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수소 등 최신기술, 신성장 기술에 포함 안돼…중국, 신기술 폭넓게 인정해 지원
가업상속시 7년간 업종유지 못하면 공제 불가…우리나라만 업종변경 제한
현장 의견수렴⋅소통 강화 급선무
반도체부품 제조기업인 A사. 연산과 저장기능을 갖춰 AI 핵심기술로 각광받는 지능형반도체 PIM을 개발 중이지만, 정부에서 지정한 신성장기술이 아니어서 일반 R&D공제를 받고 있다.
자동차부품 제조기업 C사. 제품경쟁력 강화를 위해 특허 등 독점기술을 가진 계열사 부품을 구매하고 있는데, 공정거래법상으로는 효율성 증대 효과를 인정받는 반면 과세당국에서는 일감몰아주기로 봐 증여세를 부과해 혼란스럽다.
국내 조세제도 중 기업현장과 괴리돼 주요국에 비해 활용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경영환경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336개 기업(대기업 110개, 중소기업 226개)을 대상으로 ‘기업현장에 맞지 않는 조세제도 현황’을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기업현장과 괴리된 10대 조세제도’를 15일 소개했다.
기업들은 우선 조세제도가 기술발전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한다고 답했다. 응답기업의 81.3%가 신성장 기술이 시행령에 즉시 반영되지 않아 세제지원을 받지 못하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가령 탄소 중립을 위한 수소경제로의 전환이 필요한데 그린수소와 같은 수소 신기술은 아직 신성장 기술에 반영되지 않았다. 차세대 메모리반도체의 경우 신성장 기술로 세액공제 대상이지만, 차세대 메모리반도체 중에서도 최신 기술인 지능형 반도체는 이에 포함되지 않았다. 최신기술이 오히려 세제지원을 받지 못하는 역차별이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해외는 공제대상이 되는 신기술을 폭넓게 인정하고, R&D 활동에 대한 세제지원도 유연하게 적용하고 있다. 실례로 중국의 경우 ‘고도신기술산업’에 대한 R&D 우대지원 대상을 2015년 가능한 것만 나열하는 포지티브 방식에서 안 되는 것만 나열하고 그 외에는 모두 가능한 네거티브 방식으로 변경했다. 담배업, 부동산업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한 대부분의 산업기술이 모두 고도신기술로 인정된다.
또 일부의 편법을 막기 위한 칸막이식 조세지원이 제도 활용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는 경우도 지적됐다. 신성장 세액공제를 받으려면 신성장 R&D 전담인력이 있어야 하는데 중소기업의 경우 동일 인력이 신성장 R&D와 일반 R&D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아 활용하기 어렵다고 70.5% 기업이 지적했다.
반면 미국·캐나다 등의 경우 신성장 R&D 전담인력과 같은 요건을 두지 않고 실제 R&D 활동 여부를 검증해 해당 인력이 투입된 시간에 따라 연구개발비용을 산정하고 있다.
응답기업들은 활용하기 어려운 조세지원제도의 또 다른 예로 ▷경력단절여성 채용시 동일업종 경력자인 경우만 공제(72.3%) ▷신산업 인프라 구축 등 전국적 투자가 필요한 경우도 수도권 설비투자는 지원 제외(65.5%) ▷연구소를 보유한 기업에만 R&D 공제해 줘 연구소가 불필요한 서비스업 등에 불리(61.6%) 등을 함께 꼽았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세법상 규제로 불편을 겪고 있다고 호소한 기업들도 있었다.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증여세는 부의 편법적 이전을 방지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제도지만 외국에서도 유사한 입법례를 찾기 힘들다. 게다가 계열사의 관련 특허 보유 등으로 내부거래가 불가피한 경우에도 일감몰아주기 증여세가 부과되는데 이는 기업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응답한 기업이 72.9%에 달했다.
또한 가업상속공제의 경우 7년간 중분류 내에서 동일업종을 유지해야 하고, 가업용 자산의 80%를 유지해야 하는데, 응답기업의 64.3%는 이러한 요건들이 산업환경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데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기업인이 사회공헌 목적으로 보유주식의 일정비율 이상을 공익법인에 기부하는 경우 증여세 부과(66.1%) ▷배당을 임금이나 투자와 달리 사내유보와 동일시해 법인세 추가 과세(70.8%) ▷배기량 1천cc 초과시 업무용승용차로 인정되지 않아 세제상 불이익(69.9%) 등도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라는 비판이 나왔다.
기업들은 기업현장과 괴리되는 조세제도의 개선을 위한 과제로 ‘세법 관련 현장의견 수렴 및 소통 강화’(98.5%)가 가장 시급하다고 꼽았다.
이어 ‘경쟁국보다 불리한 조세제도 연구 및 정비’(95.2%), ‘제도는 유연하게 설계하되 탈세 등 처벌 강화’(93.8%), ‘세제지원 대상을 포지티브 방식에서 네거티브 방식으로 변경’(78.6%) 등이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