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묵은 세무조사 관행 깨고, AI로 미래 준비하는 국세청의 변신
임광현 국세청장이 지난달 30일 취임 100일을 맞았다. 지난 7월23일 민생을 살피는 국회의원에서 국세행정을 책임지는 국세청장으로 변신한 지 벌써 100일. “공정하고 합리적인, 미래를 준비하는 국세청”을 만들겠다는 포부에 맞게, 임 청장의 행보는 발 빠르고 실용적이었다.
#60년간 이어진 낡은 세무조사 관행 과감히 버려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세무조사 방식의 대변신이다. 60년 넘게 이어진 ‘현장 상주식’ 세무조사를 확 바꿔버렸다. 세무공무원들이 회사에 며칠씩 눌러앉아서 세무조사를 진행하던 모습은 이제 옛날이야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임 청장은 지난 9월30일 중소기업중앙회를 찾아가 “그간 세무공무원이 기업에 몇 주씩, 때로는 몇 달씩 머무르며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기업은 인터뷰, 자료제출 요구에 대응하느라 정작 회사 본연의 업무는 뒷전으로 밀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하며, “이제 세무조사는 서면이나 전화로 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짧게만 방문하겠다”고 선언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세무조사 기간 내내 조마조마했던 스트레스가 확 줄어들 전망이다.
#국세행정 모든 프로세스 AI 대전환
“AI 시대에 국세청이 뒤처질 순 없죠.” 임 청장의 생각은 명확했다. 취임하자마자 ‘미래혁신 추진단’을 꾸려 AI 대전환에 속도를 냈다. 단순히 유행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진짜 써먹을 수 있는 AI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게 핵심이다.
계획을 들어보니 꽤 구체적이다. 개인별 맞춤형 AI 세무컨설팅, AI 탈세적발, AI 체납관리까지 국세행정의 모든 프로세스를 혁신해 2028년부터 본격 가동할 예정이다. 임 청장은 “방대한 세무 데이터를 AI와 결합하면 납세자들이 세금을 신고하는 모든 과정을 도울 수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호우피해지역·소상공인 등 시간 날때마다 민생현장 챙겨
취임 직후인 7월24~25일 연이틀 집중호우 피해지역인 충남 예산과 경남 산청을 직접 찾아간 것도 인상적이었다. 특별재난지역 세무서에 전용지원창구를 만들고, 납부기한을 연장해주는 등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뿐만 아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현장을 찾아 납세자들의 고충을 직접 듣고 있다. 8월에 소상공인연합회와 간담회를 갖고 영세자영업자에 국세 신용카드납부 수수료를 대폭 인하했다. 9월에는 배달라이더 단체를 만나 147만명에게 총 1천985억원의 환급금을 안내했다. 최근에는 AI업계와 간담회를 진행하고 AI 중소기업 약 4천800곳에 대해선 아예 정기 세무조사를 면제하거나 최대 2년간 유예하기로 했다.
‘국민 삶의 현장을 지키는 국세청’. 임 청장이 강조하는 키워드다.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현장을 뛰어다니며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이 눈에 띈다.
#국세체납관리단 출범 "현장을 발로 뛴다"
작년말 기준으로 국세 체납액이 무려 110조원.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임 청장은 이 문제를 정면 돌파하기로 했다. “체납정리의 왕도는 현장을 발로 뛰는 것”이라며, ‘국세체납관리단’ 조직을 새로 만들어 체납자를 전면 재분류하기로 했다. 생계 곤란형 체납자는 복지서비스를 연계해 재기를 지원하는 한편, 악의적 체납자에 대해서는 징수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체납관리를 새롭게 바꿔보겠다는 생각이다.
내년 본격 출범을 앞둔 ‘국세체납관리단’은 지난 9월 시범운영을 실시했다. 운영 과정에서 발생할 문제점을 미리 확인하겠다는 것인데, 교통사고로 두 눈을 실명한 뒤 사회활동이 불가능해진 체납자의 생활실태를 확인하고 관할 지자체에 긴급복지가 이뤄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임 청장 스스로 “국세청 개청 이래 최초의 담대한 프로젝트”라고 표현할 만큼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임 청장의 의지처럼 누적 체납액도 획기적 축소의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주식시장 불공정·외국인 부동산 투기·한강벨트 "필요한 분야에 적시 세무조사"
임 청장은 과거 코로나19 기간 중 마스크 폭리 조사와 법인명의 슈퍼카 조사를 이끌며 ‘기획조사의 달인’으로 불렸다. 임 청장 취임 후에는 이러한 명성답게 각종 이슈에 대한 국세청의 대응도 유달리 날카로워졌다는 평가다.
취임 일주일만인 지난 7월29일 주식시장 불공정 탈세 행위에 빠르게 세무조사를 단행한 데 이어, 8월에 부동산 시장을 흔드는 외국인 부동산 투기혐의자 조사를 실시하고, 10월에는 ‘한강벨트’ 초고가주택의 거래 과정도 집중 검증했다. 필요한 시기와 분야를 예리하게 포착해 세무조사에 착수함으로써 시장에 “탈세는 어림도 없다”라는 확실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직원보호 전담 변호팀' 출범 "악성민원으로부터 직원 보호"
임 청장은 과거 차장으로서 국세청을 떠날 때 악성 민원으로 힘들어하는 직원들을 위해 조직이 해결해주는 시스템을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했다. 그런 그가 국세청으로 복귀하자마자 추진한 일이 바로 ‘직원보호 전담 변호팀’ 출범이었다. 이달부터 운영을 시작한다고 하니, 이제는 직원들의 고통도 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격무부서 직원들에 대한 처우개선에도 각별히 신경쓰고 있다. 부과・징수・송무 분야가 대표적인데 포상을 대폭 강화한다고 한다. 특히, 악성민원을 직접 상대하는 직원들에 대해서는 발탁승진 등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구상하고 있다. “정말 일할 맛 나는 국세청을 한번 만들어 보겠다”는 청장의 의지가 묻어나는 대목이다.
임 청장은 지난 3일 관서장 회의를 통해 ‘세계 최고의 AI 국세행정 실현’을 향후 목표로 내걸었다. 거창해 보이지만,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충분히 가능성 있어 보인다. 국세청 관계자는 “임 청장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 국세행정 전반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전했다.
취임 100일, 임광현 국세청장의 성적표는 ‘진행 중’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속도와 방향성을 보면,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건 사실이다. 임 청장의 혁신 아래 내년 개청 60년을 맞이하는 국세청이 어떤 미래를 그려 나갈지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