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 슈틸리케(62·독일) 축구대표팀 감독은 자칫 긴 시름에 빠질 뻔 했던 한국 축구에 엔도르핀을 돌게 한 준 인물이다.
그와 함께 한 2015년의 한국 축구는 아시안컵 준우승을 포함해 16승3무1패라는 호성적을 기록했다.
긴 여정에 대한 보상으로 받은 짧은 휴가 기간에도 슈틸리케 감독은 축구에 파묻혀 있다.
지금은 2016아시아축구연맹(AFC) U-23(23세 이하) 챔피언십이 열리는 카타르 도하로 날아와 올림픽대표팀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A대표팀 사령탑 중 직접 이 대회를 챙기는 이는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감독과 안제 포스테코글루 호주 감독 등 일부에 불과하다.
슈틸리케 감독의 등장은 그의 의지와는 별개로 어린 선수들의 쇼케이스라는 의미가 더해졌다. 국가대표팀 승선을 위해 직접 사령탑의 눈도장을 받는 것보다 빠른 방법은 없다.
슈틸리케 감독이 U-23 선수들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간단하다. 당장은 쉽지 않더라도 최종 목표로 잡고 있는 내후년 러시아월드컵에서는 이들 중 일부가 A대표팀의 주축 역할을 담당할 수도 있다.
단연 두각을 나타낸 선수는 황희찬(20·잘츠부르크)이다. 막내답지 않은 과감함과 빠른 돌파는 공격수가 득점 없이도 팀에 공헌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했다.
카타르와의 4강전에서는 발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후반 추가 시간 수비수 3명을 제치는 드리블로 문창진(23·포항)의 쐐기골을 도왔다. 슈틸리케 감독은 관중석에서 이 장면을 지켜봤다.
문창진도 눈도장을 찍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프로 5년차인 문창진은 2014년 24경기에 나서 2골2도움으로 잠재력을 입증했다. 지난해에는 부상으로 11경기 출장에 그쳤지만 4골2도움으로 오히려 공격 포인트는 늘었다.
이번 대회 활약은 한국 공격진 중 가장 빼어나다. 4골로 권창훈(22·수원)과 함께 팀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었다. 후반 교체로 등장한 카타르전에서는 "사고 쳐봐라"는 신태용(46) 감독의 주문을 완벽히 수행했다.
이미 슈틸리케호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굳힌 권창훈은 이번 대회를 통해 다시 한 번 '슈심(心)'을 사로잡았다. 이재성(24·전북)과 더불어 지난해 한국 축구가 발굴한 최고의 재능으로 꼽히는 그는 부상에도 4골로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슈틸리케호는 오는 3월 레바논, 쿠웨이트와 월드컵 2차예선전을 갖는다. 이미 최종예선행을 확정한 가운데 테스트를 위한 새 얼굴들을 불러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슈틸리케 감독이 어떤 인상을 받았느냐에 따라 이번 대회에서 활약한 이들 중 몇몇에게 기회가 돌아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