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10 구단' 창단을 두고 KT와 경쟁하면서 이름을 알린 부영그룹이 삼성생명 태평로 사옥 매입으로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삼성생명과 부영은 8일 서울 세종대로(옛 태평로) 삼성생명 사옥 매각계약을 했다. 삼성생명 본관 사옥의 매매 가격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5000억 원대 후반 수준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KB금융지주 등에서 삼성생명 사옥 매각설은 꾸준히 흘러나왔지만, 계약은 체결되지 않았다. 삼성 측이 요구하는 가격보다 건물과 부지 활용이 쉽지 않았기 때문으로 전해졌다.
부영이 삼성생명 사옥을 사들일 수 있었던 것은 막강한 현금 동원 능력 덕분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그룹 46곳의 공정자산현황을 보면 2016년 부영의 자산총액은 16조8050억원으로 재계 순위 18위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의 개인 자산도 막대하다. 포브스가 발표한 2015 한국의 억만장자 순위에서 이 회장은 13위에 올랐다. 자산 규모는 2조100억원으로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1조6000억원),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1조3450억원)보다 많다.
이 회장은 최근 3개월간 4건의 부동산을 인수하는 데만 1조원이 넘는 돈을 쓴 것으로 알러졌다. 이 회장의 이런 광폭행보 배경에는 부영그룹의 탄탄한 재정 능력이 있다.
지주회사인 부영을 비롯해 14개에 이르는 계열사 가운데 상장사가 단 한 곳도 없어 정기 공시 의무나 자본 조달 관계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
이 회장은 1983년 부영의 전신인 삼진엔지니어링을 창립한 후 30여년간 임대주택 시장을 장악하며 막대한 현금을 쌓아왔다.
서민들의 보금자리인 임대주택 건설사업은 일반분양과 달리 큰 이익을 얻긴 힘들지만, 미분양 위험이 낮아 사업 리스크가 크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여파로 국내 부동산 경기가 부진할 때도 부영은 임대아파트라는 틈새시장을 독점하며 오히려 덩치를 키웠다.
부영은 주로 국민주택기금을 지원받아 5·10년 공공임대아파트를 짓고, 이를 입주민들에 임대했다. 임대 기간이 만료되면 분양을 하게 된다. 임대료로 버는 돈보다는 분양 전환 자금이 주요 수입원이다.
최근에 집값이 많이 오르면서 임대로 내놨던 공공임대 아파트의 분양전환율 증가로 부영의 매출이 오르고 있다. 통상 건설사들이 이용하는 금융권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금을 쓰지 않아 재무 안정성도 좋은 편이다.
부영은 주택 건설용 토지 매입, 임대 아파트 건설, 분양 전환, 다시 토지 매입을 하는 선순환 구조를 이어가고 있다. 실제 이 회장은 일찍부터 토지 구매에 힘을 쏟아왔다.
1996년 경기도 도농 그린타운 용지 매입에서 현대나 삼성 등 쟁쟁한 대기업을 물리쳤다. 2002년에는 aT한국농수산물유통공사에서 평택시 고덕면 여염리 11 일대의 한국낙농목장 부지 140만4625㎡를 800억500만원에 낙찰받았다.
부영은 국민주택기금 대출을 독식하는 등 과거 김대중 정권 때 괄목한 성장을 이루면서 특혜설도 끊이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 임대주택사업은 가구당 3500만∼4000만원의 국민주택진흥기금이 지원됐다. 1981년 설립된 국민주택기금은 자산 규모가 46조에 이르는 대형 기금으로 건설교통부장관이 운용 관리하고, 국민은행(옛 주택은행)장에게 위탁해 왔다.
2002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부영은 최장 20년 장기 저리로 지원된 대출 잔액이 2조1000억원대에 달했다.
특히 이 회장은 이희호 여사가 참여한 '사랑의 친구들' 후원회장을 맡기도 했다. 이 회장과 이희호 여사는 종친으로 이 회장이 종친회 회장을 하면서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김대중 정권 때 임대주택 정책이 부영에 날개를 달아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1998년 7월 임대주택법시행령이 개정돼 임대 의무 기간이 5년에서 절반으로 줄었다. 1999년 6월 국민주택기금 지원을 소형 18.1평뿐 아니라 중형 25.7평까지 지원해 줬다.
부영 측은 틈새시장을 파고들다 보니 운이 좋았다고 했다. 국민주택 기금을 대출받아 건설하는 공공임대주택사업은 자금 회전율이 낮아, 대기업 건설업체가 눈독을 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영은 최근 기존 주택임대사업 외에 다른 사업 확대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 5일 강원도 태백시에 있는 오투리조트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인수가는 782억원이다.
지난해 10월에는 인천시 연수구 옛 송도 대우자동차 부지를 3150억원에 사들였다. 이곳에 7000억~1조원을 들여 멀티 콘텐츠 테마파크를 2019년까지 조성한다. 경상남도와 함께 진해에 글로벌테마파크 조성사업에도 5조1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부영의 한 관계자는 "삼성생명 사옥 매입은 포트폴리오 다변화"라면서 "예전에도 자산가치가 있는 토지와 건물은 꾸준히 사들여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