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각 부처 가운데 유독 국세청만 변함없이 그것도 지속적으로 꾸준하게 추진해 오고 있는 전통(傳統)이자 문화(文化)가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명예퇴직제(이하 명퇴제)’를 말한다. 그런데 이 명퇴제는 성문법(成文法)도 아닌, 불문법(不文法=관습법)이다. 이른 바 국세청 내부적으로 면면히 지켜오고 있는 인사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관행(慣行)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고, ‘고공단제의 실시, EITC(근로소득장려세)와 4대보험 통합징수 등의 국세청 관리’ 등으로 국세청 내부의 세심(稅心)도 예전 같지 않은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더욱이 올 연말엔 48년생 서기관급이상 관리자들은 좋든 싫든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평생직장 국세청을 떠나야만 한다. 명분(말)이 좋아 ‘후진을 위한 용퇴’지 사실, 명퇴 당사자들은 인생의 종착역과도 같은 시점에 봉착, 쓰라린 가슴을 움켜쥐고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있다. 내년엔 49년, 내 후년엔 50년생들이 단지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 하나(?)로 말이다. 이는 마치 불교의 윤회사상과 매일반으로 누구든 예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50년생 이후는 명퇴대상이 그리 많지 않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 시점에서 국세청 명퇴제에 대해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세정가의 주장이 그 어느 때보다 높고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편집자 주>
4급이상(48∼50년생) 약 120여명 선
실제로 국세청의 명퇴제는 외부에서 보기와는 달리 철저하다 못해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다. 이는 국세청이 철통보안과 끈끈한 조직력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세정을 집행하기에 그러하다. 올해도 예외 없이 명퇴제가 시행되지만, 당장 내년부터가 문제다. 현재 4급이상 관리자급에서 '48∼'50년생(올해의 경우 48년생이 명퇴대상)은 약 12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렇게 많은 관리자들이 명퇴를 하고나면, 명퇴제도 의미가 없어지고, 관리자 공백상태가 우려된다. 따라서 이들이 퇴직을 하고 난 후를 사전에 대비, 명퇴제 운용을 용퇴제로 변경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더욱이 당장 문제는 이들 대부분이 기관장(지방청장, 세무서장)이기 때문에 잦은 인사요인이 발생(6개월 마다)해 인사권자는 물론, 지방청이나 세무서 역시 대내외적으로 업무추진에 여간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다.
“고공단제가 시행된 마당에, 이제 우리 국세청도 명퇴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성이 대두 된다”고 전제, “현행 6개월 단위의 잦은 인사교체로 근무의욕 저하는 물론,행정집행의 안정성 역시 크게 떨어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지역지방청 관계자의 말은 음미해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
일선의 한 관계자도 “일선 기관장이 자주 교체가 되면, 내외부적으로 업무의 연속성이 떨어짐은 물론, 특히 대외관계에서 안정성이 떨어진다”고 반문하면서 “더욱이 기관장의 잦은 교체로 인해 외형적으로 눈에 보이는 손실보다는 무형적인 부분적인 손실이 더 크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해 명퇴제의 문제점을 이같이 지적했다.
고공단제 시행으로 명퇴제 유명무실
세정가의 이같은 명퇴제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 주장은 우선 내외부적인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는 점을 손꼽는다.
그 첫 번째가 고위공무원단제도(이하 고공단제)의 시행이다. 고공단제의 시행으로 사실상 명퇴제는 유명무실(有名無實)해 졌다는 것. 이는 고공단제 운용과정에서 여실히 입증된다. 현행 고공단제는 ‘자율직, 개방직, 공모직’ 등 3개 직군으로 운용되는데, “자율직은 국세청장이 실질적인 인사권을, 공모직은 중앙인사위가, 개방직은 시민단체가 행사한다”는 게 정설로 돼 있다.
현실적으로 서울청 조사2국장이 자율직임에도 불구, 개방직과 공모직인 국장급 인사가 이뤄지지 않아 줄곧 공석(空席)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어 여간 문제가 아니다. 주무국장이 근 2~3개월 동안 공석사태는 이제 국세청에선 ‘일상사’가 돼 버린 지 오래다.
더욱이 한창 일할 나이에 고공단제로 인해 자칫 고급인력(경륜을 갖춘 국장급) 다수를 순식간에 잃게 되는 우(愚)를 범할 소지가 크다. 지금 고공단에 입성한 국장급 다수는 ‘신판, 고려장(高麗葬)’을 당하지 않을까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이와 관련 세정가의 고위 관계자는 “이제 이 시점에서 명퇴보다는 오히려 용퇴(진정, 스스로 물러나는 것)로 인사체제를 변경해야 한다”면서 “이는 오직 국세청장의 용단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명퇴제, 후진(後進)위한 용퇴 전통
국세청은 타 부처에서는 시행하고 있지 않는 독특한 방식으로 명퇴제를 줄기차게 이어오고 있다. 시대와 내외부 환경이 급변했는데도 말이다. 그 독특한 방식은 바로 ‘후진을 위한 용퇴’다.
4급이상 관리자급은 정년 60세에서 2년을 앞당긴 58세가 되면, 이유를 불문하고 명퇴신청을 해야만 한다. 물론 명퇴신청 사유는 '후진을 위한 용퇴'를 말한다. 이른바 후진을 위해 2년 먼저 퇴직을 한다는 것으로 그 내면에는 승진 및 인사적체를 해소키 위해 용퇴를 하는 후배사랑의 숨은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명퇴를 약 3~6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명퇴대상 관리자와 인사권자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펼쳐지면서 때론 불협화음(不協和音)도 발생하곤 한다.
이는 명퇴대상자는 청춘을 다 바친, 평생직장을 떠나는 마당에 마지막 봉직자리를 자신의 위상과 명예에 걸맞는 최소한의 예우(?)를 해달라고 구애(求愛)의 손길을 보내는 반면, 인사권자는 조직 전체를 생각해 인사발령을 내기 때문에 상호 상충되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말한다.
내외부적, 시대환경 급변했건만
이같은 세정가의 명퇴제 전면 재검토 주장의 내면에는 올해부터 이를 곧바로 적용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이미 올 하반기 명퇴신청자는 확정이 되가는 상태고, 전군표 국세청장이 이를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년 상반기 이후부터 이를 적용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심도 있는 재검토에 들어가자는 것이다. 이와 관련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6급이하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인사혁신위원회가 있어 여기서 논의 된 사항 중 상당부분(일례로 사무관 승진 연령 제한 등)이 실행되고 있지 않느냐”고 전제, “4급이상 관리자급도 이와 동일한 수준은 아니더라도, 뭔가 연구하고 의견개진을 할 수 있는 창구가 있어야 한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이 주장이 결코 인사권자의 고유권한에 정면 도전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며 “이제 국세청에도 관리자급이 자신의 신상에 대해 의견개진을 할 수 있는 창구가 있을 때도 됐다”고 말해 ‘국세청장 면담이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실상’이 개선돼야 함을 적극 주장했다.
지방청의 한 관계자도 "그동안 우리 국세청의 명퇴 관행이 하루아침에 정착된 것이 아니지만, 따뜻한 세정을 전개하는 전군표 국세청장이 EITC업무 확보와, 4대보험 통합징수관리를 맡게 된 현 시점에서 명퇴제 개선에 남다른 관심을 가져줄 필요가 있다"면서 “만약 이 일을 전 청장시대에 해결하지 못한다면, 기초작업을 해 놓고 후임자에게 맡기는 방법도 고려해 볼만한 일 아니겠느냐”고 색다른 주장을 제기했다.
잦은 인사로 조직단합 저해 우려
전면적인 명퇴제 재검토에 대해 세정가의 한 관계자는 " '48∼'50년생이 120여명이 된다는 점과 EITC 도입에 따른 조직 확대 등 고공단 시행에 따라 앞으로 승진인사의 완만한 흐름을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이같이 확대된 조직체계하에서는 향후 누가 청장이 되더라도 명퇴 때문에 빚어지는 기관장의 잦은 교체에 따른 조직의 단합을 저해하고 직원들의 사기저하는 막을 수 없다"고 말해 명퇴시점의 개선이 적극 요구됨을 강조했다.
사실 앞서 지적했듯이, 현재 국세청내 서기관급이상 관리자급에서 '48∼'50년생까지는 120명선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다. '51년생 이후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51년생이후 관리자가 없다는 것은 한국전쟁(6·25 전쟁)에서 기인한다. 전쟁 통에 출생자가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세정가의 한 관계자는 "고공단제 시행을 기점으로 이제 국세청도 명퇴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면서 "직원들이 인사혁신위원회를 통해 인사상 건의 등 개선점을 모색하듯, 관리자의 경우도 당면 현안인 명퇴제를 개선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국세청의 명퇴제는 법이나 제도 개선사항이 아닌 국세청장의 결심사항"이라면서 "청장께서 결심해 발표를 하면 되는 일"이라고 말해 전군표 국세청장의 결단을 촉구했다.
명퇴제, 전군표 국세청장의 결심사항
현행 국세청의 명퇴제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그동안 적잖은 불협화음(不協和音)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실제로 공무원은 승진의 메리트속에서 존재한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정년퇴직은 한 직급씩 승진하는 것이 없으나, 명예퇴직은 다르다. 4급에서 명퇴신청을 하면, 3급 부이사관으로 진급한다. 공무원에게 승진 이외의 또 다른 메리트는 명예(名譽)가 아닌가 싶다.
아무튼 고공단제가 시행된 이후 세정가에 적잖은 후폭풍이 불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나아가 EITC 도입과, 4대보험 통합관리 등으로 국세청 조직은 확대 재생산 될 조짐이다. 이같은 시점에서 국세청의 명퇴제 운용방침 또한 예사롭지 않다.
세정가의 적지 않은 관계자들 사이에선 명퇴제 대신 국세청법을 도입하자는 주장도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국세청법은 “OO출신들 사이에서 계급정년제 적용을 우려해 반대했다”는 세정가 일부의 주장도 엄존하고 있다.
고공단제 시행에 따라 불문율로 면면히 이어져 온 국세청의 명퇴제에 전군표 국세청장이 향후 어떤 결정을 내릴지 숨죽이고 이를 예의주시 하고 있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