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경희대학교 법학관에서는 한국조세연구포럼 주관으로 한국국제조세협회, 한국세무학회 및 한국세법학회가 합동으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세 번째 발표자로 나온 김범준 변호사(법무법인 율촌)는 ‘조세심판제도의 현황과 과제’라는 주제로 현행 조세심판제도의 개선방향을 논리정연하게 제시했다.
특히 김 변호사는 납세자 권리구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조세심판제도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조세심판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그에 따른 개선안을 발표해 참석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날 발표된 조세심판제도의 네 가지 개선안을 정리했다.〈편집자 주〉
▶‘심리자료 사전열람제도’ 국세기본법으로 보장
현행 조세심판체제에서는 심판관들이 청구인과 과세관청이 제출한 각종 서면 및 증거자료 자체를 직접 심리하지 않고 이를 요약 정리한 사건조사표와 심판관회의자료를 토대로 심증을 형성하고 있어, 명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에 무리가 따른다.
한편, 청구인 입장에서도 자신이 제출한 서면 및 증거가 어떤 방식으로 요약정리 되어 제출되었는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주장하는 법률쟁점이나 사실관계의 의미전달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해 관심을 기울여야 할 점은 과세전적부심이나 심사청구제도에서 두고 있는 ‘심리자료 사전 열람제도’다.
“심리자료 사전열람제도”란 앞서 사건조사표나 심판관 회의자료와 같이 사건의 심리를 위해 작성된 자료 중 의견이나 판단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사건 당사자에게 사전열람하게 해 관련 자료를 추가 입증하거나 보충의견을 제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써
만약 이같은 제도를 현행 조세심판제도 전반에 도입한다면 청구인의 주장이 왜곡될 가능성을 방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더불어 ‘심리자료 사전열람제도’를 국세청 훈령이 아닌 국세기본법령에 명문으로 둔다면 청구인의 절차적 권리 또한 크게 신장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무효확인심판 도입으로 납세자 소송부담 줄여야
조세심판제도 개선에서 두 번째로 고려할 수 있는 것은 행정심판법 제4조 2호의 ‘무효확인심판’이다.
현재 조세심판원은 기본적으로 무효확인심판 제기 가능성을 부정하고 단지 ‘무효선언적 의미의 취소심판’형태로만 처분의 무효 주장을 허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조세심판원 결정의 주류가 불복청구기간의 준수를 요구하고 있고, 청구를 인용할 때는 무효확인이 아닌 처분 취소의 주문을 하는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소송상 또는 소송 외에서 대상과 방법을 불문하고 주장할 수 있는 과세처분의 무효를 유독 심사청구 또는 심판청구의 단계에서 무효확인심판의 형태로 다투지 못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오히려 납세자의 부담감소와 특히 행정심판법과 국세기본법의 관련성을 고려할 때 무효확인심판은 당연히 국세기본법에 명시돼야 한다.
특히 현행 제도를 따를 때 납세자가 조세심판단계에서 처분의 무효를 주장하려면 불복청구기간내 ‘무효선언적 의미의 취소심판’을 제기하여야 하며, 불복청구기간을 넘긴 경우에는 3심의 무효확인소송을 거쳐야한다.
이는 인지대와 송달료의 부담이 없고 청구 인용시에는 심판단계에서 사건이 종결되는 무효확인심판과 비교할 때 납세자에게 많은 부담을 지우지는 처사다.
또한 무효확인심판을 명시한 행정심판법 제 43조 1항에 따르면 사안의 전문, 특수성이 아니면 이 법에 특례를 다른 법률로 정할 수 없는데, 오히려 조세법률관계에서는 과세처분의 무효를 다툴 필요가 다분한 이상 국세기본법 55조 1항에 정면으로 무효확인심판제도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재조사결정은 재조사명령으로
세 번째로 고려할 대상은 현행 조세심판원의 ‘재조사결정’이다.
재조사결정이란 조세심판원이 심판청구의 대상이 된 과세관청의 처분에 대해 각하, 기각, 취소, 경정 등의 처분을 결정하지 않고 과세관청으로 하여금 해당처분에 대해 재조사하여 결과에 따라 경청처분 할 것을 명하는 유형의 결정이다.
문제는 조세심판원이 재조사결정 자체를 종국결정으로 취급하고 있어, 납세자가 재조사결정에 따른 경정처분을 기다리다 불복청구기간이 도과되는 상황이다.
이 경우 납세자는 재조사결정의 경정처분 결과를 알지 못한 채 불복청구의 기회를 상실하게 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납세자의 주장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진 재조사결정의 경청처분을 기다리지 않고, 그 결과를 모른 채 3심의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납세자에게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점을 개선하기 위해 행정소송에서 일종의 증거조사와 같은 성격의 재조사결정을 종국적인 결정이 아닌 ‘명령’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조세심판원의 재조사명령에 따라 과세관청이 재조사를 마치면 그 결과를 조세심판원에 제출하고 조세심판원은 그 결과를 토대로 구체적인 세액을 특정해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청구인 입장에서는 심판결정의 주문과 이유를 통해 당초처분 및 경정처분의 구체적인 위법사유와 정당세액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어 기존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다.
더불어 이 같은 개선방안은 국세기본법의 개정을 통해 입법적으로 정리함이 타당하다.
▶조세심판제도의 임의조정제도 도입
마지막으로 고려할 점은 조세심판제도의 ‘임의조정제도’도입이다.
국세기본법 제81조와 제65조는 심판청구에 대해 각하 결정, 취소, 경정, 필요한 처분을 결정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을 뿐, 조정, 화해, 기타 합의 등의 여부에 대해서는 아무런 법적 근거를 두고 있지 않다.
따라서 종래 조세행정심판 실무에서 조정, 화해, 기타 협의 등의 방법으로 사건을 마무리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신속한 납제자의 권리 구제와 세무행정의 신뢰회복에 도움을 주며 쟁송에 따른 불필요한 노력과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행정소송과 국무총리 행정심판위원회에서 실시하는 “임의조정”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예로 행정소송에서 진행하는 임의조정은 법원이 처분청에게는 적정수준의 직권취소 또는 경정처분을 청구인 또는 원고에게는 심판 또는 소의 취하를 권고하고 소송비용은 각자 부담하는 것으로 조정하는 것인데,
국세청 내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1999년 51건이었던 임의조정 실적이 2004년에는 94건으로 증가했으며, 서울행정법원의 경우에도 1999년 27건 이었던 임의조정이 2001년에는 602건으로 대폭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이는 “임의조정제도”가 청구인과 처분청의 요구에 적절히 호응하고 있다는 증거이고, 다만 행정재량의 소지가 적은 조세심판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세액산출방법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과세하는 ‘추계과세’가 문제가 되었을 경우 그 활용의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