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업무는 전인미답의 일로서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야 했다. 나는 일선에서 임시로 차출한 4명의 팀원과 함께 토의를 거듭하면서 이 업무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를 하나하나 지혜를 짜내 조사지침을 마련했다.
임복빈(任復彬)과장은 매우 만족해 하였다. 그 대강 줄거리는 다음과 같았다.
먼저 은행에서 100억원 이상 대출받은 기업과 그 기업의 대주주 및 그 대주주의 배우자, 직계존비속의 명부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기업 및 기업 관련인 명부’라 하였는데 주민등록번호로 식별한 기업 관련인만 약 200여명이 되었다.
다음으로 이 명부를 내무부 산하 읍·면·동에 내려주고 이들 명의로 돼 있는 부동산을 소표에 작성하여 그 소표 묶음을 국세청에 제출케 하고 국세청은 이를 전산처리한 후 해당 기업들이 한국은행에 이미 신고해 놓은 부동산 리스트와 크로스체크해 미신고한 부동산을 찾아 내도록 하는 것이었다. 논리적으로 이 방법은 합리적이었지만 실제 상황에선 수많은 에러로 여러번의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다.
특히 전산대사 결과 같은 지번의 부동산이라도 점 하나 찍고 안 찍고 차이로 불일치로 떨어지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하는 수 없이 용산 세무공무원교육원 분원에 일선 직원을 수백명을 동원하여 수동으로 일일이 대조하면서 일치, 불일치 여부를 가려내도록 했다. 엄동설한에 밤늦도록 며칠을 고생했다.
이렇게 하여 미신고 비업무용 부동산을 집계해 놓고 보니 너무 많았다. 전두환 대통령께 국세청장이 조사 결과를 보고해야 하는데 자신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서울청과 중부청 조사국의 모든 업무를 1개월간 중단시키고 해당 기업들에게 소명을 받아 미신고 부동산을 최종 확정시키도록 했다. 당시 서울청 김종창 조사국장은 이 일의 중요성과 맥락을 정확히 파악하고 진두지휘함으로써 시행착오 없이 깔끔하게 일을 마무리해 주었다.
이 일을 하는 동안 국세청장은 대통령께 4번의 보고를 하였고 나는 그때마다 보고서 초안을 작성해야 했다. 합동조사본부는 대통령께 최종 보고를 마치고 81년 3월 중순 해체되었다.
비업무용 부동산 합동조사실무팀장으로 본청에 파견 근무한 4개월의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휴일도 없이 열정을 쏟았다. 우리 팀은 점심식대 지원도 없는 상황에서도 한마음으로 즐겁게 일했다.
함께 공고동락한 이근덕, 박찬민, 오병호, 김철호 등 동역자들의 노고를 잊을 수가 없다. 그 동안 임 과장님과 함께 일하면서 기획하는 일, 기안하는 일, 상황 판단력, 남을 설득하는 능력, 부하 사랑하는 마음 등등 공직자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과 덕목을 임 과장님으로 부터 보고, 듣고 배운 것이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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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비업무용 부동산을 가려내기 위한 작업은 예상외로 험난했다. 전두환 대통령에게 보고를 앞둔 국세청은 급기야 서울청과 중부청 조사국 업무를 1개월간 중단하고 해당 기업들이 신고하지 않은 부동산이 없는가를 확인하는 작업을 했다. 직원들도 야근을 밥먹듯이 하며 분석작업에 매달렸다. 당시 분석작업이 한창인 사무실 풍경<세정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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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국세청 소득세과 종합소득세계장
81년 3월 미신고 비업무용 부동산정부합동조사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나자 임 과장님은 당분간 일선 세무서에 내려가 있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고 서울시내에서 소득세 납세자가 가장 적은 소공세무서 소득세과장으로 자리를 찾아 주었다. 소득세 신고대상 납세자가 250여명 밖에 되지 않은 초미니 과였다. 독립된 방에 과장실이 있어 매우 한가하고 조용했다. 나는 전에 준비하다가 중단한 공인회계사(C.P.A) 시험이 11월로 예정되어 있음을 알고 목표를 세워 공부했다.
오전에 한문제, 오후에 한문제씩 차근차근 풀어 나갔다.
CPA시험 준비를 포기하고 본청 입성
그러던 중 9월 중순 어느 날 본청 과장님이 전화로 ‘장 과장, 내일부터 본청 근무해야겠는데 어때?’하는 것이었다. 나는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CPA시험 준비가 마음에 걸려 하루만 말미를 달라고 하였다. 나는 집에 돌아가 기도하는 가운데 아내와 상의했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본청 입성이 어려울 것으로 생각되어 아쉽지만 CPA시험 준비는 포기하기로 하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종합소득세계장 문동준이 순천세무서장으로 발령이 나자 서울시내의 쟁쟁한 고참 사무관들이 이 자리를 노리고 온갖 활약(?)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직세국장 양창환(梁昶煥) 국장과 소득세과 임복빈 과장은 나를 소공세무서로 내려 보낼 때부터 이 자리에는 나를 이미 내정해 놓고 있었다고 한다.
본청 소득세과는 소득세 1계, 2계, 3계와 재산세 1계, 2계로 구성되었다. 1개과에 고참 사무관이 5명이나 포진해 있는 가장 큰 과였다. 나는 종합소득세의 법규와 행정 일체를 담당하는 2계장으로 사실상 소득세 행정의 최정점 지휘탑의 위치에 있었다.
-매주 月·木 연재- <계속> -
<본 연재 10월 20일자(월)분은 10월초 연휴에 따른 오프라인 휴간 관계로 순연되어 23일 출력 되오니 양지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