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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6.03.21. (토)

오문성 교수의 '라이프 Pick'

비슷한 것도 다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처음 듣는 곡이 별로 없고, 식당에서 먹는 음식도 새롭다는 느낌이 사라졌다. 아침마다 유튜브 음악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필자는 Morning Has Broken이나 You Raise Me Up을 듣고 나면, 그 뒤로 이어지는 알고리즘 추천 음악들 역시 늘 익숙한 곡들이다. 수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번에 25미터를 15바퀴, 때로는 20바퀴를 반복해서 돌다 보면 몸은 익숙해지지만, 마음은 어느 순간 ‘또 이걸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결국 비슷한 행위의 반복이라는 사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고, 익숙한 경로로 출근하며, 늘 보던 사람들을 만나고,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 우리의 하루는 크게 다르지 않은 패턴 속에서 흘러간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순간 ‘삶이 단조롭다’거나 ‘지루하다’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과연 우리의 삶이 정말로 그렇게까지 반복적이고 동일한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느끼고 있을 뿐일까.

 

겉으로 보기에 반복되는 일상은 실제로는 미묘하게 다른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같은 곡이라도 부르는 가수가 달라지면 그 느낌이 다르고, 같은 가수가 불러도 그날의 기분에 따라 전혀 다른 감정으로 다가온다. 같은 종류의 음식이라도 음식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같은 출근길이라도 계절, 날씨, 빛의 양과 방향에 따라서도 다르게 느껴진다. 즉, 환경은 비슷해 보일 뿐,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차이를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같다’고 규정해 버리는 데 있다. 인간의 뇌는 효율성을 위해 반복되는 자극을 하나의 범주로 묶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는 생존에는 유리하지만, 삶의 풍요로움을 느끼는 데에는 오히려 장애가 된다. 익숙함은 안정감을 주지만, 동시에 감각을 둔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세상을 ‘새롭다’가 아니라 ‘이미 아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음악도, 음식도, 사람도, 일상도 더 이상 탐색의 대상이 아니라 이미 분류된 정보가 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삶은 급격히 단조롭게 느껴진다.

 

하지만 삶의 질은 외부 환경의 변화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에 훨씬 더 크게 좌우된다. 우리는 환경을 완전히 바꿀 수 없다. 모든 사람이 새로운 직장, 새로운 도시, 새로운 관계 속에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이다.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도 ‘또 이 노래야’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지루함이 된다. 그러나 ‘오늘은 이 노래의 어떤 부분이 다르게 들릴까’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음악은 다시 살아난다. 같은 수영을 하면서도 ‘몇 바퀴를 더 돌아야 하나’라고 생각하면 지루하게 느껴지지만, ‘오늘은 물속에서 호흡을 길게 해볼까’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다르게 느껴진다. 이 차이는 사소해 보이지만, 삶 전체를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흔히 삶의 변화를 외부에서 찾으려 한다. 새로운 취미를 찾고, 새로운 음식을 먹고, 새로운 장소를 방문한다. 물론 이러한 시도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지속적인 만족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새로움도 반복하면 곧 익숙함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신선했던 것도 몇 번 반복되면 결국 또 다른 ‘일상’이 된다.

 

따라서 진정한 변화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같은 것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능력, 즉 인식의 전환이야말로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핵심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슷한 것을 다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긍정적인 사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억지로 좋게 생각하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오히려 더 정교하게 관찰하고, 더 세밀하게 느끼라는 의미다.

 

예를 들어, 같은 커피라도 향을 의식하며 마시면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경험이 된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익숙한 곡일수록 멜로디를 넘어 출연하는 악기의 종류에 집중하면, 간간이 스쳐 지나가던 악기 소리까지 또렷이 살아나고, 그동안 미처 듣지 못했던 소리들이 드러난다. 연극도 다르지 않다. 주인공의 대사에만 시선을 두면 장면은 비슷하게 흘러간다. 그러나 조연의 낮은 중얼거림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무대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다가온다. 우리는 흔히 ‘이미 다 아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대부분을 놓치고 지나간다.

 

이러한 태도는 단순한 감상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방식 전체를 바꾼다. 반복을 지루함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점점 더 강한 자극을 필요로 하게 된다. 반대로 반복 속에서 차이를 발견하는 사람은 작은 변화에도 깊은 만족을 느낀다.

 

결국 삶의 만족도는 ‘얼마나 새로운 것을 경험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경험했는가’에 달려 있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요구한다. 새로운 콘텐츠, 새로운 기술, 새로운 경험이 쏟아진다. 우리는 마치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야만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처럼 느낀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 속에서 오히려 더 쉽게 피로해진다. 끊임없이 새로움을 쫓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같은 것을 새롭게 느끼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외부에 의존하지 않는다. 일상의 반복 속에서도 충분히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적응이 아니라, 세계를 대하는 능동적인 해석이다.

 

우리는 모두 제한된 조건 속에서 살아간다. 시간도, 공간도, 선택도 무한하지 않다. 그렇다면 그 안에서 최대한의 의미를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인식의 문제로 귀결된다.

 

같은 하루를 살면서도 누군가는 지루함을 느끼고, 누군가는 충만함을 느낀다. 그 차이는 외부 환경이 아니라 내부의 시선에서 비롯된다.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이 된다.

 

우리는 흔히 ‘특별한 삶’을 꿈꾼다. 그러나 특별함은 반드시 특별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일상적인 것 속에 숨어 있다. 다만 그것을 발견하는 눈이 필요할 뿐이다.

 

비슷한 것을 다른 것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반복은 더 이상 반복이 아니다. 그것은 매일 새롭게 펼쳐지는 경험이 된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깨닫게 된다. 삶은 단조롭게 보이더라도 단조롭게 살지 않을 수 있음을.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것들은 그대로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가 달라지는 순간 삶 전체가 달라진다.

 

그래서 비슷한 것도 다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내일도 우리는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길을 걸으며, 같은 일을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마음으로 그것을 바라보려고 노력한다면, 그 하루는 결코 어제와 같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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