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법 집행 납세자도 승복한다
고흥군 녹동읍에서 선구점을 하는 오Y.S 사장도 서장이 몇분 바뀌어도 체납 세금을 안 내고 있었다.
나는 그의 세금을 깎아줄 방도가 없을까 생각하고 하루종일 과세경위와 불복과정을 꼼꼼하게 검토해 보았다. 그의 요구는 자신의 양도소득세를 실거래가액으로 결정해 달라는 것이었으나 그 주장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불충분해 심판청구에서 기각된 내용이었다.
나는 다음날 오 사장을 세무서로 불러서 나의 검토 결과를 설명하고, 그래도 계속 당신이 버틴다면 재산 압류 등 강제집행을 할 수밖에 없으니 양해하시고 협조해 달라고 간곡히 당부하였다. 시일이 흘러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나는 직세과장과 직원 몇명을 함께 녹동으로 보내 점포내 어망과 밧줄 등 상품을 트럭에 싣고 오라고 하였다.
직원들이 점포에 들이닥치자 오 사장은 소주를 병채 마시며 식칼을 휘두르며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그만 실패하고 돌아왔다.
나는 며칠후 다시 과장과 직원들을 내려 보냈다. 이번에는 고흥경찰서 녹동지서장에게 전화하여 현장 입회를 부탁하였다. 다행히 오 사장이 없어 물건을 실어다가 세무서 2층 휴게실에 보관해 두었다.
녹동장날에 자기 가게가 텅비어 있게 되는 것에 신경이 쓰인 오 사장은 며칠후 저녁 내 하숙집까지 찾아와 세금을 조금 깎아달라고 떼를 썼다. 그의 바지 주머니 속엔 돈이 몇다발 들어 있어 바지 주머니가 불룩하게 튀어나와 보였다.
난 세금을 받으면 다 받고 안 받으면 다 안 받게 되어 있으니 그냥 돌아가라고 했다. 그날 저녁 오 사장은 총무과장에게 세금을 납부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세무서가 제공한 트럭에 물건을 싣고 내려갔다.
그로부터 몇개월후 나는 총무과장, 직세과장, 간세과장과 함께 녹동항에서 배를 타고 소록도에 들어가려고 부두에 서 있는데 누가 반색을 하며 달려왔다. 알고 보니 바로 오 사장이었다. 오 사장은 우리를 반가워 하면서 자기 사진기로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였다.
이런 식으로 고질 체납세금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갔더니 ‘세무서장은 벌교 주먹을 굴복시켰다’는 소문이 났고 이후로 각종 세금 납부율(납기내 징수비율)이 현저히 좋아졌고 어려운 체납도 해결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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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체납처분을 할때 체납자의 사무실 집기 또는 기계 등 값나가는 물건을 실어 오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체납에 대한 경각심과 심적 부담을 주기 위해 용달트럭을 빌려 물품을 실어와 세무서 빈 공간에다 보관하기도 했다. 용달차에 ‘국세체납처분차량’이라고 쓴 휘장이 이채롭다.<세정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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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세무서까지 순시하시는 청장의 귀한모습
83년3월20일 안무혁 국세청장께서 세무서를 순시했다.
지난 2월초 인사를 해놓고 전국 세무관서를 한 바퀴 도는 중이었다.
나는 정성껏 준비한 보고서로 브리핑을 하였고 청장은 지역 실정에 맞게 세정을 펴라고 당부하였다. 나는 바쁘신 청장께서 지역 사정과 서장의 인물됨을 파악하고 차중에서 오며가며 정책 구상도 할 겸 이렇게 멀리 떨어진 시골 세무서까지 찾아와 격려해 주신 것이 더없이 고맙고 귀하게 느껴졌다.
벌교세무서는 2개의 군 지역을 관할하는 전형적인 농어촌세무서였다. 사무관 초년시절에 짤막하게 이런 세무서에서 수습을 거치게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리자는 동시에 교육자이어야 한다
주변이 조용하고 일은 많지 않아 나는 직원 한사람 한사람에게 기안하는 방법부터 신고서 작성하는 일까지 결재과정을 통해 직접 가르쳤다. 한번은 재산세계 직원이 상속세 신고서를 제대로 못쓴다고 하기에 서장실에 불러 놓고 하나하나 가르치며 작성시켜 보기도 하였다.
나는 벌교세무서에서 아침저녁으로 테니스를 배웠다.
아침운동을 하고는 곧장 서장실로 올라가 먼저 하루 일과를 업무노트를 꺼내 메모하고 하숙집에 가서 조반을 먹고 나와도 출근이 제일 빨랐다.
나는 벌교 시절을 생각할 때 지극정성으로 나를 보살펴 준 광주식당 하숙집 아주머니, 부속실 직원 등등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84년 2월 중순 어느 날 오후 늦게 이영상 광주청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리세무서장으로 발령이 났으니 오늘 저녁에 이리로 올라가 오문희 서장(후에 광주청장 역임)한테 인계인수를 받되 특별히 보배소주에 대하여 유념하라는 것이었다.
2. 이리세무서장으로 승진하다
84년2월20일 이리세무서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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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에 들어온 지 10년만에 사무관에서 서기관으로 승진한 것이다. 3급지 세무서장 9명 중에서 2명만이 승진이 되었으니 기쁘고도 기뻤다.
나의 승진문제를 놓고 본청 국장들간에 치열한 논공행상이 있었을때 안무혁 청장께서 1년전에 승진시켰어야 했는데 그때 못 시킨 것이 아쉽다고 하면서 쐐기를 박았다고 한다.
부임하자마자 본청장으로부터 소환을 당하다
세무서장 인사 발령후에 곧이어 세무서과장 인사이동이 있었다. 이리세무서 총무과장으로 조某 과장이 부임하였는데 그는 이번 인사에 불평불만이 많았다. 곧 병가를 내고 서울에 올라가 정보기관 요로에 인사불평을 털어 놓았는데 이 말이 안무혁 청장께도 들어갔다.
안 청장은 박경상 총무과장을 통해 당장 이리세무서장 소환명령을 내렸다.
나는 청장이 화가 크게 나 있다는 것을 알고 바로 서울로 올라가 조 과장을 간곡히 설득해 사직서를 받아 가지고 다음 날 아침 본청으로 등청했다.
총무과장과 지창수 차장께서는 사표를 받았다고 하니 안도했으나 안무혁 청장께서는 나를 불러 놓고 왜 병가를 허락해 주었느냐며 내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꾸중을 했다. 이리세무서장 발령후 첫번째 받은 선물(?)치고는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매주 月·木 연재-