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과 방침 사이
-되는 것은 되고 안되는 것은 안된다-
한번은 인디언 중에서도 호전적이기로 유명했던 수(Sioux)족이 살았다는 사우스 다코타(South Dakota)주 시우 폴스(Sioux Falls)라는 도시에 기름을 넣으려고 한 주유소(gas station)에 들른 적이 있었다.
지루한 여행길에 기름을 넣으려고 잠시 주차하다 보면 애들도 폴짝폴짝 뛰어나와 사탕이니 껌이니 군것질 거리를 사곤 한다. 그러다 보니 주유기에서 신용카드로 계산하는 대신 가게 안에서 계산하게 된다.
계산을 하려고 보니 마침 현금이 별로 남지를 않아 여행자수표(TC, Traveller's check)를 제시하였더니 접수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여행자수표는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통용되는 아주 편리한 화폐수단인데, 이 무슨 소리인가 싶어 다시 여권을 같이 보여 주었다.
미국에서는 우리처럼 주민등록증이라는 제도가 없는 대신 통상 증명이 필요할 때에는 면허증을 요구한다. 효력으로 따지자면 미국에서는 면허증이 어디 허름한 나라의 여권보다 우선하는 것이다.
마침 면허증은 사연이 있어 제시할 수가 없어 여권을 제시하였는데, 그래도 접수 못하겠단다. 이건 정말 괴이한 일이라 따질 수 밖에 없었다.
여행자수표만 해도 미국 천지 어디에 가도 문제가 없거늘 여권까지 추가로 제시했는데도 왜 안되느냐고 했더니, 이 직원 왈, "Tliat is my policy."
우리야 통상 폴리시(Policy)라 하면 정책이라는 거창한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이런 경우처럼 개인이나 기업, 가게의 경영방침 혹은 지침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더 많다.
나쁘게 이야기하자면 x고집이라 할 수 있을 게다.
일단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지가 얼마나 잘났던 그 폴리시를 바꿀 생각은 말아야 한다. 수용을 하던 거부를 하던 그 폴리시는 바뀔 수 없는 것으로 인정하고 자기의 처신을 결정해야 한다.
그 소리에 별수 없이 현금을 주고 나왔는데, 나오면서 “에라이 ~ 시골 촌x 들아, 잘 먹고 잘 살아라”해 줬다 참말로 주변머리나 융통성이 없는 시골 X고집쟁이들인 것이었다.
그 경우는 여행자수표와 관련하여 상식에 어긋나는 경우라 그랬던 것이지만 다른 경우, 예컨대 개인수표(Personal check) 사용시에 여권은 안 되고 면허증만 요구하는 것을 폴리시로 하는 가게도 많이 있어, 이런 경우는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 그게 미국에서는 하나의 보편화된 상거래 관습이니까 말이다.
그 폴리시를 전하는 직원도 통상 회사방침이 그러니까 그러는 것이라, 그 직원 붙들고 그 폴리시가 옳거니 그르거니 사리를 따져 봤자 영어 연습밖엔 안 된다.
실컷 내딴에는 조리껏 따진다고 이야기해 보았자, 이 직원은 멀뚱하니 나를 쳐다보고는 “뭐, 제가 따로 도와드릴 일은 없으시온지와요”라고 무지하게 공손하게 되묻는다.
내심으로는 ‘별 쓸데없는 소리랑 거둬 치우고 하든 말든 빨랑 결정해 버려 ! 시간만 허비하네 이 사람아! ' 하겠지 ?
어휴 ! 냅다 한방 먹였으면 속이야 시원하겠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라 “알았시다. 다음에 또 오리다”하고는 그 가게를 나오게 된다.
하지만 미국 사람들의 이런 행동양식을 이해한다면, 반대로 무지 편하게 거래할 수 있다. 상대방 폴리시대로만 해주면 그 외의 어떤 일이라도 묻거나, 거부사유로 이용하지 않는 것이다.
서로간의 자유의사를 최대한 존중하며, 되는 것은 되고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합리주의가 배어있는 행동양식이라는 것을 알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