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8000억원대 규모의 기업비리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된 효성그룹 조석래(81) 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다만, 조 회장이 80세의 고령인데다, 과거 담낭암 판정을 받는 등 건강상 문제 등을 고려해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판사 최창영)는 15일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조세)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회장에게 징역 3년에 벌금 1365억원을 선고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 혐의와 상법 위반 혐의 중 일부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조 회장의 장남 조현준(48) 사장에게는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이상운(64) 부회장에게는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포탈된 세액은 거액으로 다수의 임직원이 동원돼 조직적, 계획적으로 장기간 이뤄졌다"며 "수차례 세무조사와 회계조사가 있었지만 전혀 발견되지 않았고 차명인과 차명계좌가 수백명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어 "기업의 총수이자 전경련 회장 등을 지낸 조 회장이 경제에서 갖는 비중과 위치에 비춰 법질서 내 투명하고 정상적인 방법을 저버리고 범행을 저질렀다"며 "사회적 지위에 비춰 죄책이 매우 무겁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회계 분식은 탈세 목적이라기보다 부실자산을 외부에 노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를 정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부실자산을 정리한다는 명목 아래 1980년대부터 경영상태가 호전된 2012년까지 조세포탈과 회계분식을 반복하면서 운영해온 것은 그릇된 이윤추구의 한 단면을 보여주며 효성에 대한 경영권 및 지배권 유지 강화 수단임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포탈한 세금 및 가산세 등을 사후적으로 모두 납부했고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기여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며 "80세 고령으로 담낭암 4기 판정을 받은 후 항암치료를 받았고 이후 전립선암으로 방사선 치료를 받는 등 건강상태가 악화돼 있다"고 설명했다.
선고 직후 조 회장은 법정 피고인석에 한참동안 앉은 채 일어서지 못했다. 실형 선고에 대한 심경을 묻는 기자들 질문에도 지팡이를 짚고 임원들의 부축을 받은 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효성 측은 "IMF 외환위기라는 초유의 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일로 사적 이익을 추구한 사안이 아님이 밝혀졌지만 무죄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실형이 선고돼 안타깝다"며 "추후 항소심에서 적극 소명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검찰은 조 회장에게 "효성의 대주주라는 점을 이용해 회사 자금을 개인적 용도로 유용하고 회사를 재산 축적의 수단으로 이용했다"며 징역 10년과 벌금 3000억원의 중형을 구형했다.
조 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및 상법 위반 등이다.
조 회장의 혐의에 대한 액수는 회계분식 5010억원, 조세포탈 1506억원, 횡령 690억원, 배임 233억원, 위법한 배당 500억원으로 모두 7939억원에 달한다.
조 회장은 2003년부터 10여년간 8900억원대의 분식회계를 통해 법인세 1237억원을 포탈하고 2007~2008년 효성의 회계처리를 조작해 주주 배당금 500억원을 불법으로 취득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국내외에서 임직원이나 해외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수천억원대의 효성 및 화학섬유 제조업체 카프로의 주식을 사고팔아 1318억원의 주식 양도차익을 얻고 소득세 268억원을 포탈한 혐의도 받았다.
이밖에 해외 법인 자금 690억원을 횡령해 개인 빚이나 차명으로 소유한 회사 채무 변제 등에 쓰고 자신이 관리하던 페이퍼컴퍼니가 효성 싱가포르 법인에 갚아야 할 채무를 전액 면제토록 지시해 회사 측에 233억원의 손실을 끼친 혐의도 있다.
장남 조 사장은 효성 법인자금 16억원을 횡령하고 조 회장으로부터 해외 비자금 157억원을 증여받아 증여세 70억원을 포탈한 혐의로 기소됐다.
한편 조 회장은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지병인 고혈압과 심장부정맥이 악화돼 병원 신세를 진 바 있다.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후에는 2010년 수술했던 담낭암이 전립선암으로 전이돼 암치료차 입퇴원과 해외 출국을 반복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