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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국세

[인터뷰]강만수 전 재경부 차관

"부가세 도입은 내 공직생활, 아니 내 인생에 가장 보람된 일로 기억!"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그러니까 부가세를 도입한 74~77년까지 만 4년여의 시기가 내 인생에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였다. 그 당시엔 부가세 도입에 대해 ‘全국민, 재무부내, 국세청, 관세청, 각 경제부처, 야당인 신민당(당론으로 반대)은 물론, 특히 여당인 공화당(지역구의 많은 유권자들이 어렵다는 이유로) 조차 다 반대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이하 당시 보직으로 명기)의 강력한 지시’로 결국 부가세는 도입됐고 성공적으로 시행이 돼 한 세대인 30년의 성상이 흐른 오늘날 국가재정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잡고 있다. 사실, 부가세 도입은 내 공직생활, 아니 내 인생에 가장 보람된 일로 기억된다.”

 

지난 77년 7월1일 부가세제 입안 실무주역이면서 당시 재무부 세제국 부가세과장인 강만수 전 재경부차관(한나라당 이명박 대선예비후보 자문위원)은 30년전 부가세 도입 당시의 난마처럼 얽힌 시대상황을 이같이 회고했다.

 

특히 강 전 차관(이하 강 차관)은 “당시엔 부가세 도입에 모두가 반대했으나, 오직 세 사람(박정희 대통령, 김용환 재무부장관, 강만수 부가세과장)이 특히 박정희 대통령이 각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부가세를 도입, 결국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면서 “다만, 자신은 제도입안 실무자일 뿐 실질적인 부가세 도입은 박 대통령이 도입에서 시행까지 전 과정을 다 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를 만나봤다.

 

-요즘 근황은 어떠하신지요.

 

“정권창출을 위해 이명박 대선예비후보 캠프에서 사심 없이 경제정책을 중심으로 정책전반을 자문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5년 4월경 발간한 ‘부가세에서 IMF사태까지-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삼성경제연구소 펴냄)’이 베스트셀러가 됐다면서요.

 

“좀 창피합니다만, 1만2천부를 찍어 1만부가 팔렸다고 합니다. 아마 그래서 베스트셀러라고 하는가 봅니다.”

 

-부가세 도입을 앞둔 지난 74년 당시의 시대상황은 어떠했나요.

 

“그 당시엔 카터 미 대통령이 미군을 철군시키려 했고, 우리나라는 자주국방의 기치아래 방위체제를 강화하고 있었지요. 그러다보니 많은 방위성금 모금과 방위세를 한시적으로 도입 시행했어요. 그러나 국가세입이 크게 어려웠답니다. 국세청에선 조상징수(세금을 빌려오는 것)를 하게 됩니다. 이른 바 본청에서 지방청으로, 지방청에서 일선세무서로, 일선서에서 각 과로 배정하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지요.

 

당시 미국은 자주국방을 표방한 박 대통령에게 GNP의 6%미만을 허용했지요. 박 대통령은 탈세가 심해 세입이 못 따라간다며 여타 세목의 세율인상을 하지 말 돼 탈세를 막아 재원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어요. 특히 박 대통령은 “부가세가 가장 탈세가 어렵고, 세입 역시 가장 생산적인 세금이 아닐 수 없다”고 부가세 도입을 검토하라고 지시했지요.“

 

부가세 도입은 박 대통령이 지시하고 성공한 제도

 

-당시 국민과 각계에서 왜 부가세 도입에 반대를 했나요.

 

“전반적으로 반대를 했지요. 당시엔 조세의 경우 ‘신세(新稅)는 악세(惡稅)다’라는 논리가 횡행하던 시절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일례로 버스노선을 개편한다고 해 보세요, 아마 적잖은 반대와 저항에 부딪힐 것입니다. 적응이 어렵다는 이유로 단순거부가 시작된 것이지요. 그런데 일본도 부가세를 5년이상 검토했으나, 도입을 하지 못했고 대만 역시 도입을 못했어요. 더욱이 부가세는 어렵다. 우리나라는 시행이 무리다는 논리가 적지 않았지요.”

 

-반대하는 분들에게 어떤 설득의 노력을 했나요.

 

“75년부터 2년간 각 경제단체와 국세청, 관세청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설득작업을 했어요. 부가세는 ‘인간이 발명해 낸 최상, 최선의 조세’라고 말입니다. 그 이유는 부가세는 세입이 안정적이고, 탈세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지요. 그러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 부가세 도입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시행이 됐나요.

 

“박정희 대통령이 세율을 올려서 세금을 거두지 말고, 탈세를 막아 세입을 확보하라고 하셨지요. 그러나 부가세가 좋은 제도이긴 하지만, 정치적으로 부담(총선을 앞두고 있었음)과 큰 문제가 노정됐지요. 그러자 박 대통령이 ‘정치는 내가 걱정 할 테니, 경제는 장관이 걱정하고 예정대로 실시하라고 해 실시하게 된 것입니다. 이른 바 박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에 의해 추진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정치는 내가(박 대통령) 할 테니 경제는 장관이 걱정하라!"

 

-박 대통령이 시해된 이후 전두환 대통령이 들어서기 전(국보위 시절)에 부가세로 인해 적잖은 곤란을 겪었다면서요.

 

“그 때 공화당에서는 부가세 도입 주역을 문책했어요. 부가세 때문에 박 대통령이 시해됐다는 엉뚱한 논리를 적용했어요. 당시엔 여론을 인식한 나머지, 정치적인 부분을 부각시킬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더욱이 그 사안(박 대통령 시해)은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지, 세제 때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보위에 끌려 갔어요.”

 

-국보위에 끌려가서 어떻게 됐나요.

 

“죽는 다기 보다, 사표 낼 각오로 갔어요. 당시 심유선 장군(소장)이 국보위 재무분과위원장 이었어요. 그 분이 재무부 내부에서도 반대하는 부가세를 강 과장이 주도적으로 역할 한 것이 사실이냐고 추궁했지요. 참으로 어이가 없었어요. 저는 위원장에게 그것은 대통령이 주도한 것이지 일개 과장 밖에 아닌 사람이 어떻게 이런 엄청난 일을 하겠느냐며 그렇다면 오히려 영광스럽다고 말했지요.

 

사실 막가는 식으로 브리핑 차트도 없이 맨손으로 갔어요. 위원장에게 세금강의를 했습니다. 국가유지의 근간을 이루는 3대 행정이 ▶조세 ▶경찰 ▶군사행정이라고 말했지요. 또 행정은 원래 국민의 자유와 재산을 수탈하는 행정, 국민의 신체와 재산을 보호하는 조장행정 등이 있다고 설명했어요.

 

당시 우리나라 국가세입은 국방비와 비슷했지요. 따라서 국방비에 상응하는 세금을 또 만들어야 한다고 했고, 비록 새로운 제도라서 싫고, 엄청난 조세저항이 있다하더라도 탈세가 어렵고 세입이 안정적이기 때문에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고 설명했지요.

 

국방비에 상응하는 세금(부가세) 만들라!

 

그러자 심 장군이 그럼, 부가세는 좋은 제도구만 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도 설득이 어려웠지요. 아마도 그 땐 전두환 상임위원장이 부가세를 폐지하기로 방침을 정했던 모양입니다. 당시가 80년 4월경 이었는데 국민의 반대가 워낙 심했었지요. 눈앞이 캄캄했어요. 국보위 선배로 있는 조관행 전 서울청장도 사표내야 할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어요.”

 

-현행 부가세제를 어떻게 보시는지 문제점과 보완점이 있을까요.

 

“큰 문제점과 보완점은 없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지난 95년 제가 세세실장을 하면서 과세특례제(2% 세율)를 폐지하고 대신 간이과세제를 도입했어요. 아시다시피, 세부담이 급격히 늘어(다섯 배)나는 점을 고려 의의 완화조치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2006년 기준 내국세 30%가 부가세지요. 부가세는 국가재정의 기반이 되면서 소득, 법인세의 탈세를 예방하는 제도적 장치이기도 하지요. 더욱이 부가세는 담합 없이는 탈세를 할 수가 없구요.

 

IMF 재정부에서 세계에서 재정이 가장 튼튼한 나라가 우리나라라고 하면서 그 주요인이 부가세라고 칭찬이 대단했지요. 부가세는 정치적 산물이기도 합니다. 여러 분야에서 반대를 했기 때문에 제도 도입실무 주역인 제가 17~8년간 문제점이 됐던 것(과세특례제)을 다시 돌아와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자세로 바로 잡았지요.

 

그 때가 96년으로 기억됩니다. 잘못된 과세특례제를 제가 도입했고, 결국 제가 폐지한 것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놀랬습니다. 누구도 이 잘못을 지적하지 못했지요. 그런데 제 손으로 해결한 것이지요. 이 역시 제 일생에 가장 큰 보람으로 기억됩니다.“

 

"잘못된 과특제, 결자해지 일생의 큰 보람"

 

-30년이 지난 오늘 부가세 도입을 회고해 보신다면.

 

“30년이면 한 세대가 아닙니까. 부가세도 이제 제2세대(인생)의 시절을 맞이한 것이지요. 한 세대가 가고 신 세대가 왔다고나 할 까요. 그러나 부가세를 통해 지도자가 나랏일을 할 때 국민의 여론에 꼭 귀 기울여야 할 부분이 있고, 설득시켜야 할 부분이 있지요. 특히 원칙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부분과 국민을 설득할 부분이 따로 있는 것 아니겠어요. 

 

이런 점에서 부가세는 국민의 여론과 관계없이 지도자가 리더십을 갖고 국민을 설득시키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끝으로 부가세가 어떻게 해서 30년간 유지돼 오고 탈세방지와 안정적인 세입확보의 선행세목으로 각광받고 있는지요.

 

“이에 대한 대답은 명확합니다. 그것은 ‘국세청의 역량이 탁월’했기 때문에서 비롯됩니다. 국세청 법인세 요원이 중심이 돼 부가세율 10%에 따른 ‘투입산출분석(모든 가격에 세금요소를 분석하는 기법)’이 있었기에 가능했지요.

 

세계 어느나라도 못한 국세청 투입산출분석 기법

 

부가세 세율의 투입산출분석은 세계 그 어느 나라도 못해낸 일입니다. 심지어는 IMF에서도 안될 것이라고 단정했지요. 그런데 국세청에서 세계가 깜짝 놀랄 일을 해 낸 것입니다. 이 사람들(국세청 법인세 요원)이 해낸 보고서는 ‘IMF 비밀도서관’에서 가져가 활용되고 있을 정도로 국가적 사료가치가 뛰어납니다.

 

이같은 전문요원 양성은 당시 고재일 국세청장이 부기 1급이상 베테랑 사무관을 조사반장으로 임명, 대기업 조사를 시켰는가 하면, 국세청서 날고 기는 반장들을 투입산출분석 업무에 투입시켰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한편 강만수 전 차관은 요즘도 아침 4시45분에 일어나 교회도 가고, 조깅과 테니스를 한다고 한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예비후보 캠프에는 매일 아침 어김없이 7시30분에 출근, 정상업무를 볼 정도로 의욕과 열정이 대단하다. 그러나 강 전 차관은 향후 관계 입문에 대해 정치적인 부분인 민감한 사안이라며 일절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다만, 그는 2년 전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을 썼던 때와 마찬가지로 사심 없이 자신이 보유한 경제정책 전반을 자문해주는 일 이외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프로필]
▶45년 경남 합천
▶서울대 법대
▶미 뉴욕대 경제학
▶행시합격(70년)
▶미 뉴욕 주미대사관 재무관
▶관세청장
▶통상산업부 차관
▶재경부 차관
▶한국무역협회 부회장(98년)
▶디지털경제연구소 이사장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예비후보 경제정책자문위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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