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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6.04.01. (수)

내국세

(76)'관료가 바뀌어야 나라가 바로선다'

허명환 著(前행정자치부 서기관)

-가시는 걸음걸음-
신발은 언제 벗나?

 

내가 살았던 아파트는 2층짜리 건물로 각 층마다 4가구가 들어가 살게 되어 있는데, 이런 아파트가 근 40여동이 어우러져 대규모 단지를 이루고 있다.

 

이곳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인종들이 서로 어울려 살고 있지만, 바깥에서 그냥 지나가면서도 어느 집에 한국인이 살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아맞힐 수가 있다.

 

왜냐하면 한국인이 살고 있는 아파트 현관 앞에는 항상 신발이 수북이 놓여 있거나, 현관 옆에 신발장이 따로 놓여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 자체가 방 두 칸에 거실, 부엌이 있는 조그마한 규모일뿐더러, 우리처럼 현관을 열고 들어가도 신발을 벗어 둘 공간이 아예 없기에 자연히 신발을 대문 밖에 벗어 두는 것이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미국인들이 실내에서도 신발을 벗지 않고 생활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통상 미국인들이 신발을 신고 벗는 것은 침대에 누울 때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발에 있어서는 침실 외에는 집 안팎의 구분이 없는 것이다.

 

군인들 전투화 같은 구두를 신발 끈도 예쁘게 묶어 신고서 멋을 부리는 미국 아가씨 모습을 볼 때면, 속으로 ‘어휴, 저 아가씨, 구두에 지퍼도 없는데, 신발 벗고 신자면 애 좀 먹겠네!’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그 아가씨야 문제없는데 나만 한국식으로 그렇게 생각할 뿐이지만.

 

대문 밖에 이런 식으로 신발장을 놓아두는 것이 화재예방 측면에서 문제가 제기되기도 하나, 아파트 관리당국도 한국인들의 독특한 신발문화를 이해하기에 묵인해 주기는 한다.

 

그러나 욕실 배수구나 변기가 막히거나 전기 배선 관련 수리가 필요할 경우, 배관공이나 전기공이 집안에 들어올 때 문제가 된다.

 

오랫동안 근무해온 사람들은 현관문을 열자 한국인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체념한 듯이 그 어둔한 손으로 자기가 먼저 알아서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신발 벗는 꼴을 볼작시면, 어설프게 꾸부정하니 몸을 숙이고 신발 끈을 푸는 손놀림이란게 어둔하기 이를데가 없다. 발냄새가 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양말이 쑥 빠지게 신발을 벗고서는 무지하게 계면쩍어 하기도 한다.

 

그래서 보다 말고 그만 그냥 들어오시라 하기가 쉬운데, 그러자면 집사람이 바빠진다. 왜냐하면 그가 거실을 가로질러 목적지 까지 가는 걸음걸음을 신문지로 이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화의 차이로 빚어지는 기기묘묘한 풍경인 것이다.

 

허름한 작업복에 연장을 든 미국인 배관공이 머리가 까만 동양아줌마가 그 앞에 몸을 숙이고 정성스러이 신문을 바리바리 깔아주면 그 위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거실에서야 바깥에서처럼 그대로 신발신고 다니는 곳인데, 신문지는 거실 위에다 왜 깔며, 배관공은 왜 그 신문 위로만 걸어가야 하는 것일까? 미국인 관점에서 보면 신기하기 그지없는 셈이다.

 

한번은 미국인 친구 가정집에 초대받아 가서는 신발 벗는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신발을 벗고 생활하는 것이 위생적일 것이라는 점에는 공감하나, 그렇다고 실내에서 신발을 벗고 산다는 것은 생각해 보지 않아 당혹스러울 것이라 했다.

 

신발 벗는 것이 구멍 난 양말을 보이거나 악취가 나 창피하다는 것인지, 아니면 몸의 치부를 보이는 것으로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문화의 영향이란 큰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인들 모두가 그렇지는 아닌 것 같은 것이, 노인네들만 사는 가정집을 한번 방문했을 때에는 아예 이분들이 먼저 현관에서부터 신발을 벗고 들어오기를 권유하는 것도 겪었기 때문이다.

 

하여튼 미국인들이 한국 집에 초대받아 왔을 때 신발 신고 그대로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놀라 혼비백산하지 말 일이며, 역으로 그 자리에서 그 사람들더러 신발을 벗어야 된다고 하여 그들 또한 혼비백산하지 않도록 사전에 서로 이해를 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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