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 떠나면 타향객지 나는 또 어디로 가야하나 비내리는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막장 끝에서 또 간다면 어딜까 항상 죽음을 곁에 달고 기차굴속 같은 어둠 속에서 부평초처럼 가볍게 온몸을 내맡기고 탄을 캐던 시절 애국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산업의 역군이라는 말도 몰랐다 그냥 저들이 하기 좋은 말 아무리 힘들어도 지하보다 이승이 좋다고 탄가루 섞인 밥 한 덩이를 위해 생과 사가 하나되어 끊임없이 세상의 벽을 향해 곡괭이를 휘둘러야 했던 시절 떠날 때는 올 때처럼 빈 몸 늙어진 몸뚱이만 시류(時流)의 칼날에 힘없이 난도질당한다 철마야 너는 아느냐 갈고리 같은 내 손아귀에서 얼마나 많은 탄이 너에게 부어졌는지 얼마나 많은 한이 너에게 맺혀있는지 휘어진 허리를 역사(驛舍) 탄색등걸이에 맡기고 경계선 없는 어둠과 탄 빛을 구분해 내려는 듯 흐려진 눈을 질끈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