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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5.23. (금)

내국세

[연재]격동기 국세청 30년, 담담히 꺼내본 일기장(14)

‘○○소주를 조심해라’…국회의원 공천에도 활용

○○소주 관리가 서장의 주된 업무
 

 

이리세무서장으로서 나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소주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였다.
 이리서장으로 발령나자마자 제일 먼저 내가 들은 말은 ‘○○를 조심해라. 지금까지 역대 서장들과 직원들 킬러였다. 무조건 접근을 하지 않은 것이 상책이다’라는 것이었다.

 나는 부임하자마자 ○○소주와 관련된 세금을 체납분, 소송계류분, 주세 납기연장 및 징수유예분으로 나누어 현황을 정리하고 회사가 세무서장에게 요청하는 사항은 무엇인지를 파악했다. 그동안 세무서는 회사와 일체의 대화를 하지 않고 평행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회사측의 요구는 세무서가 압류해 놓고 있는 전국 주요 요지의 부동산을 풀어주면 주거래은행(서울신탁은행)에 담보로 제공해 추가 대출을 받아 급한 운영자금으로 쓰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소주가 부도가 날 경우, 즉 최악의 경우에 앞에서 말한 세금의 보전 방법이 있는가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문제되는 모든 세금이 다른 채권들 보다 우선권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압류해제를 하더라도 동 부동산이 주세 담보로 제공되어 세무서 명의로 근저당이 설정되어 있음을 알았다. 나는 ○○소주의 압류 부동산을 회사가 해제를 요구하지 아니한 것까지 포함하여 전국에 산재해 있는 모든 부동산에 대한 압류를 해제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 대신 조건을 걸었다. 연내로 현금으로 일부납부, 토지수용보상금 수령시 전액 납부, 세무서장 동의없는 부동산 매각은 무효라는 공증을 확약받았다.
나는 이 문제가 잘못된 경우 최종적인 법적 책임이 세무서장에게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결단하였다.

‘○○소주 체납세금현황 및 대책’이라는 보고서를 만들어 지방청 최용관 징세심사국장(후에 경인지방청장 역임)께 보고하고 이영상 지방청장께 보고하려 하자 청장께서는 보고를 안 받겠노라고 하였다.
 나는 그대로 세무서로 돌아와 안무혁 국세청장께 보고하기로 결심하고 상경해 본청 김용진 징세국장(후에 과학기술부장관 역임)께 취지를 간략히 말씀하고 보고서를 맡기고 내려왔다.

 


 

안무혁 국세청장은 수시로 기업인들의 성실납세를 독려했다. 따라서 기업인들과의 간담회를 자주 가졌다. 85년 12월11일 열린 전경련과의 간담회에서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회장<앞 우측>과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앞 좌측 안무혁 국세청장><세정신문 DB>

 


 ‘서장책임’서명 해야 움직이는 직원들

 

 

 

 그리고 나는 압류 부동산 해제조치를 지시했다. 과장 이하 관계되는 직원들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추후 감사시 문책이 두려웠던 것이다. 나는 회사가 보내온 공문서 빈칸에 ‘서장 지시사항’이라 적고 이 민원에 대한 이행 책임은 서장 자신이 직접 진다는 것을 명기하고 서명하여 내려보냈다. 그제서야 일이 진행되었다.

회사로서는 요구한 것은 30이었는데 100이 풀렸으니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었다. 누구보다 당시 ○○소주 사주 M某 의원(당시 여당인 민정당 국회의원)이 깜짝 놀랐다고 한다. ○○소주는 이후에도 매월 주세납기 연장에 따라 납기가 끝난 주세의 징세유예 요구 등으로 끊임없이 나와 신경전을 벌였다.

 86년 새해로 접어들자 나는 이리세무서를 떠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나중 감사 등에 대비코자 ‘○○소주 현황 및 대책’보고서를 정성들여 만들었다. 보고서가 너무 두꺼워 첫장에 ‘요약 및 총평’으로 내 나름대로의 경영진단까지를 하여 실었다.
 

 

기적같이 완납된 ○○소주 체납세금

 


이 보고서를 만든 시점에서 보니 소송계류분을 제외한 관련 체납세금이 모두 현금으로 완납됐다. 나는 그동안 이 문제를 해결코자 전북토지공사지사, 한국토지공사, 전주지법군산지원 등으로 직접 방문도 하고 공문도 내고 심지어 사신까지 띄우면서 노력했는데 기적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나는 이 보고서를 세무서에 보관토록 하고 본청 김종창 간세국장(후에 서울지방청장 역임)께도 보고하였는데 나중에 ○○소주 사주 M某에 대한 국회의원 재공천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 ○○소주에 관한 국세청자료가 필요했는데 국세청장은 때마침 이 보고서를 잘 활용했다고 한다.
 나는 이리세무서로 발령이 나면서 곧 이리시내 언덕배기 주택가에 집을 얻어 이사했다. 오랜만에 가족이 함께 생활하게 돼 안정된 마음으로 직장에서 근무할 수 있었다.
 

 

안무혁 청장, ‘세정백서’발간 제안을 채택하다.

 


 85년4월19일 안무혁 국세청장께서 세무서 순시를 하였다. 이근영 광주청장(후에 금융감독위원장 역임)과 본청 조원기획관리실장(후에 중부지방청장 역임)이 함께 수행하였다. 청장은 보고를 받으시고 매우 흡족해 하였다.

 보고 중에 나는 전국 세무관서가 1년 업무를 집행하고 나면 1년마다 ‘세정백서’를 한권씩 만들어 보관토록 하자는 건의를 했는데 청장은 좋은 생각이라 하며 그 자리에서 수행한 기획관리실장에게 명하여 금년부터 시행할 수 있도록 행정관리담당관으로 하여금 검토, 보고케 하라고 하였다. 나는 기록의 중요성을 말씀드렸는데 청장께서 이 제안을 기꺼이 받아 들였다는 것에 대하여 마음속에 뿌듯함이 있었다.
<계속>-매주 月·木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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