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기본법 또는 세법에 의한 처분으로서 위법 또는 부당한 처분을 받거나 필요한 처분을 받지 못 함으로써 권리 또는 이익의 침해를 받은 자는 행정소송을 통하여 법원에서 구제받기 전에 국세청 또는 조세심판원에 심사청구 또는 심판청구를 하여 그 처분의 취소 또는 변경이나 필요한 처분을 구할 수 있다.’
이는 국세기본법 제55조 1항의 내용으로 국세청과 조세심판원의 심사청구 또는 심판청구가 곧 행정심판의 일종이며 국세기본법에 근거를 두어 원칙적으로 행정심판법의 적용을 배제하는 특별행정심판임을 규정짓는 내용이다.
이처럼 국세기본법이 행정심판에 앞서 조세행정심판 전치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까닭은 흔히 조세법률관계의 특성과 조세심판제도의 기능에서 찾을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조세법률관계의 기초가 되는 각종 세법이 전문적, 기술적이라 조세에 관련한 법적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에 따른 법적 분쟁도 대량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신속 정확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는 행정소송 외 별도의 조세행정심판제도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현행 국세청과 조세심판원의 행정심판은 이러한 별도 조세행정심판의 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조세심판제도, 무엇이 문제인가?
조세심판의 심리를 담당하는 조세심판관 회의는 원칙적으로 비공개로 진행되고, 다만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 한하여 공개할 수 있다고 국세기본법 제72조 5항은 명시하고 있다.
또한 실무상 조세심판원 소속 공무원은 청구인과 과세관청이 제출한 서면과 증거를 요약 정리하여 사건조사표와 심판관회의자료를 작성하고, 조세심판관들은 조세심판관회의에서 위 사건 조사표와 회의자료를 기초로 심리하고 있다.
이점에 근거해 결론부터 언급한다면 현행 조세심판제도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청구인이 제출한 서면자료를 근거로 한 비공개 심판 과정에 있다.
더욱이 청구인이 제출한 서면자료는 사건조사표 또는 회의 자료로 요약된 후 심판관에게 전달되어 그 과정에서 청구인이 주장하는 법률 쟁점이나 사실관계가 청구인이 의도한 방향으로 전달되지 않을 가능성까지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비공개 서류심사에 따른 문제점이 더욱 부각된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안하기 위해서 관세청의 과세전적부심이나 심사청구제도에서는 사건의 심리를 위해 작성된 자료를 당사자에게 사전 열람하게 하는 ‘심리자료 사전열람제도’를 실시하고 있지만 아직 조세심판제도에는 도입된 바 없고, 이 제도가 도입된다 하더라도 청구인의 의견이 단순히 서류상으로 100% 전달될 수 없다는 점에서 보다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하다.
특히 올해 들어 조세심판원의 국세인용율이 24.3%, 지방세 인용율이 8.8%에 그치는 등 당초 조세심판원의 설립취지와는 달리 청구인의 권리 구제 비율이 낮아지는 까닭 중 하나를 비공개 조세심판제도에서 찾아도 무리가 없을 듯 하다.
흔들리는 조세심판제도, 그 대안은?
지난 4월 서울시 지방세심의위원회는 새로운 도전을 했다.
서울시 재무국 유상호 세제과장의 창의제안으로 매달 신청을 받아 그동안 비공개로 진행돼 오던 지방세심의를 전국 최초로 ‘공개’세무법정으로 전환, 이를 진행해 온 것이 바로 그 도전이다.
4주에 한 번씩 서울시 서소문청사 대회의실에서 지방세 민원인이 직접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공개세무법정은 일반 방청객을 허용하고, 이의를 제기한 민원인뿐만 아니라 과세를 한 해당 공무원도 함께 하도록 해 이의에 대한 답변을 하도록 배려하였다.
또한 복잡한 조세법률관계를 이해하기 어려운 민원인들을 돕기 위해 서울시 세제과의 직원들이 특별 세무민원담당관을 맡아 조언과 변호를 맡도록 했다.
이러한 변화는 서울시의 지방세 민원의 권리구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 대표적인 개선사항은 청구인의 권리구제율이 4월 시행 후 9월까지 22건에서 44건으로 약 두 배 이상 증가했다는 점이다.
가장 최근에 치러진 제7회 공개세무법정의 권리구제 인용율 또한 50%에 달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공개세무법정의 민원 신청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앞서 언급한 조세심판원의 인용율과 객관적으로 비교할 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공개세무법정에서 살펴보아야 할 점은 단순히 공개와 비공개 여부를 떠나서 시민의 편의를 위해 법령에 없는 일반시민의 방청허용, 처분청의 담당공무원 출석 답변요구, 민원인을 위한 특별세무 민원담당관 제도 및 현직법관 위원장 위촉제도 등을 서울시라는 행정기관에서 자체적으로 고안해 냈다는 부분이다.
이는 시민의 권리에 유리한 법령해석의 확장은 허용된다는 점에 착안, 자칫 전시행정에 그칠 수 있었던 ‘공개세무법정’에 앞서의 세부제도를 고안해 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어 낸 유상호 세제과장과 직원들의 공이 크다.
유상호 과장의 도전은 권리구제의 여부와 상관없이 서울시의 공개세무법정에 참여했던 민원인과 이를 방청한 시민들의 만족도와 호응이 매우 높아졌다는 점에서 큰 수확을 거뒀다.
일예로 지금까지 ‘공개세무법정’에 대해 서울시 홈페이지와 서면으로 답지한 감사편지 등은 본지(12월 1일자 5면)에 소개된 바 있다.
특히 공개세무법정에 관련된 글과 의견을 분석해보면 기업가, 직장인, 자영업자, 주부 등 특정계층에 편중되고 있지 않고 다방면에서 고른 호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본지 기고를 통해 송춘달 세무사는 납세자의 권리구제를 위해 서울시의 ‘공개세무법정’을 본받아야 한다고 언급하는 등 세무실무를 맡고 있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조세심의의 공개화는 높은 관심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해 유상호 세제과장은 “국세청의 과세전적부심제도와 이의신청제도, 조세심판원의 조세심판제도는 모든 것이 서면으로 이뤄져 납세자가 변론할 수 있는 상황이 미흡하다”고 언급한 뒤 “국세청과 조세심판원이 납세자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비공개원칙를 공개주의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공개조세심판’ 도입을 위해서는?
일본의 국세불복심판소(國稅不服審判所)나 독일의 과세관청 이의신청(Einspruch) 제도는 서면심리에 의존하고 있다.
굳이 따지자면 미국의 조세법원(the Tax court)이 조세와 관련 공개심판을 하고 있으나 이는 조세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별도의 행정심판 제도가 아니기 때문에 조세행정심판의 선례는 앞서 언급한 서울시의 ‘공개세무법정’의 선례를 참고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굳이 선례가 없다고 해서 국세청과 조세심판원의 조세심판제도를 공개로 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오히려 신중한 판단 하에 이뤄진 조세행정심판의 공개화는 앞서 서울시 ‘공개세무심판’과 같이 납세자의 신뢰와 호응을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 있다.
우선적으로는 국세기본법 제 72조에 명시된 조세심판관회의의 비공개주의 원칙을 입법적인 차원에서 공개주의로 수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서울시의 경우에도 알 수 있듯이 민원인들에게 가장 큰 호응을 받았던 ‘특별세무민원담당관’제도를 국세심판에도 적용하여 복잡한 조세법률관계를 조언하고 도와줄 수 있는 뒷받침이 필요하다.
물론 민원인의 사정에 따라 경제력이 없는 민원인 등으로 한정하며 관련 인력 수급 여부를 조율할 수 있는 여지도 있다고 본다.
더불어 해당과세를 한 공무원도 함께 공개된 장소에서 민원사항에 대해 변론하도록 하여 국세청과 조세심판원이 실질적으로 과세기관의 입장이 아니라, 객관적 직권심판권을 지닌 입장이라는 것을 청구인과 과세기관 모두에게 효율적으로 알려야 할 것이다.
물론 이에 따른 인력 수급과 시간, 제도적 정비 등에 따른 재정적 소요가 있을 수 있고, 시행 초기에는 급증하는 조세민원을 수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민의 절차적 권리와 그 구제라는 측면에서 비공개심의 보다는 공개심의가 객관적, 사례적으로도 바람직하다는 점에서, 또한 납세자의 신뢰도 회복과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현 시점에서 ‘조세심판제도의 공개주의’는 반드시 입법실현 되어야 할 과제라고 본다.
더불어 앞서의 서울시 ‘공개세무법정’의 도입사례와 같이 관련 공무원들의 뚜렷한 도입의지와 납세자의 권리보장을 위한 깊은 통찰 또한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