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검색

구독하기 2025.05.24. (토)

기타

양승태 "기계적 법적용 메마른 법률가가 되어선 안 돼"

대법원 시무식

양승태 대법원장은 4일 새해 첫 업무를 시작하며 일선 법관들에게 기계적 법적용을 경계하고, 사회 전반적으로 대화와 타협의 문화가 성숙하지 못한 현 상황에선 법의 지배 아래 사회통합과 평화를 이루는 게 사법부에 주어진 새로운 책무라고 강조했다.

양 대법원장은 시무식에서 '국민'이라는 단어를 11번이나 언급한데 이어 '세심한 감수성', '직감적', '감성', '감정', '진정성' 등의 단어를 자주 사용해 주목을 받았다.

양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1층 대강당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법부에 요구되는 특별한 헌법적 사명을 분명히 인식하고 국민의 기대에 귀를 기울이는 적극적인 자세와 따뜻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며 "기계적으로 법을 적용하는 메마른 법률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가너먼 교수의 "인간의 경제적 의사결정은 합리적 이성보다는 감정에 좌우된다"는 말을 인용,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법원의 모습이 사람의 감성을 울릴 때 비로소 법원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법부의 진정한 마음을 국민의 가슴에 온전히 전달하지 않으면 사법절차가 우수하더라도 국민의 신뢰가 쌓이지 않고 그동안 들인 노력과 정성도 빛이 바래게 된다"며 "사법부의 다양한 소통을 통한 진정성이 국민에게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해졌는지 되짚어 보고 더욱 다가갈 수 있는 내실을 다지자"고 밝혔다.

그는 이어 "우리 사회에서 많은 대립관계가 조금의 양보도 없이 격렬한 분쟁으로 이어져 법원의 문턱을 넘어오고 있다"며 "실타래처럼 엉켜 극심하게 다투는 분쟁을 슬기롭게 해결함으로써 법의 지배 아래 사회통합과 평화를 이루는 것은 사법부에 부여된 새로운 중요한 책무"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은 기본권을 보장하는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가 공정하면서도 엄정한 재판을 통해 국민의 평온한 일상과 행복을 지켜주기를 기대하고 있다"며 "이에 사법부는 법치주의의 수호자로서 그 원칙을 준수하면서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사건을 슬기롭게 해결하기 위해 법령을 해석하고 적용하면서 국민 의식과 사회가 변화하는 흐름을 감지할 수 있는 세심한 감수성과 혜안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 대법원장은 재판에 대한 신뢰 확보도 강조했다.

그는 "사법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재판으로 분쟁을 해소하는 일이며 재판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는 것은 사법부가 맡은 바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는지를 결정짓는 우리의 핵심 과제"라며 "당사자의 절차적 권리를 충실히 보장하며 법과 원칙에 따른 합리적인 결론으로 분쟁을 1회적으로 해결하는 재판이 가장 바람직한 재판"이라고 역설했다.

그리고선 "분쟁의 1회적 해결을 위해 가장 역점을 둬야 할 부분은 제1심의 재판일 것"이라며 1심 강화 필요성에 힘을 줬다.

그는 "충실한 심리를 통해 1심 재판이 강화됨을 전제로 항소심의 역할에 대해서도 성찰이 있어야 한다"며 "항소심은 '두 번째의 1심'이 아니라 항소심 사건은 이미 법관에 의해 한 단계의 사법적 판단을 거친 사건이라는 점을 무겁게 생각해야 한다"고 밝혔다.

양 대법원장은 "심급제도가 그저 같은 사건의 재판을 되풀이하는 절차로 잘못 운용돼서는 안 된다"며 "1심 법관은 충분한 심리와 숙고를 거쳐 최종심 법관의 마음으로 최선의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급심의 법관은 심급제도의 역할을 충분히 이해해 그 한계를 지킴으로써 한 번 내려진 사법적 판단은 좀처럼 변경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널리 퍼질 때 재판의 권위와 신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양 대법원장은 또 "법원 구성원 간의 활발하고 격의 없는 소통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협력하는 조직문화를 형성해 사법부 내부의 다양성이 마찰이나 갈등이 아니라 오히려 재판 역량을 배가시키는 요소가 되게 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