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래(79) 효성 회장의 건강상 이유로 중단됐던 효성그룹 경영진들의 세금 탈루 혐의 재판이 수차례의 기일변경과 공판준비기일을 거쳐 두달여 만에 재개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판사 김종호)는 10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기소된 조 회장에 대한 9차 공판을 진행했다.
이는 지난 9월15일 8차 공판 이후 57일만의 심리 재개다.
앞서 조 회장은 심장 부정맥 증세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가 부정맥 재발치료를 위해 지난달 11일 미국으로 출국한 바 있다.
조 회장이 건강상 이유 및 이에 따른 출국으로 재판에 불출석하면서 이 사건 심리는 3차례의 기일변경과 2차례의 공판준비기일을 거치며 미뤄져 왔다.
두달여 만에 법정에 모습을 드러낸 조 회장은 검은 정장에 넥타이 차림으로 앉아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내내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조 회장 측 변호인은 이날 "조 회장이 미국 뉴저지 등에서 주치의로부터 검사와 치료를 받고 소견서를 발급 받았다"며 "(소견서는) 고령이고 암투병 중인 점과 최근 부정맥으로 인해 위급상황이 있었던 점에 미뤄 재판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변호인은 이어 "조 회장의 지금 건강상태로는 매주 재판을 감당하기 어렵다"며 "재판 일정을 가급적 늦춰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당초 주1회 재판으로 이 사건 심리를 신속히 진행한다는 방침이었지만 조 회장 측 요청에 따라 심리 진행방향을 다시 논의키로 했다.
한편 이날 공판에는 효성그룹의 금고지기로 알려진 고모 상무와 함께 조 회장의 실·차명주식을 관리해온 효성그룹 종합조정실 기획팀 이모(54) 상무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 상무는 이날 증인신문에서 외국 페이퍼컴퍼니 및 지인들의 명의로 된 화학섬유 제조업체 '카프로'의 차명주식을 보안유지 가능성에 따라 A~E 등급으로 나눠 관리했다고 증언했다.
이 상무는 "등급 분류에는 제가 관여하지 않았고 고 상무가 구분해 관리했다"고 진술했다.
증언에 따르면 이 상무와 고 상무는 차명주주들의 협조정도를 분석해 등급별로 차명주식을 분류하고 이를 토대로 차명계좌의 활용방안을 계획·실행했다.
고 상무가 정리한 '카프로 주주현황 2012' 문서에는 카프로 주식을 보유한 개인 차명주주로 이 상무가 직접 모집한 지인이나 전 효성 직원의 친인척,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스포츠팀 코치, 조 회장의 고등학교 동창 등이 등재돼 있다.
조 회장은 이들 차명주식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고 상무와 이 상무에게 주식매도 시점과 가격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직접 지시하기도 한 것으로 진술을 통해 드러났다.
이 상무는 "제가 주로 매수시점이나 매수가격대를 건의하면 (조 회장이) 대체로 수긍하는 식으로 (주식 매매가) 진행됐다"고 말했다.
한편 이 상무는 사정당국 조사를 피하기 위해 고 상무와 의논해 차명주식 관련 서류를 은닉한 정황도 털어놨다.
이 상무는 "차명주주들의 도장 등을 고 상무가 개인적으로 보관하다 (효성그룹이) 국세청과 금감원, 검찰의 수사 타깃이 되고 있다는 소문이 돌자 이 상무의 차량 트렁크에 옮겨 보관한 게 맞느냐"는 검찰 측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조 회장은 2003년부터 10여년에 걸여 8900억원대의 분식회계를 통해 법인세 1200억여원을 포탈한 혐의로 기소됐다.
2007~2008년에는 ㈜효성의 회계처리를 조작해 주주 배당금 500억원을 불법취득한 혐의도 있다.
화학섬유 제조업체인 '카프로'의 주식을 임직원이나 해외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취득해 1300억원대의 양도차익을 거둔 혐의도 받고 있다.
조 회장은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지병인 고혈압과 심장부정맥이 악화돼 병원 신세를 진 바 있다.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후에는 2010년 수술했던 담낭암이 전립선암으로 전이돼 암치료차 입퇴원과 해외 출국을 반복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