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처음 타보는 고속전철은 과연 빨랐다. 내가 어렸을 때 처음 서울행 기차를 탔을 때 느낌 그대로였다. 지금은 시속 300㎞로 달리는 열차의 속도감이 내가 어렸을 때 시속 100㎞로 가는 속도감과 맞먹는다는 건 아마도 내가 자꾸 나이를 먹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크기 혹은 그만큼 바빠지는 마음의 속도와 비례하는 것은 아닐는지.
승권님은 지난 한주일간 매일 새벽 2시 넘어서 자게 된 강행군으로 인해 이내 까무룩히 잠들었다. 허나 어린아이 마음이 다 된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휙휙 지나가는 풍경은 가까운 곳을 볼 수록 마음까지 저릿저릿하게 했다.
동대구역에는 정혜경 방장님과 대구청팀들이 먼저 와서 프랭카드를 들고 우리를 기다려 줬다. 곧이어 시인이자 문학방 방장님이신 정호님과 울트라맨 흥식님이 합류했다. 역사적인 동대구 정모의 첫 만남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플랜카드에는 '제1회 국세청 커뮤니티 독서일기 지역 정모'라고 아담하고 선명하고 깜찍한 글씨가 새겨 있었다.
그리고 바로 밑에는 우리 모임이 추구하는 바, 당차고 순결한 외침, '맑은 눈, 열린 가슴, 지혜로운 삶'이라는 문구가 예쁘게 자리잡았다.
팔공산 자락으로 가는 차안에서 우리는 용식님이 플랜카드와 동일한 문구가 들어가도록 고안하고 만들어낸 걸작품 오랜지색 손수건을 나눴다. 특히 이 손수건은 용식님이 친구분과 함께 눈물겨운 노력의 결실로 만들어 낸 작품인 것으로서 우리 모임이 오래도록 간직할 기념품이 될 만했다.
대구도 역시 간헐적으로 폭우가 쏟아지는 날씨이긴 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우리가 차안에 있을 때만 그런 비가 와줘서 오히려 더욱 운치있는 시간이 된 듯하다. 식사전에 원래 예정이라면 갓바위나 그 근처를 답사하는 것이었으나 날씨 등 여건이 다소 여의치 않아 팔공산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오르는 것으로 행로를 바꿨다.
차로 이동하는 도중 대구청팀의 대장이신 도상천님께서 대구라는 도시에 생소하신 분을 위해 당신의 체험이 들어가 더욱 감칠맛 나는 설명을 해주셨다. 가는 곳곳마다 우리를 위해 정성을 다하는 모습에 우린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팔공산을 오르는 케이블카, 사실 내가 케이블카를 타본 기억은 또 언제였던가. 나는 오르면서 아래쪽을 향해 앉아 있었는데, 운무를 헤치고 오르는 모습이 마치 내가 동아줄을 잡고 구름을 헤치며 하늘나라로 여행하는 여행객처럼 여겨지는 듯한 희안한 경험을 했다.
차라리 우리는 동화속 주인공이나 될까 보다. 케이블카는 유난히 길어 보였다. 팔공산이 팔백 몇십미터인 걸로 아는데, 그러나 마음만은 좀더 높지 않은 게 아쉬웠다. 쬐금 더 올라가면 정말 하늘나라 갈 수 있을 것만 같으니.
케이블카로 오른 정상에서 도상천님은 이제 드디어 도솔천에서 오신 신령한 분으로 다시 태어나셨다. 그런데 도솔천에서 오신 분은 운무때문에 우리 일행이 정상에서 시내를 구경하지 못하게 된 것을 수차례 안타까워 하셨다. 그리 서운해하지 않으셔도 되셨는데, 적어도 나는 그 순간의 희부옇고 서늘하고 신령스러운 기운을 온전히 만끽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 말처럼 그 순간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일 수 있음일 터.
우리는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팔공산을 내려왔다. 식당으로 향하며 내려오는 도중 무인카 모텔이라고 비슷한 건물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안개비 내리는 운치있는 날이라면 우리 함께 퍼질러 자리잡고 좋은 경치나 감상하면서 오래오래 머물고 싶은 생각이 굴뚝처럼 일었다. 그럼 함께 타락 한번 해보자는 얘기? 오해 마시라. 내 말은 다만 그 경치며 분위기가 죄다 그 책임이라는 뜻.
식당은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었다. 바깥 경치도 시골의 정경과 신선한 내음이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서로 통성명으로 자신을 소개할 즈음에 바쁜 걸음을 재촉하신 정재용님이 자리를 채워 주셨다. 그리하여 함께 자리한 사람은 총 14분이 됐다. 서로 기억하고 되새기는 의미로 이름을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