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
욕도 잘하면 약
내가 살던 아파트 같은 동 옆집에 유치원 다니는 사내애를 데리고 사는 편부모(single parent), 우리말로 쉽게 하자면 미혼모가 살고 있었다.
맥스웰대학의 정치학과 학부과정을 다니는 금발의 전형적인미국 아가씨 모습이라, 햇빛만 나면 현관 앞 의자에 앉아 일광욕을 즐기곤 하길래, 오다 가다 마주치며 서로 눈인사로 쉬이 알게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에 돌아오니 집사람이 통통 부어 있어 왜그러냐고 물은즉, 우리집 큰애하고 그 집 아들하고 다툼이 있었는데, 그걸 이유로 그 미혼모가 집사람한테 와서 따지고 돌아갔다는 것이다.
무슨 이유인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우리 아이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문화 차이에 기인한 오해로 빚어졌던 것 같은데.
집사람이 화가 난 이유는 영어가 짧아 그걸 제대로 납득을 못시키고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다는 점이었다.
하도 툴툴 그러길래 안 되겠다 싶어 그 미혼모를 찾아가 사정을 제대로 납득시키고 앞으로 잘해 보자고 해서 그럭저럭 넘어가긴 했다. 하지만 애들 일이란게 원래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이라 그 이후에도 계속 애들 간에 토닥토닥 문제거리가 생겼었다.
일이 그리 되다 보니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어 가 버렸다. 애 싸움이 어른 싸움된다는 우리말이 신기하게도 산 설고 물설은 미국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나도 학교에서 배운 영어라는 것이 미국 대통령이나 의회에서 쓰는 고급 영어뿐이라, 성질은 팍팍 나도 그 심정을 제대로 표현하지를 못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아주 우아하게 정장을 차려 입표 은은한 실내악을 배경으로 고급스러운 사교 모임을 하는 장소에서, 아름다운 귀부인에게 다가가 한다는 말이, "사모님, 여기 뒷간이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용변을 본다는 목적은 이룰 수 있겠지만, 그 무슨 주위 환경에 어울리지 않는 가당찮은 어법인가? 영어란게 그저 영어로 쏠랑쏠랑 말한다고 다 영어가 되는 게 아니다.
애비 없이 키우는 자식에 대한 우리나라 관념도 그 집 애를 보자니 꼭 그대로 이고는 이 미혼모도 아직 대학 학부과정에 다닐 정도니 세상 물정이나 경험도 일천한 얼라가 얼라를 키우는 꼴일진대 제만 잘났다고, 여기가 자기네 나라라고, 우리가 영어 제대로 못한다고 꼴값하는 꼴을 보자니 어지간한 나도 성질이 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화를 내야 할 판국인데도 ‘실례하겠습니다만, 연유가 그것이 아니고 댁의 아드님께서 이러 저렇게 하셨기에 우리 애가 그렇게 대응한 것이옵니다’ 뭐, 이런 식으로 싸운다고 하면 그게 어디 싸움이 되겠는가?
미국에서 살아도 인간의 4단7정인 희노애락애오욕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정히 신경질이 나, 욕을 해대고 싶은데 제대로 못하겠다 싶으면 우리말로 퍼 부어도 좋다. 그나마 화가 잔뜩 난 자기의 감정만이라도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는 있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그 이후로 욕 공부를 새로 시작했는데, 참말로 외국생활이 이리도 어려운 것인지, 세상에 욕도 공부를 해야 하나 싶은게 이국생활의 서글픔으로 아리게 다가 왔었다.
하지만 그래야만 상대 미국인에게 나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도 있고, 또 저 x 이 나한테 욕을 하는 건지 아닌지도 알수 있게 되니 진짜 필요한 과정 중의 하나인 셈이다.
그런데 욕은 꼭 시정판에서 싸울 때나 쓰는 것이 아니라, 무슨 회의나 토론 중에도 쓰면 좋을 때가 있어, 이런 때는 부드러운 욕을 쓸 수도 있다. 이런 걸 제대로 알면 외국인들 하고 국제협상을 할 때에도 의외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제기랄 ! 젠장 ! 하는 의미로 쓰는 말이 shit인데 조금 점잖은 표현은 shoot이고, 세상에 ! 도대체 ! 라는 말로는 what the hell 인데 what the heck으로, 빌어먹을! 은 damn it인데 dam it으로, 아이구 맙소사! 는 oh, my God인데 oh, my gosh로 쓰는 것이 그런 예이다.
그리고 f-word라는 욕도 있는데 이건 우리와 똑같이 남녀상열지사를 빗댄 욕으로 fOOO라는 말을 그렇게 표현한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세상에 ! 나보고 f-word를 썼어요! ”라고 이른다.
최근 우리나라 초등학생들도 영어를 배운다 하더니 요 녀석들이 욕부터 배워, 되도 않게 ‘뿍큐’라고 브로큰 잉글리쉬(broken english)를 써대는 걸 보니 귀엽기도 하고 한심스럽기도 하다.
이 욕은 유독 남녀상열지사만 빗대 쓰이지 않고 아주 좋다든지, 아주 싫다든지를 그냥 강조해서 표현하고자 할 때도 사용하기 때문에 무조건 이런 말 듣는다고 화를 낼 일은 아니다. 우리도 그에 상응하는 욕을 그렇게 쓰지 않는가.
하여튼 미국 욕도 참말로 발달(?)되어 있는 편인데 국제화시대에 제대로 대접받고 제대로 살아남으려면 이제는 욕도 영어로 할 줄 알아야 하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