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2월 21일, 국세청 발족 26년 국세청장 여덟 번 째 만에 정통 국세청 출신 국세청장이 탄생했다.
전임 서영택 청장은 국세청에서 재무부에 갔다가 재무부 차관보에서 국세청장으로 왔기 때문에 '순수 국세청혈통'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국세청 출범 이후 줄 곳 청장만은 외부인에게 빼앗기는 바람에 '국세청장은 권력 시녀들의 전유물이다'는 비판 속에 자존심 손상은 물론 '국욕감' 까지 되씹고 있던 국세청은 한마디로 온통 경사분위기 휩싸였다. 특히 오랜 동거동락으로 추경석 청장의 진면목을 잘 알기에 국세청 내부의 기쁨은 더 증폭됐다.
1966년 국세청이 발족되기 이전인 재무부 사세국(사세청) 시절 말단 국세공무원으로 출발, 국세청에서 잔뼈가 자란 추경석 국세청장 시대 개막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세정가와 정 관계는 물론 경제계에 던지는 메시지가 컷 던 것이다.
이는 '세정전문인 청장시대 개막'이라는 상징적인 의미와 함께, 인간 추경석에 대한 '인간승리' '입지전적 인물' 등 많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전문인 청장'에 대한 기대감이기도 했다.
추경석 제 8대 국세청장은 취임 이틀만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부의 세금 없는 세습을 철저히 차단 하겠다'면서, 대재산가들의 변칙적인 재산상속이나 증여행위에 대한 강력한 세무조사를 천명했다.
추경석 국세청장의 이 기자회견은 많은 파장을 일으켰다. 바로 기업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부의 부당한 세습방지'를 '세정달인' 국세청장이 취임 일성으로 언급했기 때문이다. 급기야 명동 사채시장까지 얼어붙었다. 정부의 숱한 엄포에도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사채시장이 이처럼 긴장한 것은 추경석 국세청장의 면면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국세행정을 손바닥 들여다 보듯 훤히 꿰뚫고 있는 국세청장이 언급하는 '부의 부당한 세습 차단'은 여느 국세청장 말 보다 당사자들에게는 무게 있는 압박이었던 것이다. 특히 추경석 청장은 국세청 조사국장을 3년 반이나 역임한 '조사통'인 데다, 조사국장 시절 정밀한 세무조사를 지향하면서 국세청 조사기법을 크게 향상 킨 장본인이다. 또 명쾌한 조사관리와 빈틈 없는 처신으로 이미 '걸리면 간다'는 정평이 세간에 나 있었던 것도 대기업들을 잔뜩 움추러들게 만든 이유 중 하나다. 국세청장 기자회견 후 경제단체들이 '국세청장 초청 간담회'를 서둘러 요청 했으나, 추경석 청장이 '좀 더 있다' 라는 꼬리표를 붙여 사양하므로써 대기업들이 더 움찔했다는 일화도 있다.
추경석 국세청장은 취임 20일만인 1992년1월 11일 대대적인 과장급 인사이동을 단행했다. 분위기 쇄신과 더불어 평소 추 청장 자신이 눈여겨 봐뒀던 '일꾼'들을 제대로 써 먹기 위한 포석이었는데, 그 때 국세청 과장급 73%가 자리를 옮겼다.
곧 이어 1월 27일 개최 된 새해 첫 전국세무관서장 회의에서 추 청장은 역시 변칙적인 부의 세습을 철저히 차단할 것을 다시 천명했다. 그로부터 한달 여 뒤 상속세 탈루 혐의가 있는 납세자 명단을 광화문세무서와 북인천세무서에서 각각 발표했다.
변칙적인 부의 세습에 대한 국세청 의지가 계속 확고하다는 경각심과 전국세무관서의 분발을 촉구하는 의미가 담긴 것이다.
그 해 7월은 국세공무원에겐 전대미문의 획기적인 일이 생긴다. 바로 직원들의 명칭이 '주사'에서 '조사관'으로 바뀐 것이다. 직원 사기진작과 후생복리에 남 다른 의지를 가지고 있던 추경석 청장은 직원 호칭부터 바꾸는 게 급선무라는 것을 오래전 부터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던 것 같다는게 그를 보좌했던 사람들의 전언이다. 거기에는 추 청장의 개인적인 신념도 상당부분 작용했을 것으로 보는 이도 있다. 즉 추경석 청장 선친이 독립 항일투사(고 추규영 옹=대통령표창·훈장추서) 였다는 점에서 왜정식 직원 호칭에 대한 거부감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직원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폭발적인 호평이었다. '주사'는 주로 하급공무원에게 붙여진 호칭이며, 면서기(面書記) 또는 서생(庶生)들이 상대방을 허물없게 부를 때 곧잘 쓰였지만 직원들은 별로 탐탁하게 생각지 않던 참에 '조사관'이라는 호칭이 부여 되자 쌍수를 들어 반긴 것이다.
당시 국세청 인사계장 박찬훈 전 서초세무서장은 "직원들이 '조사관'이라고 부르니까 어깨가 으쓱해지는 표정들이었다"면서 "명칭변경 이후 자부심과 책임감이 더 강해졌다고 말하는 직원들이 많았다"고 기억했다. <계속>
<서채규 주간> seo@taxtime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