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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5.21. (수)

내국세

[연재]"임채주 청장, 정말 시골로 가도 괜찮겠나"

- '나는 평생 세금쟁이' -(34)

 ‘난 운수가 70%, 실력은 30%’

 

 

 

“드디어 나도 세무서장이 됐네”

 


96년은 나에게 또 하나의 큰 행운을 가져다 준 한해였다. 만 50세로서 세금쟁이 노릇해 온지 30년이 되는 해였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서기관 자리에 오른 것이다.

 

비록 몇개월간의 복수직 서기관 자리에 있었지만 그 해 7월에 세무서장으로 나가게 되었으니 정말 의미있는 한해였다. 

 

약관 20세 나이에 최말단 9급에서 출발하여 8급, 7급, 6급, 5급 사무관을 거쳐 무려 다섯단계를 차례차례 숨가쁘게 뛰어 올라왔다.
정말 운좋게 달려왔다. 지금 고백하지만 이것은 절대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100% 보살핌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렇게 국세청 핵심 간부로 올라서게 된 개인적인 원동력이 있었다면 한마디로 그것은 “예! 해보겠습니다”라는 말과 끝까지 해보겠다는 끈질긴 근성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설사 내 자신이 그렇더라도 남다른 행운이 없이는 절대로 안될 일이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을 스스로 행운아라고 생각하고 퍽이나 만족했다. 무엇보다 남들이 그렇게 부러워하는 국세청 조사1국조사1과1계장 자리에서 서기관으로 승진했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할 정도로 내 모든 소원을 이룬 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정말 ‘운 7 기 3’(운수가 70%, 실력은 30%)의 인생이 아닌가 싶다. 참고로 그 때 본청 조사국에는 나보다 먼저 들어온 사무관도 있었는데, 그 분은 안타깝게도 근무 평점관리가 잘 되어 있지 않아 승진 배수에 들어가지 못하는 바람에 그 다음 순서였던 나에게 행운이 돌아온 것이었다.

 

이제 서기관 자리로 한단계 올랐으니 더욱 더 조직을 위해 헌신해야겠다는 각오가 생겼다. 그래서 밤낮없이 사무실 일에 매달렸다. 또 퇴근 후에는 대검찰청을 비롯한 관련 대외기관의 실무 간부들과의 만남을 통해 국세청 관련 정보를 수집해 윗분들에게 보고해서 조직에 문제가 없도록 했다. 그러면서 어떤 날에는 못 먹는 술도 마시게 됐다. 당시 직속상관인 조사국장이나 조사1과장께서는 체질상 전혀 술을 마시지 못하시다 보니 내가 대신 희생을 하게 됐던 것이다. 비록 그동안 우리 가문에 술 때문에 좋지 않았던 일들이 몇 차례 일어났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하여 어울리기 힘든 그들과 자주 어울리다 보니 서먹서먹했던 서로의 관계에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이렇게 내 자신이 사무실 일에만 열심하다 보니 집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다. 날이 갈수록 아내나 아들, 딸과의 관계가 점점 서먹서먹해지는 것이었다. 어떤 때에는 아예 하숙생이나 아니면 지나가는 나그네 취급도 받게 되었다.

 

그런 상태로 몇개월 가량이 흘러가고 있을 무렵, 명예퇴임하는 선배 세무서장들로 인해 세무서장 인사이동이 있었는데 나도 그 중에 끼게 된 것이다. 지금은 복수직 서기관 자리가 많아서 세무서장으로 나가는 데는 다소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그 당시에는 복수직 직제가 생긴지 얼마 안되어 숫자가 적다 보니 몇개월 만에 세무서장으로 나가기도 했다.

 

드디어 96년 7월초, 당시 임채주 국세청장께서 나를 부르셨다.

 

“조용근 서기관!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네, 이번 인사에서 세무서장으로 나가게 될 텐데, 시골이라도 괜찮겠나?”
“네! 물론 괜찮습니다. 어디든지 보내주시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그 다음날 또 부르셨다. 그리고 어제와 똑같은 말씀을 해 주셨다. 나도 똑같은 말씀을 드렸지만 ‘설마 진짜 산골짜기는 아니겠지?’라며 예측하고 있었는데 그 다음날 발령이 났는데 경북 ‘의성세무서장’이었다.

 

그 때 나는 생각했다. 국세청장께서 왜 두번씩이나 시골인데도 괜찮겠느냐고 말씀하셨는지를…. 참고로 당시 의성세무서는 경상북도 의성군과 군위군을 관할하고 있었는데 연간 세수 규모가 100억원밖에 되지 않는 전국에서 제일 적은 세무서 중 하나였다.

 

“정말 존경하는 임채주 청장님! 초임 사무관 시절부터 누구보다 저를 아껴 주셨고, 일도 많이 시켜주셨는데, 이렇게 세무서장으로 까지 보내주시니…. 그 은혜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오!”

 

그날 저녁에 필자는 사랑하는 식구들에게 자랑했다.
“얘들아! 드디어 나도 세무서장이 됐네.” 

 

<계속>-매주 水·金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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