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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6.04.01. (수)

내국세

[연재] “나는 평생 세금쟁이”(7)

“급작스런 형의 죽음, 다잡는 계기돼”

애송이 세금쟁이의 첫번째 아픔

 

 

 

서울에 올라와서 두번째 근무지인 중부세무서 개인세과로 옮긴 지 얼마 되지 아니한 1969년 여름으로 기억된다.
대구에 살고 있는 가족들로부터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소식을 받았다. 필자보다 다섯살 위인 우리집 장남인 형이 당시 경북 안동시 교육청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의식을 잃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내용이었다.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듣고 몇일간의 연가를 얻어 급히 대구로 내려갔다.
병원에 도착했으나 이미 형은 싸늘한 주검이 돼 있었다.
형은 평소 술을 잘못했는데 군대에서 술을 잘못 배워, 술만 마시면 주사가 있어 우리가 족들의 걱정꺼리 중 하나였다. 아마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좋지 못한 버릇일까?

갑자기 어린 시절 형과 함께 보냈던 참으로 어려웠던 시절이 떠올랐다. 6‧25 전쟁 중 아버지는 인민군에 끌려가기가 싫어서 몰래 밀항선을 타고 해방전부터 살아왔던 일본 오사카로 가시는 바람에 형과 함께 어머니를 따라 경남 의령에 있는 외갓집에서 더부살이를 하며 고생했던 일들과 또 함께 산에 가서 나무를 하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필자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선 채로 울고 또 울었다.

 

조용근 세무법인 석성 회장은 수년째 세무법인 석성직원들과 밥퍼봉사활동을 통해 나눔과 섬김을 실천하고 있다. 2010년 사재 5천만원을 들여 캄보디아 똔네샵 수상 빈민촌에 ‘사랑의 무료급식소’를 지어 기증하고, 세무법인 석성 전 직원 30여명과 밥퍼 봉사활동을 벌였다<2010년11월16일 캄보디아에서 밥퍼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

 



무엇보다 갑작스런 사고로 장남을 잃은 어머니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형의 주검을 흔들며 일어나라고 고함을 질렀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서로의 안부를 묻던 형과 다시는 대화조차 나눌 수 없다는 현실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상실감이 찾아왔다.
서른살이 가까운 형에게는 이미 결혼을 약속한 여자가 있었고, 얼마 후면 약혼식을 치르게 돼 있었는데….

나는 형 시신을 화장해서 그 유골을 대구 인근에 있는 금호강에 뿌렸다. 한줌의 가루가 돼 버린 형은 가볍게 부는 바람에도 쉽게 흩날렸다. 그렇게 바람에 날리고 강물과 함께 흘러가는 형을 보면서 ‘인간의 삶이란 이렇듯 허망한 것인가?’ 라고 소리쳐 보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필자의 삶도 되돌아 봤다. 짧은 세월이었지만 세상의 온갖 유혹에 푹 빠져서 내 멋대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아울러 공직자로서 가져야 할 올바른 음주문화와 관련해서도 그동안 필자의 잘못된 행동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잘못된 술버릇을 이제는 바꿔야겠다는 굳은 각오를 하게 됐다.

그때부터 필자는 공직자로서 많은 술자리를 가졌지만 한가지 원칙만은 꼭 지켜왔다. 즐겁게 술마시고 또 내가 마신 술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로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이 바로 그 원칙이다.

결과적으로 당시 형의 안타까운 죽음을 통해 필자의 음주문화에 큰 도움이 되어 지금껏 감사하게 생각하며 다시 한번 다정했던 형이 그리워지며 그 형이 못다한 우리집의 장남 역할을 잘 감당하고자 지금까지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계속>-매주 水·金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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