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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6.04.02. (목)

내국세

[연재]격동기 국세청 30년, 담담히 꺼내본 일기장(18)

국세전문가 청장 시대 개막

본청 복지관 부지 매입비화

 


당시 서울청은 종로구 수송동 이마빌딩 맞은편 국세청 본청 건물의 아래층 일부를 본청과 함께 쓰고 있었다. 공간이 협소해 직원들의 체력실 등 복지시설이 태부족이었다. 성용욱 청장은 국세청 왼쪽 도로변에 국세청 청사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2층 민간주택 2채(당시 음식점으로 임대하고 있었음)를 매입하라는 지시를 하였다. 본청 총무과와 조사국 등에서 매입을 시도했으나 집 주인들과 만나지도 못한 채 그 일이 서울청 김훈 간세국장(후에 광주청장 역임)에게 떨어졌다. 국과 내가 각각 1채씩 나누어 맡았다. 그런데 내가 맡은 집의 주인은 공교롭게도 미국 L.A에 살고 있었다. 국내에서 대리인 역할을 하는 某 변호사사무실 사무장을 통해 미국에 연락했으나 꼼짝도 안했다. 국장은 날마다 다그치는데 무슨 방도가 없어 고민이었다.
어느날 서울청 5층 회의실에서 건물 뒷편 유리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 때 연합통신 건물을 신축하려고 포크레인으로 요란하게 땅파기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수송동 삼거리에서 중학동 한국일보사 앞으로 난 좁은 도로 중 연합통신 부지에 면한 부분이 안쪽으로 넓혀져 있었다. 나는 즉시 바로 옆에 있는 종로구청에 직원을 보내 도시계획 도면을 떼오게 하여 보니 매입코자 하는 주택들도 상당부분 접도 구역으로 먹어 들어감을 확인했다.

 


나는 미국 L.A에 있는 집주인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귀국해 의논하자고 했다. 이전에 한국미용협회 회장을 지낸 김여인이 드디어 나타났다. 수차례 만나 가격협상을 하였으나 결국 결렬되었다. 그리고는 미국으로 돌아갈테니 마음대로 하라고 위협했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그동안에 누락된 그 집의 임대수입금액을 확인해 과세했는데 그대로 체납이 되었다. 우리는 체납을 이유로 출입국관리측에 출국정지 조치를 취하였다.
어느 날 오후 김여인으로부터 김포공항에서 전화가 왔다. 처음부터 사기꾼 운운하는 욕설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나 가격 타결을 보았다. 나는 집주인과 중국음식점 하는 세입자를 함께 내 자리로 불러 전세보증금을 확인한 후 먼저 세입자에게 지급하고 나머지 집값을 김여인에게 지급하였다. 극적으로 성사된 일이었다.
나는 중국음식점하는 세입자가 서부역 부근 어느 건물로 들어가고 싶은데 집주인과 잘 이야기가 안된다 하여 용산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이선희)으로 하여금 중재를 하도록 하여 무사히 음식점을 열게 해주었다.
성용욱 청장은 매입한 땅 위에 3층 부속 건물을 지어 다용도 복지시설로 사용하다가 89년 본청건물 전체를 헐고 새 건물을 지을 때 함께 헐어서 현재의 청사를 새로 짓게 된 것이다.

 


서영택 청장, 국세전문가 청장 시대를 열다

 


87년 6월 소위 6·10 민주화 항쟁으로 15년만에 국민이 대통령을 선거로 직접 뽑는 대통령직선제 개헌이 이뤄져 그해 12월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이로써 전두환 대통령의 신군부 통치시대가 막을 내리고 88년2월25일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하였고, 곧이어 3월5일에는 서영택(徐榮澤) 국세청장(후에 건설교통부 장관 역임)이 취임하였다. 국세청 역사에 비로소 국세 전문 관료 출신이 국세청의 수장이 되는 첫문을 열게 되었다. 서 청장께서는 매사가 합리적이고 차분한 가운데 세무전문가 답게 분야 분야를 꿰뚫어 보며 업무를 추진하였다.
88년 4월 어느날 오후 서 청장께서 서울청을 순시하셨다.
그 날 보고는 각 국장과 과장들로부터 각각 5분 정도 청취할 계획으로 돼 있었다.
서울청장실에는 본청장, 그 옆에 서울청장(당시 조중형 청장), 간세국장(당시 김훈 국장), 그리고 내가 앉았다.
간세국장 보고가 짤막하게 끝나고 내 차례였다.
나의 보고 내용은 크게 3개의 주제로 되어 있었다.

 

 

직·간세행정은 통합하여야 한다

 

 

첫째는 직간세행정의 통합, 둘째는 세법질서 확립은 세금계산서와 신용카드 영수증으로, 셋째는 일선 세무서 조직을 세무별 조직에서 업무기능별 조직으로 개편이다.
국세청 조직은 그동안 직접세와 간접세 행정을 구분하고 조직 운영도 직세과(소득세과,법인세과 등), 간접과(부가가치세과, 소비세과 등)로 구분하여 운영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부가가치세가 시행된지 10여년이 지난 시점에서 기업의 매출액과 매입액을 조사해 보니 매출액 중에서 이자수입 등 영업외 수익을 제외하면 매출액의 거의 전부가 매출세금계산서에 의해 확정되고 있으며, 매입액도 이와 마찬가지로 매입세금계산서에 의하여 매입액의 대부분이 확정되고 있었다. 대기업, 중기업, 소기업으로 나누어 조사해 보니 소규모 기업으로 내려 올수록 그 점유비는 더 커졌다.
이는 한 기업의 매출액과 매입액의 대부분이 세금계산서에 의해 잡히게 되므로 간접세인 부가가치세와 직접세인 소득세, 법인세 행정을 분리할 이유가 없고 직세경력과 간세경력을 차별하여야 할 이유도 없었다. 따라서 일선 세무서 조직도 부가·소득을 통합하여 개인관리과(개인신고과)로 하고 법인세과는 법인관리과(법인신고과)로 개칭 하여야 한다고 보고하였더니 서 청장께서는 내 보고에 관심을 가지고 경청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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