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림과 코풀기-
트림은 미안, 코풀기는 당연
미국 사람들은 식당에서 식사를 주문할 때 소다를 꼭 먼저 주문한다. 소다라면 콜라, 사이다, 쥬스 등 음료수를 통칭하는 말로서 이런 것들이 싫으면 그저 물 한 컵 달라면 된다. 사이다를 시키고 싶을 때 사이다라고 주문하면 잘 못 알아듣는다. “싸이다” “싸이다아” 별별 방법으로 혀를 꼬불여 보아도 안되고, 그 대신 스프라이트(sprite)나 세븐업(seven up)이라 하면 제시꺽 알아 듣는다.
우리 식생활 관습으로는 이런 소다는 식후에 숭늉 한 사발 마시듯이 마시는 것인데, 부득부득 식전에 주문받는 바람에 처음에는 줄기차게 물 한잔! 하고 버텼으나 어언간 나도 콜라나 사이다를 주문하게 되었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간사스럽긴......
하여튼 탄산소다라 한잔씩 마시면 꺼 ~ 억하고 트림(burp)이잘 나온다. 우리네 문화로는 식사 후 숭늉 한 사발 쭈 ~ 욱 들이 키고는 “꺼 ~ 억”하면서 “자 ~ 알 먹었다 !”하는 것을 예사로 친다.
오히려 손님 입장에서는 주인한테 음식 대접 잘 받았노라는 한 상징적인 표현으로 활용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사람들은 트림하면 꼭 "excuse me" 라 한다. 사실 트림할 때 풍기는 악취는 남에게 미안한 일이라 당연히 그래야 될 것인데, 오히려 우리가 좀 뻔뻔스러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사람들하고 어울려 살면서도 초창기에는 나는 트림해도 부득부득 "excuse me"라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 문화하고 다르다고 고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애들이 학교생활하면서 이런 저런 미국식 문화를 익히게 되자, 이 녀석들이 내가 트림하고 가만히 있으면 날 보는 눈이 곱지가않게 되어 갔다. 급기야 "Daddy, you have to say something!”이라 한다, 요는 "excuse me"라 하라는 것이다.
자식 무서워 할 수 없이 "excuse me" 라 하게 되었고, 그럭저럭 살다보니 그것도 습관이 되어 귀국 후 요즘도 트림하면 문득문득 목구멍까지 그런 소리가 올라오다. ‘아서라, 여기는 한국, 괜히 미국에서 산 티 낸다 할라' 싶어 속으로 'excuse me' 라 하곤 만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수업시간이나 회의 중 코 푸는 건 예사로 잘한다. 이번에는 죽어라고 "excuse me"라 하지 않는다. 아주 당연한 생리현상으로 치는 것이 같은 생리현상인 트림했을 때와 참 대조적이라 기이하게 느껴졌었다.
아니 ? 코 풀 일 있으면 조용히 나가 화장실에서 풀 일이지 조용한 수업시간 중에 누가 코를 팽 ! 풀어 ?’하는 마음에, 처음에는 '워떤 x 이 신성한 수업시간에 코 푸는겨 ? ’하면서 당사자를 눈길로 찾아 슬쩍 째려보기도 했다.
허나 그것도 한두 번이지 이건 남자나 여자나 구분 없이 풀어대고 내가 인상 써보았자 허공에 팔매질이라, 차라리 양반자손인 내가 참고 삭이는 수밖에 하고는 받아들였다
피부가 창백하게까지 보일 정도로 하얗스럼한 백인 아가씨가 코를 팽팽 풀다보면 코끝만 빨개지는 것이 오히려 우습게 보이기도 한다.
미국에 오래 산 한국 사람도 수업시간이나 회의중이나 이야기하다가도 예사로이 코를 푼다 미국식이다. 그러나 나는 그 정도로 오래 살지는 않아서 그런지 미국 살면서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코푼 적은 없다
그러다 보니 이 두 가지에 관한한 나는 어정쩡이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철저한 미국식도 아니고 철저한 한국식도 아니고, 한국에서 오래 산 미국인은 나와는 반대로 어정쩡하게 되어 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