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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5.22. (목)

내국세

(68)'관료가 바뀌어야 나라가 바로선다'

허명환 著(前행정자치부 서기관)

-환락 속의 질서-
철저히 지켜지는 룰

 

우리가 통상 캐년하면 그랜드캐년(Grand cariyon) 만 있는 것으로 알기 쉬우나, 실제 돌아다녀 보면 블랙캐년(Black canyon), 레드캐년(Red canyon), 마블캐년(Mable canyon), 자이언캐년(Zion canyon) 등 캐년도 온갖 종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캐년을 몇 날 몇 밤을 걸려 텐트에서 자기도 하고, 통나무집에서도 자면서 구경을 한 끝이라, 저녁 어름 저 멀리 황무지 사막 한 가운데서 현란한 네온사인을 밝히기 시작하는 라스베가스(LV)로 들어가자니 정말 인간사는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온몸에 묻은 캐년의 먼지를 털어 내기도 할 겸, 또 라스베가스는 숙박료 음식료 등이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하게 싸기도 하기에, 용기를 내서 신라스베가스 지역에 있는 엑스칼리버(Excalibur) 호텔에 차를 세우고는 방값을 알아 보았다.

 

통상 홀리데이 인(Holiday Inn)에 우리 가족이 하룻밤 머무는데, 계절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한 80~90달러는 잡아야 하기에 어느 정도는 각오하고 방값을 물어 보았는데, 맙소사 40달러란다!

 

이렇게 근사하게 새로 지은 호텔에서 하룻밤 방값 치고는 너무 싸기에, 내가 산골짜기를 돌아다니다 보니 영어 listening이 도로 쇠약해졌나 싶어 다시 한 번 더 물어 보아도 역시 40달러라는 것이다!

 

누가 방 빼앗는 것도 아닌데, 한국인의 날렵한 기질로 얼른OK! 하고는 키를 받아 들고서 의기양양하게 차에서 기다리는 가족들한테 돌아왔다.

 

집사람이나 애들도 여행하면서 방 잡는데 하도 이력이 나 있는 판이라, 돌아오는 내 얼굴만 보고서도 여기서 잘 것인지, 또 정처 없이 길을 떠나야 하는지 감을 척! 잡는다.

 

무슨 고시합격자 발표하듯 싱글벙글하며 OK사인을 보내자 모두 좋다고 난리다. 기껏해야 모텔을 기대했었는데 난데없이 웬 근사한 호텔이냐라는 것이지……

 

여장을 푼 후, 여기는 음식 값도 싸니 내친 김에 이 호텔 부페에도 가 보자고 씩씩하게 다시 로비로 내려왔다.

 

그런데 LV호텔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체크인(check-in)이나 체크아웃(check-out)할 때, 혹은 식당이나 수영장에 갈 때 항상 도박장을 지나가게 되어 있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슬롯머신(slot machine)에 열중하고 있는 것을 어깨 너머로 보는 것도 재미라 도중에 서서 이리저리 구경을 하였다.

 

그런데 웬 늘씬한 안내양이 날더러 "Excuse me"라며 왈, 여기서는 애들은 구경할 수 없으니 양지해 주십사한다. 두 꼬마도 우리 부부 사이에서 신기 한 듯 같이 두리번거리며 구경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라나는 새싹들한테 무슨 도박이람! 하는 당연한 상식이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나 환락의 분위기에 붕붕 떠서 그런지 나만 무식하게 모른 채 애들하고 구경한 셈이었다.

 

얼른 잘 알아 모시겠노라 대답하고는, 애들더러 “너거들은 이런 거 못본다 카니 그리 알거라”하고는 그 자리를 뜬 경험이 있다. 도박과 환락의 도시라는 라스베가스에서도 근본 원칙은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통상 한국 사람들은 미국 가면 뭐든지 하고 싶은 대로 지 마음대로 다할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다반사 인데 천만의 말씀이다.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해 주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근본 룰은 칼같이 지키고 시행되고 있어, 이를 어기면 왕창 코피 날 각오를 하여야 하는 곳이 미국이라는 나라다.

 

미국에서 영화를 폭력성 ‘선정성’ ‘저속성’ 등을 기준으로 등급을 매겨 주는 곳이 미국영화협회(MPAA Motion Rcture Associationof America) 인데, 모든 영화에는 등급이 붙는다.

 

G는 누구든 볼 수 있는 것, PG는 부모의 지도가 요망되는 것, PG~13은 부모의 강력한 주의 요망, R은 17세 이하 아이는 부모동반 관람 요망, NC-17은 여하한 경우라도 17세 이하는 볼 수없는 영화를 의미한다.

 

물론 제 무리 이런 등급을 제공해도 안 지키면 그만이긴 하지만, 그런대로 이 등급제는 꽤 효력을 보이고 있다.

 

미국식 교육에 익숙한 우리 애들을 보면 R등급 영화는 집사람이 간단하게 "못본다”라 해도 애들은 묵묵히 수긍한다. 떼를 쓰지 않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몇 년 전부터 TV프로그램까지 이런 제도가 확대 시행되고 있고, 우리도 근년부터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미국이 자유로운 국가라고 뭐, 그저 x 판 5분전의 나라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국가를 유지하는 시스템은 냉정하게 작동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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