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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5.23. (금)

내국세

(73)'관료가 바뀌어야 나라가 바로선다'

허명환 著(前행정자치부 서기관)

사슴의 주민등록
-야생동물도 살 권리가 있다-

 

내가 살던 시라큐스(Syracuse)근처에 그린 레이크(Green lake) 라고 진짜 물빛이 연초록색인 맑디맑은 호수가 하나 있다. 이 호수 지역은 주정부가 관리하는 공원인데, 그 안에는 골프장도 있어 주정부의 주요 수입원이 되고 있다. 이 골프장 후반 12번 홀에 가면 거의 언제나 좌측 숲쪽에서 일단의 사슴가족이 나와 우리가 공치는 것을 보곤 한다.

 

처음에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공을 치다 사슴이 나와 있는 것을 보고는 “와, 사슴이네”라면서 신기하게 구경을 했는데, 그것도 자주 보게 되자 ‘아니 이거, 누가 누구를 구경하는겨 ? ’하는 의문이 들었다.

 

15번홀에 이르면 이번에는 한 무리의 토끼 가족들이 귀를 쫑긋쫑긋 아장거리며 역시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갈 때마다 이들을 그곳에서 보게 되니 문득 나만이 신선한 공기와 햇빛을 즐기고, 한가로이 노니는 사슴, 토끼를 구경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은 인간만의 오만한 사고방식의 결과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일찌감치 저녁을 마친 사슴이나 토끼 가족들이 마실을 나와 인간이 작대기를 휘두르며 조그마한 공을 치는 것을 신기한 듯 구경한다고 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오늘도 태양은 뜨고 지고, 끝없이 광활한 대지는 삼라만상을 품어 안고 영겁의 세월을 그저 홀러 간다고 할 때, 그중 인간만 유독 별스런 존재가 아닌 것은 아닐까

 

불교라는 것이 최근에야 미국인들한테 약간씩 퍼져 가고 있을뿐이지만, 이들이 자연을 대하고 짐승을 대하는 사고방식은 불교의 윤회나 살생을 금하는 사상과 유사한 점이 많다고 느꼈다.

 

불구자든 아니든 인간이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과 똑같이 사슴이나 노루, 토끼 등 온갖 짐승들도 똑같이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결과 고속도로에는 사슴 그림을 그려 야생동물 보호구간임을 알려 운전자를 보호함과 동시에 동물도 보호하고 있다. 우연히 사슴이 자동차 전조등을 보고 뛰어 들어와 차에 부딪쳐 죽어도 인명사고와 똑같이 경찰에 신고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 집 주위에도 사슴이나 토끼가 곧잘 산책 나오거나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데, 아이들이 이들에게 해코지를 못하게 해야 한다. 동물학대죄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일부러 이들 야생동물들에게 먹이를 주지 말도록 되어있다. 왜냐하면 야생동물들이 인간에게 먹이를 얻어먹는 버릇이 들게 되면 결국 인간을 해코지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에서 야생곰에게 관광객들이 자꾸만 먹이를 주다 보니, 이에 길들여진 한 흑곰이 한 소년의 배낭을 뒤져 먹이를 찾아 먹고자 그 소년을 해친 사건이 있어 결국 그 흑곰을 사살한 사례가 있었다. 여타 관광객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음이다.

 

하여튼 노는 땅을 없앱시다라며 뭐든 활용 하려는 우리네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렵겠지만, 미국인들은 인간이 아무리 욕심을 부려도 온 땅을 차지하고 살 수는 없기에 그 나머지는 짐승들이 살게 내버려 두는 것이다.

 

그러니 그 골프장의 사슴과 토끼도 인간식으로 하면 자기들이 일정하게 사는 주소지가 있는 셈인 것이다. 다른 골프장에 가 보아도 일정 지역에 가면 꼭 보이는 짐승들이 있다.

 

이에 비교하면 우리는 철저한 인간 본위 내지 우위의 사고방식이라 뭐든 짐승이 보이기만 하면 ‘잡아먹자! '하는 생각이 떠오르는 것 같다

 

작년 겨울 폭설이 내려 산짐승들이 먹을 것을 구하러 인가에 내려왔다. 오히려 인간들 술안주가 되어버린 사례가 보도된 적이 있었다.

 

워낙 굶다 살아서 그런지, 여유가 없어 그런지, 몬도가네식이라 그런지, 하여튼 미국 사람들과는 극히 대비되는 동물관으로 우리네 그런 행동을 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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