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년여간 적발된 건강보험 명의도용 건수가 17만여건에 이르고 있는 가운데 끊이지 않는 건강보험 명의도용이 향정신성의약품을 타인 명의로 다량 처방받아 환각제로 쓰는 범죄로 이어지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자부터 타인 명의로 제한약물을 상습 투약한 이들, 진료기록을 조작해 불법처방을 한 의사까지 범행 전 과정에 연루된 이들이 줄줄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노원경찰서는 마약류 의약품을 상습적으로 투약한 우모(38)씨와 이모(35·여)씨, 이들에게 타인의 개인정보를 넘긴 임모(37)씨, 의료기록을 조작해 이들에게 제한량 이상의 약품을 처방해준 의사 박모(64)씨를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1일 밝혔다.
우씨는 타인의 명의를 도용해 2013년 1월부터 지난 2월까지 노원구 일대 병·의원에서 불면증이 있다며 졸피뎀 성분의 약을 총 32회에 걸쳐 약 960정 처방 받아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다. 우씨의 연인인 이씨도 같은 기간, 같은 수법으로 총 26회에 걸쳐 약 780정을 구해 투약했다. 이들은 하루 5~10정까지 약을 먹었다.
졸피뎀은 중독 의존성이 있어 하루 2정 이상 장기간 복용시 정신이 몽롱해지고 기억상실과 어지럼증, 환각 증상이 생길 수 있는 향정신성의약품이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은 상습적으로 마약류를 투약하는 등 동종전과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우씨는 약에 취한 채 운전을 하다 음주운전 단속을 하던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당시 우씨는 집에서 자고 있던 것으로 기억할 뿐 운전에 대한 기억은 없다고 진술했다.
이들은 투약량을 제한한 '중복처방' 제도로 인해 더이상 자신들의 명의로 원하는 약을 처방받을 수 없게 되자 타인의 개인정보를 도용해 약을 처방받았다고 경찰은 전했다.
중복처방 제도는 병의원과 약국의 시스템이 연동돼 향정신성의약품의 과다 처방을 막는 국민보험공단의 제도다.
이들이 약을 처방받기 위해 도용한 개인정보는 이씨의 교회 지인 임씨로부터 나왔다.
경찰에 따르면 임씨는 2013년 1월 인터넷신문사 기자로 일하면서 회사 신입사원 채용과정에서 알게 된 10명의 주민등록번호를 우씨 커플에게 넘겨줬다. 임씨는 이후 이들이 추가로 다른 명의를 요구하자 한 명의 개인정보를 더 주기도 했다.
이들이 타인 행세를 하면서 다량의 졸피뎀을 처방받을 수 있는 데는 의사도 한몫했다.
노원구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내과의사 박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1월까지 우씨와 이씨의 처방전과 진료기록부를 기재하지 않거나 허위로 작성하는 수법으로 총 9차례에 걸쳐 사전자기록을 조작해 이들에게 졸피뎀 성분의 약을 처방해준 혐의를 받고 있다.
박씨는 하루 28정까지만 처방할 수 있는 약품을 급여와 비급여 처방전으로 각각 처방해 약 60정을 처방해주는 등 규정을 어겨 처방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박씨는 진료기록부를 기재하지 않고 향정신성의약품을 처방해 의료법 및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형사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은 또 수사과정에서 박씨의 병원에 비치된 처방전을 훔쳐 마약류 의약품을 처방 받으려 한 한모(33·여)씨도 적발해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한씨는 훔친 처방전 종이에 직접 자필로 의약품명을 써넣고 자신의 도장을 흐리게 찍어 의사의 것으로 보이게 했지만 이를 수상히 여긴 약사의 신고로 덜미가 잡혔다. 한씨는 경찰 조사에서 지난달부터 최근까지 졸피뎀 성분이 함유된 약을 총 2회에 걸쳐 56정 가량 투약했다고 자백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은 타인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마약류 처방을 받아도 별다른 제재 없이 처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악용했다"며 "졸피뎀 상습 투약자 및 병원 등을 상대로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