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사업자에게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최종 부과액을 당초 산정액보다 절반 이상 깎아줘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기본과징금을 일단 높게 산정한 뒤 법적 근거가 미약하거나 추상적인 기준을 적용해 대폭 감액해 주는 방식으로 과징금 제도를 운영해 온 탓이다.
감사원은 지난해 11~12월 공정위를 대상으로 공정거래업무 관리실태를 점검한 결과 이같은 내용을 비롯해 총 16건의 감사결과를 시행했다고 9일 밝혔다.
감사원에 따르면 공정위는 2012년 1월부터 2015년 7월까지 147개 사건(695개 사업자)에 대해 총 5조2,417억원의 기본과징금을 산정하고도 1~3차의 조정과정을 거쳐 55.7%(2조9,195억원)가 감면된 2조3,222억원만 실제로 부과했다.
'과징금 할인'이 빈번했던 배경에는 공정위의 부적절한 제도 운영이 있었다. 공정위의 기본과징금은 관련 매출액에 위반행위의 중대성 정도에 따른 부과기준율을 곱해서 산정토록 돼 있다. '매우 중대', '중대', '약한 중대' 등 중대성 정도에 따라 기본과징금 산정액에 최소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그러나 공정위는 입찰담합의 경우 무조건 매우 중대한 위반행위로 보는 등 공정거래법 위반행위를 덮어놓고 '매우 중대'로 평가하는 경향이 매우 강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이 조사한 과징금 사례 147개 사건의 659개 사업자 중 70.7%인 466개 사업자가 공정위로부터 매우 중대한 위반행위라는 판단을 받았다.
공정위는 또 일단 강하게 기본과징금을 매긴 후 시행령과 고시에서 정한 예외적인 감액 기준을 마구잡이로 적용해 과징금을 대폭 할인해 주는 일이 다반사였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시행령의 과징금 산정기준에 법률상으로는 있지도 않은 '현실적 부담능력'이나 '시장여건' 등을 감액사유로 집어넣었다. 이에 더해 과징금 고시에서는 '그 밖에 이에 준하는'이나 '이외의 사유' 같은 문구를 명시해 감액사유를 관대하게 적용시켰고 과징금의 50%를 초과해 감액할 수 있도록 하는 기준도 마련했다.
그 결과 법적인 참작 사유를 기반으로 과징금을 경감토록 하는 하는 1·2차 조정에서는 각각 578억원(1.1%) 증액이나 9,268억원(-17.5%) 감액만 이뤄졌던 반면 시행령과 고시의 예외기준이 적용되는 3차 조정에서는 5조2,417억원의 기본과징금 가운데 33%인 1조7,305억원이 감액된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A건설은 과거 3년간 담합 위반횟수가 3회에 달해 1차 조정에서 과징금이 20% 가중됐지만 3차 조정에서는 현실적 부담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과징금의 90%에 달하는 626억원을 탕감받았다.
그나마 일관성도 없었다. 공정위는 건설기업경기 실사지수가 68.9였던 2014년 2월 건설경기가 위축된다는 이유로 21개 건설사에 과징금 10%를 감면해줬는데 지수가 101.3으로 건설경기가 현저히 개선된 지난해 7월에도 5개 건설사에 대해 똑같이 건설경기 위축을 이유로 10%를 깎아줬다.
또 공정위는 2013년 2월 자본금(8,811억원) 잠식상태에 빠진 B사에 대해 현실적 부담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과징금의 60%를 깎아준 뒤 2014년 2월 다른 사건에 엮인 B사에 대해 당시 자본금 잠식 규모가 535억원으로 줄어들었는데도 오히려 10%포인트 많은 70%를 감액해줬다.
동일한 사건에 대해 과징금 할인이 고무줄처럼 적용된 경우도 있었다. 공정위는 C사에 대해 전년도 당기순이익이 적자라는 이유로 과징금의 80%(42억원)를 깎아줬는데 같은 사건에 연루된 적자 기업 5개사에 대해서는 감액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사건 조사·처리 과정에서 심사보고서를 부당 작성해 과징금을 면제해준 사례도 적발됐다. 공정위는 2013년 부채비율 제한규정을 위반한 2개 지주회사에 대해 과징금 명령을 내리기로 하고도 정작 심사보고서에서는 누락시켜 위원회 심의도 없이 과징금을 면제해줬다.
감사원은 공정위원장에게 명확한 법적 근거와 구체적 산정기준이 적용되게 과징금 산정 제도 및 업무 운영 전반을 개선하라고 통보했다. 심사보고서 작성 업무를 부당 처리한 공정위 관계자 2명에 대해서는 징계를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