심정이 된 A씨는 아예 재판을 포기했다.
한편 회사를 차지한 이씨는 측근 2명과 함께 차량을 팔아버리고 회사를 공중분해해 버렸다. 이 과정에서 2, 3차 피해도 심각했다. 전세버스에 근저당을 설정한 채권자 및 보증인 40~50명은 적게는 6000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까지 빚더미에 올랐다. 지입버스 기사들도 차가 등록말소 돼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상당수가 신용불량, 이혼 등 가정파탄으로 이어졌다.
사기전과 26범인 이씨는 '합당하게 일처리를 했다'며 경찰 조사에서 관련 사실을 모두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 등은 현재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공동공갈) 등의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지금 생각해도 분통 터지는 일이지만 A씨는 "이씨가 경찰에 구속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만으로 5년 동안 앓던 이가 빠진 느낌"이라고 후련해했다.
1년6개월을 노숙자로 지낸 A씨는 지인 도움으로 다시 버스를 몰며 생활하고 있다. 여전히 하루에 한끼만 먹고 월세도 밀려있는 상태지만, 간간이 도움을 주는 사람들 덕에 조심스레 재기를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