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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5.2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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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시대는 90년대에 끝났다"…9집 기자회견 문답

일부에서 '한물갔다'는 평가가 나와도 가수 서태지(42)는 서태지였다. 한때 문화 대통령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닌 그인 만큼 5년 만의 복귀에 관심이 쏟아졌다. 300여 명의 취재진이 몰린 20일 오후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콰이어트 나이트' 발매 기념 기자회견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서태지 시대는 90년대 끝났다" 등 솔직 담백한 답변들이 쏟아졌다.

- 그간 고수한 신비주의를 이번 앨범에서 많이 벗은 듯하다.

"특별히 많이 다르다고 생각지는 않아요. 앨범 발매 때마다 토크쇼에 나왔어요. 이번에는 유재석 씨와 이야기를 나눈 거죠. 다만 앨범이 예전보다는 조금은 대중적이라서 많은 분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활동 방식이 조금은 달라진 것 같아요."

- 팬들에게 '변절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대중적'인 음반이라는 평가다.

"변절자라는 이야기는 (록밴드) '시나위'에서 (댄스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곡) '난 알아요' 때부터 들었어요.(웃음) 제 성격이 그래요. 변하고 싶고 변하는 걸 좋아하죠. 가정이 생기고 가족들과 같이 지내면서 여유가 많이 생기고 행복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 부분이 음악에 전달된 것 같습니다. 9집을 설명할 때 딸 '삐뽁이'(태명)도 들을 수 있는 음악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좀 더 많은 이들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현재로써는 (이번 앨범이) 잘하는 음악이고 관심 있는 음악입니다. 만들면서 그렇게(대중적인 앨범) 생각을 못 했거든요. 대중적이라면 더 많은 사람이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신드롬까지는 아니더라도 저를 모르는 사람들, 어린이들까지 더 많이 들었으면 해요."

- 항상 신드롬을 일으키던 예전 앨범들보다 9집은 파괴력이 못하다는 지적도 있다

" 8집보다는 잠깐이지만 순위가 높았어요. 아이유 때문에 10대들이 '소격동'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고요. 음악을 차트 성적으로 구분하기보다 개인이 들었을 때 좋은 음악, 나쁜 음악으로 구분하셨으면 좋겠어요. 학교 다닐 때도 '등급'이라고 나오는 것이 싫었어요. 그래서 자퇴했죠. 그렇게 많은 일(배우 이지아와 결혼·이혼 사실 등) 이 있었는데 공연장에 찾아와주시는 분들이 감사하죠. 지금도 공연장 생각하면 '울컥'해요. 관객(숫자)들도 솔직히 예전이랑 비슷해요."

-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함께 활약한 양현석 YG엔터테인트 대표가 일부러 서태지를 저격, YG 소속 듀오 '악동뮤지션'의 신곡을 내놓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도 나온다

"우리의 양군(양현석)이었죠. 성공한 부분은 뿌듯하고 기쁜 마음이에요. 공교롭게 그렇게 됐는데 최근에 알았지만 (하루에도) 여러 가수가 쏟아져 나오더라고요. 저는 그렇게(양현석이 서태지 앨범 발매에 맞춰 소속 가수들의 신곡을 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 앞서 지난 18일 잠실 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컴백 콘서트에서 '90년대 가수들의 영광'을 노래한 새 앨범 수록곡 '나인티스 아이콘(90's Icon)'을 부르기 직전 언급한 '한물간 가수'는 세간의 화제가 됐다. 90년대 인기 가수들(김종서·이승환·신해철)과 협업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도 들렸다.

" '나인티스 아이콘'을 부르기 위한 다분히 연출된 멘트였지만 진심이 담긴 말이기도 했어요. 음반을 만들 때마다 좌절하는 스타일에요. 선뜻 말하지 못하는 그런 심정을 음반에 담기도 했죠. 7집 '제로'(0)와 '로버트'가 고해성사 같은 노래였죠. 이번에도 그랬어요. 특히 이번에는 나이도 들고 그러다 보니 음악을 과연 90년대처럼 작업할 수 있을까 고민했죠. 30~40대가 되면서 주변으로 밀려나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래도 더 소중한 추억들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밤이 되면 스타는 떠 있을 거라는 걸 이 곡을 통해 말하고 싶었어요.(90년대 인기 가수들과) 컬래버레이션은 구상 중이에요. 좋은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말씀드릴 거예요."

- 한국 대중음악계에 해외의 새로운 음악을 선보여왔다. 이 때문에 '대중음악계의 문익점' '수입업자' 등의 수식을 달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가 일정 부분 맞다고 생각해요. 의도한 부분이기도 해요. 90년대 초반에는 그런 장르가 부족했어요. 외국의 그런 장르를 보면서 한국에도 소개시켜주고 싶은 '문익점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최초의 수입업자'라고 하면 감사하죠. 그러나 7집과 8집부터는 '수입업자'역할을 내려놓았어요. 8집만 해도 영향을 받은 팀이 없을 정도로 제 안에서 해결했어요. 1집 때부터 영향을 받은 팀은 그때그때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번 음반에는 그런 것이 없어요. (9집에서 도드라지는) 일렉트로닉은 그간 리믹스를 통해서 시도했고 1집 '환상속의 그대' 역시 테크노믹스로 선보였죠. 그런 효과를 좋아하는 시기가 있었어요. 제 스튜디오 이름도 '테크노-티(T)'입니다. 그만큼 관심이 많은 음악이었습니다."

- 표절 의혹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 표절 이야기는 오래된 이야기에요. 사실 아마 3집 '교실 이데아' 때부터 생소한 장르, '데스메탈'을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죠. (갱스터 랩) 장르인 4집 '컴백홈'은 창법으로 '사이프러스 힐'을 연상케 한다는 지적도 있었고. 그때는 라디오에서 많이 틀기도 했어요. '난 알아요'는 지금까지 (독일 듀오) 밀리 바닐리 ('걸 유 노 잇츠 트루(Girl You Know It's True))와 비슷하다고 말이 많죠. 표절은 당연히 아니에요. 예전에는 방송에서 '힙합과 갱스터 랩이 이렇게 진행돼서 비슷하게 들릴 수 있다'고 설명해야 했는데 지금은 그런 해명이 불필요한 것 같아요. 본인 스스로 표절을 판단하거나 인정할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요. 음악을 많이 들어야 하고 종일 강의를 해도 힘들죠. 음악을 들으시고 판단해 주시면 좋겠어요."

- '소격동'과 '크리스말로윈' 등 이번 앨범에도 사회 비판적인 요소가 내포돼 있다

"이번 음반이 대중에게 얼마나 어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갑론을박하고 토론하는 분위기가 좋아요. '이 음반 병신 같아' '천재적이야' 등 시끄러운 것이 민주적이잖아요. 더 좋은 원동력이 될 수 있고. 그렇게 토론도 할 수 있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음악이면 좋겠어요. ('소격동'의 소재가 된 지역인) 소격동은 10년 전에 가봤는데 흐르던 시냇물이 다 말랐더라고요. 충격을 받았죠. 예전 한옥에 살면서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80년대도 서슬 퍼런 시절이었어요. 실제로 저의 집에서 쳐다보면 보안사(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가 보였고, 민방위를 할 때면 청와대 앞에 탱크가 지나가기도 했어요. 그런 시대적 배경을 담은 거죠. 2절 사운드에 그런 공포를 담기도 했어요. '울렁울렁'한 신시사운드가 주체 못 하던 마음을 표현한 거죠. '크리스말로윈'은 '울면 안돼'라는 캐럴에서 시작한 노래에요. 울면 산타가 선물을 안 준다는 가사가 있는데 재미있기도 하지만 무서웠죠. '컴백홈'에도 부모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저도 부모가 돼서 고민을 많이 해요. 울지 말라고 달래는 것도 권력이 아닌가라는 생각이죠. 공포를 이용해서 울지 말라고 하고 선물을 안 준다고 하고요. 어떤 분들은 사회 비판적인 노래라고 하세요. 산타를 나쁜 역할, 권력자로 볼 수 있고 회사 상사로 볼 수 있죠. 다양한 해석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 컴백 공연의 러닝타임 90분이 너무 짧았다는 아쉬운 소리가 있다

"사실 120분 정도라고 생각했어요. 곡은 (컴백 공연 중) 제일 많이 했죠. 보통 12곡하는데 이번에 18곡을 했으니. 이번에 밴드 소개도 했으면 좋을 텐데 첫 번째 공연이라 긴장을 많이 했어요. 2008년 (서태지가 주최한 도심형 록 페스티벌) 'ETP페스트(FEST)' 했을 때도 떨었죠. 8집 때보다 두 달 정도 연습을 더 했는데 그럼에도 후다닥 무대에서 내려왔네요. 앞으로 공연하면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 동화가 콘셉트이지만 마냥 예쁜 동화는 아니다. 일종의 '잔혹 동화'다.

" 알고 있는 잔혹 동화가 많잖아요. 예쁜 모습만 표현됐어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죠. 이 노래를 들으면 딸이 어떡할까라고 생각했어요. 앨범 수록곡들은 어느 일정 부분 스토리텔링이 연결돼 있어요. 소격동에서 어렸을 때 지내오던 이야기를 지나 아버지가 돼서 느끼는 감정들을 들려주고 싶었죠. '나인티스 아이콘'도 마찬가지입니다. '90년대 아빠가 이랬던 사람'이라는 이야기죠. 음반 재킷의 소녀는 제 딸의 6~7세 모습이에요. 마지막 트랙 '성탄절의 기적'은 일종의 태교 음악이고요. 일찍 만든 노래인데 딸이 태어나기 전에 벅찬 감정을 많이 담았어요. 앞으로도 새 생명과 같이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 이제 신비주의 콘셉트는 벗어던지는 건가?

" 신비주의는 잘 모르겠어요.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 같아요. 가수이기 때문에 음악을 만들고 발표하고 이런 일련의 활동들로 평가받고 싶은 마음입니다. 신비주의는 예능 등에서 여러 가지 노출을 안 해서라기보다는 5년이라는 세월을 실체가 없는 사람으로 살았기 때문이죠. 그런 방식은 안타깝지만 제 작업 방식이에요. 앞으로 신비주의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같을 거 같아요."

- 문화대통령이라는 수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말씀하신 것에서 파생한 거죠. 족쇄 같은 느낌이 있어요. 양면성이 있죠. 장기집권을 한 것인지 이미 내려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독재집권 같은 느낌이 있어요. 누군가가 빨리 가져갔으면 좋겠어요. 편안하게 저는 뒤에서 지켜보며 응원하고 싶어요."

- 앨범을 만들면서 영향을 받은 점은

"여행일 겁니다. 워낙 여행을 좋아해서 여기저기 다니면서 사람들 만나고 기묘한 일들을 많이 겪죠. 그런 부분이 음악에 그대로 담겨요. (8집의) '모아이'(이스터섬에 남아 있는 얼굴 모양의 석상)도 그렇고 이번 앨범의 '숲 속의 파이터'도 그렇죠. 그런데 이번 음악의 제 뮤즈는 딸이에요. 강렬한 이미지를 2세에게 받았고 그게 고스란히 음악에 담겼죠."

- 아이유와 협업은 관심사였다

" 저는 제가 보컬리스트라고 생각 안 해요. 싱어송라이터의 라이터. 프로듀서죠. '소격동'을 만들고 보니 예쁜 노래였고, 떠오르는 가수가 아이유 씨였어요. 아이유 씨 덕분에 1위를 해서 업고 다니고 싶어요. 그 보이스 컬러는 보물이 아닌가 해요. 그 기적이 소격동으로 이어졌죠. 아내(이은성)가 저보다 더 아이유 씨 팬이에요. 같이 식사하면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나눴죠."

- 서태지의 시대가 지속하고 있다고 보는가?

"서태지의 시대는 90년대 끝이 났다고 생각해요. 2000년대에는 대중적인 음반이 아니었고 마니악한 음악이었죠. 대중을 많이 버리게 된 셈이죠. 마음속에 미안한 마음이 있죠. 그래서 '나인티스 아이콘' 같은 노래를 부르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그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제 자리에서 음악을 해나가면 만족해요."

- 과거와 달리 '악플'에 시달리지만 '여전히 이슈의 중심에 서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중심에 서 있는 것 맞나요?(웃음) 음반을 내면 팬과 안티 팬의 컬래버레이션(협업/설전)이 일어나요. 재미있어요.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건 참 재미있죠. 예전에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는) 악플이 없었지만, 언론과 자주 부딪혔어요. 뭘 해도 안 좋은 기사들이 있었고 거기에 영향을 받은 대중이 2000년대 초부터 안티 사이트를 만들어 여전히 쭉 이어져 오고 있고요. 그런데 그게 저를 중심으로 불러오지 않았을까 해요. 게다가 이번 9집은 떡밥(이지아 이혼·결혼 등)이 많은, 진수성찬을 차렸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음악이고 나머지는 가십이라고 생각해요. 지나가면 잊힐 거고 중요하지도 않고. 그런 관심들 덕분에 제 음악을 조금이라도 들으시면 환영이죠. 앞으로도 (팬과 안티팬의) 컬래버레이션은 환영이에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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