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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5.18. (토)

故 조홍제 효성그룹 회장의 稅金觀과 납세철학-①

부당한 일을 어찌 바로잡지 않으랴

故 趙洪濟 효성그룹 회장의 생전 일화집 '여보게, 조금 늦으면 어떤가'가 화제가 되고 있다. 수록된 일화 중 故 조홍제(雅號:晩愚) 회장<사진>의 稅金觀과 納稅철학을 보여 주는 대목이 오늘의 세정이나 납세자에게 교훈적인 메시지를 던져 주고 있다. 엉터리 부실 부과에 대해 재무부 장관에게  당당히 일갈했던 일이나, 세금을 깎아 주는 대신 그 대가를 달라는 세무공무원의 은밀한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던 일들은 두고 두고 회자되기에 충분한 일들이다. 수록 내용 중 세금 관련 일화를 전재했다.<편집자 주>

'63년 겨울, 만우가 담석증 등의 지병으로 두차례나 수술을 받고 건강을 위해 요양을 하고 있던 때였다. 그런데 이 무렵 만우를 자리에서 떨치고 일어나게 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아닌 소득세 납부고지서 한장이었다.

당시 만우는 상업은행을 비롯한 여러 은행의 주식을 갖고 있었는데, 간간이 그 주식들을 담보로 은행에서 융자를 받았다. 효성물산 대표인 만우가 사업자금이 필요한 효성물산에 아무런 대가없이 주식을 빌려주고, 회사에서는 그 주식을 담보로 필요한 사업자금을 융자받아 사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국세청에서는 "조홍제가 담보를 제공하고 효성물산에서 융자를 받았으니, 주주와 회사가 다르다. 조홍제는 대주주로서, 자신의 주식을 담보로 제공해준 대가를 효성물산측에서 받았을 것"이라는 어림짐작으로 만우에게 과세를 해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국세청의 예상은 빗나갔다. 만우는 회사에서 단 한푼의 돈을 받은 사실이 없었던 것이다. 만우는 이 부당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 채 완쾌되지도 않은 몸을 이끌고 회사로 나갔다. 그러고는 경리과에 있던 정달영을 회장실로 불렀다.

"자네가 내 명의의 주식을 담보로, 효성물산 앞으로 융자받는 일을 맡아서 했지?"
"네. 그렇습니다만…."
"어제 이런 게 집으로 날아들었다네."

만우는 정달영 앞에 소득세 고지서를 펼쳐 보였다.

"자네. 단돈 1원이라도 회사돈으로 나에게 주식대여금을 준 일이 있는가?"
"없습니다. 이건 부당한 처사입니다."
"그래. 그렇지? 이것은 바로잡아야겠지?"

소득세 고지서 앞에서 황당하기는 정달영도 마찬가지였다.

"당장 세무서에 달려가서 옳지 않다는 것을 따져 바로잡겠습니다."

만우는 이 일은 자신이 직접 바로잡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마후, 만우는 당시 황종율 재무장관을 만나는 자리에 정달영을 배석시켰다. 만우는 황 장관에게 "이것 좀 보시지요"하며 소득세 납부고지서를 내밀었다. 황 장관이 그 고지서를 다 보고 나자 만우가 말을 이었다.

"황 장관. 보시고 짐작은 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세무서 입장으로서는, 내가 내 주식을 은행에 담보로 제공할 수 있게끔 효성물산측에 대여를 해줬으니 사회 통념상 대여료를 받았을 것이라 보고, 그에 대한 소득세를 부과한 모양이오. 하지만 내가 대표이사로 있는 회사가 사업자금을 빌리고자 하여 내 주식을 빌려준 것뿐인데 무슨 놈의 대여료가 오간단 말이오? 효성물산 자체가 나에게는 대여료를 지불한 사실이 없고, 나도 한푼의 대여료를 받은 사실이 없는데, 세무서가 그런 사정을 사전에 확인도 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고지서를 발부한 것이니 이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요."

계속해서 주먹구구식 행정에 대한 만우의 따끔한 충고가 이어졌다.

"세수증대(稅收增大)를 내세워 덮어놓고 과세를 하고, 일단 세금고지서가 발부되면 무조건 그걸 내도록 해야 한다는 관행이 되고 있으니 이래서 되겠소?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관리가 실수한 것을 민간인의 힘으로 바로잡게 하는 사례가 너무나도 많소. 이것이 바로 일제의 슬픈 잔재가 아니고 무엇이겠소?"

많은 사람들이 이런 부당한 일을 겪고도 따지지 않고, 잘못인 줄 알면서도 그대로 당하고 만다. 이런 정신자세가 과거의 못된 관행을 청산하지 못하게 하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고 만우는 생각했다.

부당한 것을 바로잡는 일은 부당하다고 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때문에 만우는 장관에게도 그 잘못을 준열히 따졌다.

"황 장관. 일제시대의 못된 관행이 얼마나 나라일을 그리치는지 잘 알지 않소? 그런데도 이런 과거의 잔재를 그대로 지키고 앉아 있으니 장관 자리가 부끄럽지도 않은가 말이오. 이런 잘못된 관행은 당장 바로잡아 주시구려!"

만우의 말을 다 듣고 난 황 장관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진심으로 만우에게 사과의 마음을 표했다.

"허허. 듣고 보니 제가 관직에 앉은 이래로 처음 듣게 되는 옳으신 꾸지람이라 하겠습니다. 당장 바로잡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재무장관의 시정 지시에도 불구하고, 그 해결이 쉽지 않았다. 문제의 그 관행대로 일단 과세된 세금은 부당한 과세라 할지라도 납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만우는 그 후 2년동안 세번에 걸쳐 끈질긴 심사청구를 한 끝에, 결국 원금을 물론 이자까지 다 찾아냈다.

우리나라 세법에는 '실제과세의 원식'이 존재한다. 세금은 외양에 관계없이 실질 내용에 따라 과세한다는 원칙이며, 이에 따라 거래 내용에 관한 과세 역시, 거래의 명칭이나 형식과 별개로 그 실질내용에 따라 적용한다는 것이다. 만우는 이러한 '실질과세의 원칙'을 원칙대로 적용할 것을 주장한 것이다.

자신이 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법이 어긋나게 집행되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지 않는 것도 그에 버금가게 중요한 일인 것이다. 정달영은 이 일을 통해 사소한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면, 바로 시정해야 하는 것이 곧 경영의 원리임을 크게 깨닫게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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