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내기 배우 강신일(56)과 한명구(56)가 추상 표현주의 시대의 절정을 보여준 화가 마크 로스코(1903~1970)에서 예술혼을 공통적으로 찾았다.
4번째 시즌에 돌입한 연극 '레드'에서 로스코를 연기하는 이들이다. 강신일은 2011년 초연, 2013년 재연에 이어 3년 만에 이 역으로 돌아왔다. 한명구는 3번째 시즌인 지난해 같은 역을 처음 맡았다.
강신일은 8일 오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미술에 대해서 문외한이던 내게 로스코라는 인물을 알게 해준 특별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로스코와 가상 인물인 조수 켄(Ken)의 대화로 구성된 2인극이다. 도도한 자의식에 사로잡혀 새로움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로스코는 구세대, 그의 편협하고 닫힌 사상을 당돌하게 지목하며 변화를 종용하는 켄은 신세대로 대표된다.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벌이는 치열한 논쟁은 아버지와 아들, 두 세대 간의 이야기를 대변하기도 한다.
강신일은 "예술가로서 철학적 깊이와 인간적인 성찰을 보여준 당대 미술계 거장을 연기한다는 것이 영광이다. 로스코 역을 한 이후로 일종의 내 연기 인생에 롤모델 같은 인물로 각인됐다"고 전했다.
스스로를 로스코처럼 생각한 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다만 "은연 중에 로스코가 고민하고 추구한 예술 세계가 무의식적으로 내 안에 쌓였다"는 것이다.
다시 연기하는 만큼 깊이가 달라졌다. 초연 때는 방대한 대사량을 어떻게 우리말로 편안하게 소화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했다면 이번에는 예술세계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는 얘기다.
"로스코라는 인물이 가장 매력적인 것은 70세가 돼서도 '레드'에 천착했던 예술 세계다. 그 나이 때까지 열정을 갖고 목표한 것을 이루려고 애쓴 열정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결국 그것에 도달하지 못하고 절망에 휩싸여 목숨을 끊게 됐지만 예술 세계의 광기가 대단하다. 기존에 했던 로스코보다 역동적이고 날 것 같의 로스코를 표현하고 싶다."
강신일의 로스코가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뽐낸다면 한명구의 로스코는 좀 더 거칠고 강렬하다. 그 역시 "지랄 맞은 작품이다. 배우에게 못 된 작품이다. 성취감이 있는데 힘들다"고 너스레를 떨며 험함을 드러냈다.
하지만 한명구 역시 강신일처럼 로스코의 예술세계에 빠져들었다. "미술사,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 철학가들이 등장해서 미술학도가 된 느낌이다. 작년에 '이 그림들을 다 알고, 이 대사를 해야 할 텐데'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져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지난해는 로스코를 연기했다기 보다는 그와 싸웠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레드'는 예술가의 삶을 보여주기보단 인간을 보여주는 것이다. 신념을 갖고 산 인물, 그게 본질이다. 이번에는 로스코에 진실하게 다가갔으면 한다"고 바랐다.
2009년 영국 런던의 돈마웨어하우스 프로덕션이 초연했다. 2010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로 건너가 제 64회 토니어워즈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 주요 6개 부문을 휩쓸었다.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2014)으로 오스카 남우 주연상을 받은 에디 레드메인이 켄 역으로 남우 조연상을 받기도 했다.
이번 시즌 켄은 작년에 이 역을 연기한 박정복이 맡는다. 뮤지컬배우 겸 크로스오버 가수 카이가 같은 역으로 연극에 데뷔했다. 7월10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3만5000~5만5000원. 신시컴퍼니.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